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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과 나란히 흐르는 오솔길.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한 17번 국도의 건너편 길이다.

아주 빠르게 달려왔다. 일주일이 금세 지나고 한 달이 또 지났다. 매화, 산수유 꽃으로 화사한 봄을 열어젖힌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월. 앙상하던 산천도 어느새 푸름을 잔뜩 머금었다. 정말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이다.

 

일상도 숨 가쁘긴 마찬가지.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다. 눈뜨자마자 집을 나가 하루 종일 시달리고, 초죽음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그런 일상에 몸과 마음도 지쳐간다. 주말이 기다려지고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이유다.

 

어느 쪽으로 가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만날 수 있다

 

 섬진강 따라 난 정겨운 오솔길. 강 풍경은 물론 강 건너 17번 국도와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철길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집을 나선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보리밭에 생기가 가득하다. 몸집도 제법 많이 불렸다. 잠시 멈춰서 보리밭에 눈을 맞춰본다. 그리고 보리 한 자락 꺾어 보릿대에 손톱자국을 내 본다. 입으로 가져가니 '삐-닐리리∼'.

 

보리밭 옆엔 자운영 꽃이 지천이다. 진분홍색으로 만발했다. 자운영은 제 몸을 희생시켜 땅심을 높여주는 녹비작물. 꽃이 유난히 아름다운 모습에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자운영을 바라보는 내 눈에 애틋함이 스민다.

 

모내기를 서둘러 한 논도 보인다. 그곳에선 모들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열심히 호흡을 하고 있다. 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올 가을 풍년을 짐작할 수 있다. 저만치 보이는 초목에선 봄의 절정을 엿볼 수 있다. 이파리 한 줌 따서 짜면 연두색 물이 빠질 것만 같다. 황량했던 들판이,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계절을 이끌어가는 풍경이다.

 

 섬진강변 자전거 전용도로 윗길. 강변 풍경을 호흡하며 걷기에 제격이다.

그 길을 따라 해찰을 하면서 닿은 곳은 섬진강과 만나는 곡성땅. 곡성은 강을 따라 걸으며 마음 풀어 놓기에 제격이다. 내친김에 압록으로 향한다. 압록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몸을 섞어 남해바다로 향하는 곳이다.

 

국도와 철다리가 나란히 지나는 교각 밑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이 보인다. 돗자리를 펴놓고 도시락을 먹고 있다. 강물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이들도 눈에 들어온다. 다슬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이맘때 섬진강은 다슬기가 지천이다.

 

지금까지 달려온 17번 국도를 벗어나 왼편으로 난 다리를 하나 건넌다. 이제부턴 지방도로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돌면 구례 다무락마을로 향한다. 왼편은 5년 연속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된 가정마을이다. 가정마을에는 섬진강천문대가 있고, 강변 자전거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만날 수 있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건너편 17번 국도와 달리 차량 통행도 많지 않다. 자동차보다도 자전거를 훨씬 더 많이 만나는 길이다. 풍광도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17번 국도보다도 더 낫다.

 

강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섬진강의 일부가 된다
 
 섬진강변 자전거 전용도로. 저만치 보이는 빨강색 다리가 두가현수교다.

가정마을이다. 차 세우고 키를 뽑는다. '이제야 쉬게 됐다'며 차가 환하게 웃는 것 같다. 강변을 따라 도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시원하다. 자전거 경주를 하는 어린이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배어있다. 2인용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굴리는 연인들은 그저 행복한 표정이다. 아이들을 앞에 태운 4인용 자전거에선 화기애애한 정이 함께한다.

 

자전거도로 위로 나 있는 호젓한 길이 마음에 들어온다. 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오른쪽엔 숲이, 왼편으로는 섬진강변이 펼쳐져 운치를 더해준다. 강물결도 잔잔하다. 강 가운데서 등을 내놓은 돌에 새 한 마리 앉아있다. 두리번거리는 게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강 건너 미루나무 숲길도 자전거 행렬이다. 강가에서 물장난을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미루나무 아래 강가에서 쉬고 있는 소들한테서도 여유가 묻어난다. 되새김질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배불리 풀을 뜯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섬진강변에서 자란 풀로 배를 채운 소들이 되새김질을 하며 쉬고 있다.

 두계마을 입구. 돌담과 어우러진 한옥이 멋스럽다.

한량인 척 하면서 20∼30분 걸었을까. 자전거 전용도로 끄트머리에서서 두계마을 입구를 만난다. 이 마을은 '외갓집 체험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높이 선 솟대가 섬진강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에 흙으로 만든 장승이 익살스럽다. 논과 밭길을 따라 굽어진 길과 돌담, 허름한 옛집이 추억 속의 외갓집 풍경 그대로다.

 

내친 김에 강변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길도 지금까지와 달리 훨씬 한가롭다. 인공의 냄새도 전혀 없다. 강폭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강물은 여기서도 싸목싸목 흐른다. 그 물길에 허리를 구부려 다슬기를 채취하는 주민도 보인다. 그의 어깨에선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들의 모습도 섬진강의 일부가 된다. 섬진강이 강에 기대고 사는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풍경이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도 강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맑은 강물과 어우러진 주변 풍광이 한 폭의 그림이다.

 

들을 때마다 설레는 증기기관차 소리

 

 섬진강변에서 옛 추억을 실어나르는 증기기관차. 그 뒤에는 관광객들이 강변 따라 타고 온 철로자전거가 매달려 있다.

'뿌~우~웅~'. 우렁찬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강 건너에서 들려오는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다. 섬진강변을 찾을 때마다 듣는 소리지만, 그때마다 마음 설레게 한다. 강변 국도와 철쭉꽃 피어난 철길을 따라 기어가는 풍경이 정겹다. 멀리서나마 손 흔들어주고 싶다.

 

강변길은 또 비포장 길과 만난다. 강물을 따라 유연하게 돌아가는 길이 예스럽다. 오랜만에 접하는 비포장 길을 발바닥이 제일 반긴다. 그 길에서 솜털보다도 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가 새롭다. 길섶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민 이름 모를 풀들도 정겹다. 건너편 도로를 빠르게 달리면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호곡나루터가 보인다. 섬진강에서 유일하게 줄배를 타볼 수 있는 곳이다. 줄배는 사공이 없어도 혼자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수 있는 배.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이 더 반긴다. 배에 올라 줄을 당겨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장난기 어린 도깨비 장군상도 피로를 풀어준다.

 

 섬진강 호곡나룻터에서 만난 줄배.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강물 따라 한참을 걸었다. 한 10㎞ 쯤 될까. 시멘트 포장길도 만나고 비포장 오솔길도 접했다. 잠시 오르막과 내리막도 경험했다. 강변 정자에 앉아 여유도 부리고, 나무그늘에 기대고 스치는 바람에 땀도 식혔다. 어쩌다 만나는 자전거동호인이 반가울 정도로 호젓했다.

 

강바람은 또 어찌나 달콤한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강바람이 스친 것 같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강물과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정말 오지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 좋은 그 길은 봄날의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섬진강과 나란히 흐르는 강변길. 걷기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섬진강은 사람은 물론 하늘과 자연까지도 다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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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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