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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2일 오전 9시 20분]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자료 사진).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자료 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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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법관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부자(신 대법관)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외부자는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헌법 이념인 법관독립이 왜 법원 내부에서조차 무시당하고 있나."

한동안 잠잠했던 사법부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해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윤리위)의 결정이 나온 직후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일선 판사들의 격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판사들은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이번 사태가 사법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1일 하루에만 벌써 7명의 판사들이 법원 내부 통신망에 이번 사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 표명을 했다. 글을 올린 판사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정영진 부장판사(서울서부지법) 외에도 문형배 부장판사(부산지법), 이옥형·서기호·이헌영(서울중앙지법), 유지원(목포지원), 오경록(서울동부지법) 판사 등이다.  

판사들의 목소리 톤은 달랐지만 촛불 재판 개입 의혹 문제가 미온책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문형배 판사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 이미 사법이 아니다"

문형배 판사는 '독립되어 있지 아니하면 사법이 아닙니다'라는 글에서 "최근 들어 사법의 독립을 사법행정권과 동렬이거나 아니면 사법행정권 아래에 존재할 수도 있는 가치쯤으로 여기는 주장을 보고 있으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신 대법관이 촛불재판 진행을 독촉하거나 보석에 신중을 기하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윤리위가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판단한 결정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21세기의 가치를 다양성으로 보면서 "사법에서 다양성 보장은 독립에서 온다"며  "독립되어 있지 아니하고 다수자가 지배할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시국사건에서 일사불란한 처리를 주문했던 유신시대, 제5공화국시대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되어 있지 아니하면 사법이 아니다', '만일 사법의 독립과 사법행정권이 교차한다면 마땅히 사법행정권이 사법의 독립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신대법관을 겨냥한 듯 "내부자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용인한다면 외부자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막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옥형 판사 "사법부 독립은 누군가 은혜로서 주는 것이 아니다"

이옥형 판사는 '희망, 윤리위, 절망'이라는 글을 통해 "이번 사건(촛불 재판 관여 의혹)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그런 의지가 법원 수뇌부에, 법원행정처에,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 의문"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는 "이번 사태는 우리 사법부 앞에 펼쳐질 긴 역사에서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윤리위의 결정과 그 이후의 법관 사회의 냉소와 절망은 독이 될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고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마냥 냉소를 보내거나 절망하거나 가슴만 답답해 하기에는 법원에 대한 애정과 희망이 크지 않은가?"라고 반문하며 "사법부 독립과 재판의 독립은 누군가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때만이 얻어진다는 것이 역사로부터 배우는 진실"이라고 강조했다.

유지원 판사 "신 대법관, 결자해지 차원 결단해야"

유지원 판사도 대법원진상조사단보다 후퇴한 윤리위의 결정에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사법행정권의 행사도 공익을 목적으로 해야 하는데 특정 사건의 보석에 신중을 기하라는 발언 등이 사법행정권이라면 그로 인하여 달성할 공익이 어떤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신 대법관을 향해 "이번 사태로 수많은 판사들과 관련자들이 고초를 겪은 것에 대해 대법관님의 사과를 기대하는 것이 과도한 요구는 아니라고 믿는다"고 한 뒤 "결자해지의 측면에서 결단을 부탁드린다"며 간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그는 신 대법관이 사퇴하지 않고 "혹시 '다른 결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해명 내지 변명을 한다면 이에 대해 결정을 할 법관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는 촛불재판의 피고인에게 보석을 허가한 박재영 전 판사에게 사퇴를 압박했던 일부 언론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정치적 잣대에 따라 신 대법관을 옹호한다면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사법행정권자 역시 옹호해야 한다"며 언론을 향해 이번 사태에 대해 정치적, 이념적 색깔을 덧칠하는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덧붙였다.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가 1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정식 징계가 아닌 주의나 경고를 내릴 것을 건의한 대법원 윤리위원회를 규탄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가 11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정식 징계가 아닌 주의나 경고를 내릴 것을 건의한 대법원 윤리위원회를 규탄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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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록 판사 "헌법 이념인 법관독립, 법원에서조차 무시"

오경록 판사는 "윤리위 결정이 주는 충격은 오히려 입을 다물게 한다. 오늘도 법관들은 할말을 잃고 묵묵히 기록만 넘기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서 "법관으로 몸담고 있는 동안 요즘처럼 법관의 독립이란 명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 헌법의 소중한 기본이념이 법원내부에서조차 무시당하고 있는지..."라며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대법원장님이 내부 구성원들의 여론에는 둔감하셔도 국민 여론에는 민감하신 분이니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훌륭한 조치를 내려주실 거라 믿고 싶다"며 에둘러 이용훈 대법원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서기호 판사 "신 대법관, 적법절차에 따라 징계 회부해야"

서기호 판사는 '대법원장님과 법원행정처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신 대법관에 대해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다수의 일선 판사들은 신뢰할 만한 것으로 평가하였고, 징계절차가 아닌 윤리위에 회부한 것 역시 스스로 자유의사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도록 여유를 주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데 기대와 달리 (신 대법관이) 거취에 관한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고, 윤리위는 '경고 또는 주의촉구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하였다"며 "이번 윤리위의 경고, 주의촉구 등은 징계위원회의 징계심의를 거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법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판사는 누구보다도 앞서서 적법절차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대법원장님과 법원행정처는 더더욱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적법절차의 원칙에 입각해보면, 이번 신 대법관의 행위가 징계사유에 해당하고,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법관징계법에 따른 징계절차가 개시되어야 하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끝으로 "지금이라도 적법절차를 지키는 것이 파장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헌영 판사 "그 일말의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다"

이헌영 판사도 11일 저녁 '절망은 아직 이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리신 분들의 의견에 공감을 표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판사는 "지금까지 많은 법관들이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이 사태를 냉소적으로 바라보아서도, 무기력감에 빠져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 일말의 가능성은 이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사법개혁과 법원의 신뢰회복은 장기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제는 실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할 때"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지금부터 새로운 단계를 시작하여야 한다"며 그 방안으로 신 대법관 거취의 조속한 결론, 전국 법관 워크샵 논의결과의 구체화, 제도화를 제시했다.

특히 그는 "신 대법관님에 대한 사퇴나 징계요구는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침해된 사법권의 독립을 바로 세우고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며, 향후 발생할 침해상황에 중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 비판한 판사는 정직 2월 중징계, 신 대법관은?

2007년 법관징계위원회는 한 판사에게 정직 2월의 징계를 내린 적이 있다. 이 판사는 법원 내부통신망과 언론 등을 통해 사법부의 문제점을 비판하였는데, 징계위원회는 이를 문제 삼아 그런 중징계를 내린 것이었다. 당시 사법부 내에선 표현의 자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렇다면 같은 잣대를 신 대법관에게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사법부 독립의 근간을 흔들고 사법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신 대법관이 만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면 어떤 결정이 나올 지 궁금하다.

촛불 재판 간섭 의혹 사태에서 나온 "사법부 독립"의 목소리가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는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법관 다수로 퍼져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번 사태의 중심에 있는 신 대법관과 대법원장의 거취와 결단에 법원 안팎의 시선이 더더욱 집중되고 있다.


태그:#촛불재판, #신영철,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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