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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밤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어느덧 1년이다. 이를 기념해 여기저기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반대편의 주역이었던 정부도 집회를 불허하고, '고춧가루 분사'를 예고하는 등 나름대로의 기념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1년 전의 기억을 아프게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거의 매일 밤을 거리에서 새웠고,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됐지만 가장 많이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1년 전 그들은 더 이상 시위중인 시민들 앞에 서지 않는다. 이길준 이경은 촛불시민 진압을 거부한 대가로 10개월째 수감 중이지만, 촛불집회 당시 경찰력의 주축이었던 전의경, 수경, 상경급들은 2009년 5월 현재, 대부분 제대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 중 일부를 지난 4월 30일, 노량진에서 만났다. 이제야 말하는 그들의 '지난 1년'을 소개한다.

A : 대학 4학년(25) 의경 방범순찰대 2008년 7월 제대
B : 대학 휴학생(24) 의경 기동대 2009년 3월 제대
C : 대학 3학년(24) 전경 전경대 2008년 7월 제대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 학생들이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 설치를 비난하며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 학생들이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 설치를 비난하며 '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글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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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출동 나가면 40시간...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렸다"

-1년 전 촛불집회가 시작될 당시 심정이 어땠나.

A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심야검문근무가 대폭 늘어나는 등 근무강도가 높아져 고참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많을 때였다. 그럴 때 촛불집회가 시작되어 부대가 하나둘 불려나가더니 결국엔 그게 점점 더 커져 방범순찰대인 우리까지 집회관리에 동원되었다."
C : "입대하고 나서 평화로운 때가 없었다. 신병 때는 한미 FTA 반대집회, 중간 때는 이랜드 사태, 그리고 이제 쉬나보다 했더니 촛불집회가 터졌다."
B : "나는 이제 막 상경 달았을 때인데, 거기다 꼬인 기수라 밑에 애들도 몇 명 없었다. 덕분에 극심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렸다."

-촛불집회 당시 하루 일과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C : "아침 6시에 출동을 나가서 다음날 밤 10시까지 철야근무를 섰다. 잠은 길바닥과 출동버스에서 나눠서 잤다. 하루는 비가 철철 오는데 지붕달린 주차장에서 우비 깔고 잔 적도 있었다. 지붕에선 빗물이 새고, 옆 중대에서는 중대장이 치킨 시켜줘서 그거 먹고 있고...... 절대 잠이 오지 않더라."
B : "우리도 근무 서고 부대로 돌아가 3~4시간 자고 또 나오고 그랬다. 길바닥에서 잘 때는 모기들의 숱한 공격을 받았다. 출동버스 안에 가득하던 모기향 냄새도 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짬 안 되는 애들은 밖에서 잤는데 위에서 공문이 내려와 맨 뒷줄에서도 잘 수 있었다."
A : "당시 소대 전령(소대를 이끄는 무전병)을 맡고 있었는데, 직원들 챙기기가 정말 힘들었다. 우리는 시위대는 보이지도 않는 후방에 있었지만 집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은 계속 서서 근무하라고 위에서 시키더라. 시위대 일부가 청와대 담장을 넘을지 모른다고."

작년 촛불집회에서 부딪히고 있는 전의경과 시민들 촛불집회 때의 전의경들은 대부분 제대했다.
▲ 작년 촛불집회에서 부딪히고 있는 전의경과 시민들 촛불집회 때의 전의경들은 대부분 제대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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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군홧발 사건, 또라이 한 명이 사고 친 거지"

-시민들과 충돌도 잦았는데.

C : "정말 크게 붙은 것은 5번 정도였던 것 같다. 한 번 크게 붙으면 부상자가 속출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원래 한 소대당 4분대인 것이 3분대로 줄어들 지경이었다. 그러면 한동안은 후방으로 빠져 근무를 섰다. 부상당하는 상황은 대부분 시민들과 일렬로 대치중에 끌려 나가서 몰매를 맞을 때였다. 나도 한 번 끌려 나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하이바랑 입고 있던 진압복까지 뺏겼다."
B : "대치하고 있을 때는 대부분 침묵을 지킨다. 그러다 위로 뭐가 날아오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하나둘 욕이 나오기 시작하고, '밀어 올려'(진격) 명령이 떨어지면 참아오던 것이 폭발한다. 피가 솟구치는 느낌으로 방패를 휘두른다.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부상자가 속출한다."
A : "후방에 있어서 시위대랑 붙은 적은 없다. 주로 청와대 주변 청운동, 효자동 주민들을 상대했다. 청와대 주변 길목을 출동버스로 봉쇄해놔서 주민들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성나서 항의하고 직원들은 나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결국엔 주민들이 지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경들의 과잉진압도 문제가 됐었다. '여대생 군홧발 사건' 등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 이때 전의경들은 사건보도를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A : "일석점호를 앞두고 소대원들이 모두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그 때 마침 뉴스에 여대생이 군홧발에 차이는 영상이 나왔다. 순간 내무실에 정적이 흐르다가 탄식이 흘러 나왔다. 평소 시위하는 사람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대원의 입에서도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란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C : "여성 시위대도 상대해봐서 아는데, 여성들을 상대할 때는 기껏해야 매달리거나 끄는 것 정도 밖에 없다. 여자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우리도 대부분 '또라이 한 명이 사고쳤다'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건 외부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 후로 시위대에 대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 중대 몇몇 군데가 해체되었다. 우리 소대로도 10명 정도가 부대가 해체돼 날아왔었다."
B : "나는 촛불집회 내내 시위대를 많이 원망했다. 친한 친구가 촛불집회를 열심히 나가고 있어서 전화로 싸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지난 1일 새벽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경찰 군홧발로 머리를 폭행당한 이모양.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유포된 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경찰 군홧발로 머리를 폭행당한 이모양.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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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열리는 이유? 시위대가 하는 말, 우리도 다 듣는다"

