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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2일 저녁 8시 구속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심경을 밝히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2일 저녁 8시 구속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심경을 밝히고 있다.
ⓒ 노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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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으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는 서울지검 특수2부와 서울국세청 조사4국의 조사로 시작됐다. 서울지검은 태광실업의 휴켐스(농협 자회사) 헐값 인수 의혹을, 국세청은 태광실업·정산실업의 탈세 혐의를 캐고 있었다.

국세청은 지난해 7월 박연차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정산실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벌였고, 같은해 11월 박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도 이미 지난해 5월부터 휴켐스 헐값 인수 의혹을 내사해오던 터였다.

이후 박연차 회장 사건은 '거악 척결의 중추기관'으로 불리우는 대검 중앙수사부에 배당됐다. 이는 검찰이 이 사건을 '권력형 비리'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상률 국세청장이 지난해 11월 박 회장의 세무조사 결과를 민정수석실을 거치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점도 이 사건의 파장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권력 핵심부의 의중이 개입됐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친노인사들은 '줄소환', 여권 인사들은 '꼬리 자르기'

대검 중앙수사부이 지난해 12월 10일 박 회장을 소환조사한 뒤 이틀 뒤인 12월 12일 전격 구속하면서 박연차 게이트의 막은 올랐다. 박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290억원대의 세금포탈과 20억원의 뇌물 공여였다. 

이런 정도라면 박연차 사건은 '게이트'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없었다. 한 기업의 탈세·비리사건으로 마무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에게 이런 혐의는 '깃털'에 불과했다. 검찰이 겨냥한 '몸통'은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었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올 3월 중순 그동안 수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박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그 첫 성과는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과 송은복 전 김해시장의 구속으로 나타났다.

박 회장으로부터 각각 5억원과 3억여원을 받아 구속된 두 사람은 모두 김해 출신이다. 특히 이 전 원장은 2005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한 '영남의 친노인사'였다. 그의 구속은 '친노세력의 줄소환'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인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3월 21일과 22일 연이어 검찰소환조사를 받았고, 나흘 뒤인 3월 26일 박 회장 등으로부터 2억원 가량을 받은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또한 3월 22일 박정규 전 민정수석과 장인태 전 행정자치부 2차관이 체포했다. 박 전 수석은 박 회장으로부터 1억원어치 상품권을, 장 전 차관은 수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3월 25일 구속됐다.

박 전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했고, 장 전 차관은 지난 2004년 경남도지사 재보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영남의 친노인사'였던 셈이다.        

뒤이어 노 전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인 서갑원 민주당 의원도 박 회장으로부터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두 차례 소환조사를 받았다. 특히 또다른 '386 핵심측근'인 이광재 의원은 구속되는 과정에서 "인생을 걸고 정치를 버리겠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들이 구속되고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정권 창출에 성공했던 친노그룹은 세력 붕괴의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검찰의 수사가 친노인사들에 집중되면서 민주당 등 야당으로부터 '표적수사'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검찰도 그런 지적을 의식했든지 '대운하 전도사'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긴급 체포해 구속하고, 3선이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박진 의원을 소환조사하기도 했다.

특히 추 전 비서관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바 로비 청탁' 명목으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검찰 조사에서 추 전 비서관이 권력실세인 이상득·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은 추 전 비서관을 구속하는 것으로 '권력실세 로비 의혹'을 마무리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천신일 의혹'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APC 계좌, 노무현 일가를 겨누다... "노무현=600만불 사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12일 밤 11시 35분경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 사이의 500만 달러 거래 의혹 등과 관련해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14시간여 동안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귀가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12일 밤 11시 35분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14시간여 동안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뒤 굳은 표정으로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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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관용·김원기 등 전직 국회의장들까지 검찰로 불러들인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APC'의 계좌자료를 확보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APC는 태광실업의 홍콩현지법인으로 '박연차 비자금의 저수지'로 불린다. 비자금 규모가 60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APC 계좌자료를 분석하고 있던 가운데,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4월 7일 박 회장한테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과 함께 '노무현의 집사'로 불리는 핵심측근이다.

그런데 같은 날 노 전 대통령이 개인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부인 권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100만 달러)을 받아 개인채무 변제에 썼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승부사' 노 전 대통령은 국민과 지지자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다. 깊이 사과드린다."

박 회장이 건넨 돈이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흘러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던 검찰에게 권씨의 등장은 당혹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정 전 비서관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결국 검찰은 4월 11일 권씨를 부산지검에 불러 비공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검찰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권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부탁해 돈을 받았고 개인채무를 갚는 데 썼다"며 "상대방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어디에 돈(100만 달러)을 썼는지 얘기할 수 없다"고 사용처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과 권씨의 사과·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내채무 변제용'으로 왜 '달러'를 받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검찰은 여전히 이 돈이 자녀의 미국 유학비용 등으로 쓰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4월 10일). 같은 날 이광재 의원은 기소됐고,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구속·수감됐다.

연씨의 체포는 APC 계좌자료를 분석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연씨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3일 전엔 2008년 2월 22일 박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았다. 연씨는 투자금 명목으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포괄적 뇌물'로 보고 있다.  

APC 계좌자료 추적의 성과는 노 전 대통령 장남인 건호씨의 소환조사로 이어졌다. LG전자의 미국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던 건호씨는 4월 11일 귀국해 5차례에 걸친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500만 달러의 운용에 건호씨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의 표현을 빌자면 "건호씨가 500만 달러에 지배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부인 권씨와 조카사위 연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600만 달러(100만 달러+500만 달러)의 종착지는 노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다. 그래서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시중에서는 "노 전 대통령은 600만불 사나이"라는 풍자까지 나돌았다.  

'승부사' 노무현을 무너뜨린 핵심측근의 '공금횡령'

애시당초 검찰의 칼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600만 달러'와 노 전 대통령의 연관성을 직접 입증하기에는 '물증'이 부족했다. 검찰수사가 박연차 회장의 진술에 크게 의존해온 탓이다.

그런 와중에 검찰은 정상문 전 비서관이 청와대 재임기간 중 12억5천만원의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구속시켰다.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 주려고 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최측근이자 40년 지기 정 전 비서관의 횡령은 '사실'로 승부하려던 노 전 대통령을 무너뜨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개인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절필'을 선언하고 "나를 버려라"고 호소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측에서 "빨리 소환해 조사해 달라"고 검찰쪽에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검찰은 지난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면조사를 실시한 뒤 26일 '30일 소환조사'를 전격 통보했다. 이제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진검승부'만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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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선대부속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