-촛불집회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B : "비가 무척 많이 오던 어떤 날이 생각난다. 원래 진압복 위에 우비를 입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짜증나는데, 그 날은 시위대가 우리에게 진흙까지 뿌렸다. 장비와 옷에 진흙이 달라붙은 채로 최악의 밤을 보냈다."
C : "시청 앞 광장에서의 혈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광장 바깥쪽을 막아놓은 출동버스를 두고 양쪽이 밀고 댕기고 사투를 벌였다. 시위대는 밧줄로 당기고, 경찰은 출동버스를 기중기로 고정시켜 막았다. 그러다 버스 창문이 뜯겨져나가고 그 공간으로 서로 소화기와 소화전을 쏘며 맞붙어 싸웠다. 그러다 난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그 안이 전의경 환자들로 가득했다."
A : "6월 10일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정말 많은 인원이 집회를 열고 있다고 해서 '명박산성' 뒤로도 몇 겹의 출동버스로 벽을 치고 또 쳤다. 나는 청와대 앞에 있었는데 거기까지 함성소리가 들리더라. 아마 대통령은 뒷산에서 보고 있었다지?"

-촛불집회가 열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들 있었나?

C : "집회현장 나가면 시위대가 하는 말 우리도 다 듣는다. (웃음)"
B : "출동이유에 대해 자세히 교양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도 내무실에서 뉴스 보고, 외출과 외박을 자주 나가기 때문에 대충은 다 알고 있다."
A : "출동 나가기 전날 저녁에 지방청으로부터 경비문서가 내려온다. 거기에 보면 집회신고 사유부터 배경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고참이 되고 그거 꼬박꼬박 읽었더니 우리나라 사회의 갈등구조 틀이 잡히더라."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청와대로 진출을 시도하기 위해 전경버스 창문을 사다리를 이용해 파손시키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전면 수입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촛불문화제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청와대로 진출을 시도하기 위해 전경버스 창문을 사다리를 이용해 파손시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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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8 반민주정권 심판의 날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 학생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우체국앞 종로거리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도하며 경찰버스를 끌어내려하자 경찰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다.
 '6.28 반민주정권 심판의 날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 학생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우체국앞 종로거리에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시도하며 경찰버스를 끌어내려하자 경찰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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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인 구조로 집회관리를 할 건지..."

-올해부터 경찰직에 전의경 출신들을 특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B : "경찰을 목표로 하던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다.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여기 노량진에 있는 경찰학원에 등록해 다니고 있다. 전의경 출신들에게 가산점을 줄 것인지 아예 따로 특채할 것인지 경찰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특채형식으로 결정되어 우리로서는 매우 유리해졌다. 제대한 내 근접기수 9명중 7명이 경찰직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A : "정권이 촛불집회를 계기로 전의경의 소중함을 안 것 같다. 자기들을 대신해서 매 맞고 고생해주고 인건비도 싸니 얼마나 좋겠는가. 원래 의경 같은 경우 지원자가 없어 고생했는데 전의경 특채가 생기고 지원율이 확 늘었다고 하더라. 취업난을 잘 이용한 거지."
C :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거지만, 경찰 쪽은 쳐다보기도 싫다. 나는 원래 육군을 가서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몸을 건강하게 하고 남는 시간에 자격증도 따려고 했는데, 훈련소에서 전경으로 차출되어 이런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2년 내내 불규칙적인 생활과 매일 출동 나가는 것에 질려버렸다."

-촛불집회 1주년이다. 하고 싶은 말 있는가?

B : "나는 집회자체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집회가 열리는 곳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 그곳에 가면 전의경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C : "집회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집회현장에서 폭력이 나오는 것은 전의경이나 시위대나 군중심리적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대치하는데 불상사가 안 일어나겠는가? 정말 일선에 서게 되면 극한의 긴장과 흥분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의경들은 자기가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A : "군복무를 대신하는 20대 초반의 피 끓는 젊은이들이 단 몇 주 훈련받고 집회현장에서 감정을 다스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걸 다스리게 하려고 전의경 내에 암묵적으로 구타가 존재했던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인 구조로 집회관리를 할 건지 염려스럽다. 전의경 중대를 직원 중대로 교체해나가 집회관리에 대한 경찰의 책임을 확실하게 지게 해야 한다. 지난 촛불집회에서 전의경들에 대한 동정론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그나마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많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31일 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광화문 사거리는 전경차와 경찰 병력으로 원천 봉쇄돼있다.
 2008년 5월 31일 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 광화문 사거리가 전경차와 경찰 병력으로 원천 봉쇄돼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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