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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비자금과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등에 대한 폭로는 큰 충격이었다. 이는 삼성 특별검사팀의 수사와 발표(작년 4월 17일), 총수인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4월 22일)으로 이어졌고 삼성 최고경영진들은 줄줄이 법정에 섰으며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 회장이 없는 지난 1년, 삼성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는 어떻게 될까. <오마이뉴스>는 이 회장 퇴진 1년의 삼성을 되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마지막 편은 삼성 특검의 단초를 제공한 김용철 변호사가 바라본 지난 1년이다. [편집자말]
삼성 비리를 고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경기도 부천 시내의 한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다.
 삼성 비리를 고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경기도 부천 시내의 한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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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무슨 광란의 시대가 아닌가 싶어. 무슨 말 한마디, 어디에 글만 올려도 잡아가는 세상 아니야…."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용철 변호사(51). 낯익은 얼굴에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혈당이 잘 잡히지 않아서 금방 피곤해진다"면서 기자와 마주앉았지만, 그의 시니컬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솜씨는 여전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그런데, 검찰을 보면, 삼성사건은 7년 동안 수사하지도 않고,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더니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는 세게 하더구만. 죽은 권력에 대해선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면서, 왜 살아있는 권력에는 그렇게 비겁한지…."

김 변호사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1년 6개월 전, 삼성그룹의 옛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그의 폭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최대 재벌그룹 삼성과 오너인 이건희 회장 일가의 각종 탈법적인 행태가 드러났고, 특별검사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삼성사건은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기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김 변호사를 만났다. 경기도 부천의 한 제과점에서다.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그는 매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저녁때 매일 6시간씩 가게를 보고 있는데, 할 일이 꽤 많다"면서 "큰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와의 이야기는 제과점 바로 옆 조그만 카페에서 이뤄졌다.

"죽은 권력엔 그렇게 단호하면서, 산 권력엔 왜 그리 비겁할까"

- 작년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서울) 서초동에서 작년 7월에 사무실을 열었는데, 4개월 만에 닫았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더라. 이제 사무실을 옮기려고 하는데, 이전 비용도 없어서 아직 이전도 못 하고 있다."

- 사건 수임이 없었나.
"뭐, 몇 건 들어온 것들을 보면, 그냥 돈과는 상관없는 사건들이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참 무능력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실상 변호사 일은 '개점휴업'인 상태였다. 물론 일정한 수입도 없다. 그는 "2년째 별 수입 없이 살고 있다"면서 "요즘은 그래도 저녁에 이렇게 아르바이트도 해 가며 교통비라도 벌이를 좀 한다"고 말했다. 기자와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한 고객이 들어와 몇 가지 빵을 주문했다. 김 변호사의 입에선 빵 값이 곧장 나왔다. 100여 가지에 달한다는 빵 종류 가격 대부분을 외우고 있었다.

- 가게 손님들 가운데, 변호사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나.
"(웃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반갑다'면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은 빵을 사가지고, 가게 앞에서 바로 버리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서울 압구정동인가를 가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뭐가 그리 잘났냐', '어딜 돌아다니냐'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허탈한 듯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참, 이상해. 내가 무슨 가진 자들의 것을 뺏으려고 선동한 사람처럼...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솔직히 지금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살아갈 힘도 주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은 좋아."

'기분은 좋다'고 하면서도 김 변호사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어 "요즘도 가끔 나에게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을 하던데,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다시 그의 말이다.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순교라도 하란 말인지...(웃음) 얼마 전에도 법학교수가 술에 취해서 전화로 삼성문제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쩌고 저쩌고 말을 하던데. 내가 그랬어요. '술 먹을 시간에  좀 더 연구하고, 각자 위치에서 제대로 자신의 일을 하면 된다'고."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각종 탈법적인 행태가 드러나 특별검사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해 4월 11일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 되어 승강기를 올라타는 모습.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각종 탈법적인 행태가 드러나 특별검사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다. 사진은 지난해 4월 11일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 되어 승강기를 올라타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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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그래도 전보다는 투명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 얼마나 변했을까. 재벌과 정치권, 관계, 언론계 등의 비자금 관행들이 과거보다는 훨씬 불편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은밀하게, 더 비밀스럽게 갈 수도 있다. 지난번 특검이 이런 것에 다 면죄부를 준 것 아닌가."

- 그렇지 않아도, 특검수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기대 이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삼성 비자금 조성에 대한 수사를 특검 스스로 제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이건희 전 회장의 상속재산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나. 정관계 로비 수사는 아예 의지도 없어서, 내가 특검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굉장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났었다. 그랬더니 기자들은 나를 '버럭 용철'이라고 부르더구만."

- 김 변호사가 기자들 앞에서 인상 쓰면서 찍힌 사진과 함께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기자들에게 짜증이 난 것이 아니라, 특검에 정말 화가 났었다. 수천억 원이 넘는 불법 비자금이 조성되는 과정이나 이 돈들이 어떻게 정치권, 검찰 등에 로비로 쓰였는지를, 자료도 주고 이야기를 해도 도대체 수사를 하려고 하질 않았으니까."

- 불법 경영권 승계 부분에 대해선 2심까지 대체로 불법성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고개를 흔들면서) 왜 불법성이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들(이재용 전무)에게 그룹을 물려주기 위해서, 그룹 차원에서 공모를 하고,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헐값으로 주고, 그 회사를 상장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얻지 않았나. 그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내부정보를 이용한 것 아닌가."

그는 이어 웃으면서 "그렇게 많은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세금은 제대로 냈을까"라고 묻고 "어떻게 나보다도 세금을 적게 낼 수 있을까"라고 말을 맺었다.

-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긴 하다.
"(곧바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삼성이 변했다고? 도대체 무엇을 쇄신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더라"

"박연차씨 500만 불짜리 해외 계좌를 그렇게 잘 파헤치던 검찰도 이건희 회장의 3000억 원짜리 해외 비자금은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다."
 "박연차씨 500만 불짜리 해외 계좌를 그렇게 잘 파헤치던 검찰도 이건희 회장의 3000억 원짜리 해외 비자금은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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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마치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특검 이후, 삼성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실장 등 핵심 측근들이 동시에 퇴진했고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도 과감히 없앴다. 1년 전 삼성은 10가지 쇄신안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이 가운데 7가지를 이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의 평가는 냉정했다. 오히려 냉소에 가까웠다. 그의 말이다.

"삼성이 변했다고? 도대체 무엇을 쇄신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더라. 책임질 것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왜 퇴진하나. 왜 이건희 회장이 퇴진했을까. 아니 물러났을까."

그의 물음은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었다. 다시 김 변호사의 말이다.

"그렇게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난번 (사장단) 인사 때 어떻게 했어? '만 61세 이상' 퇴진이라고 하던데, 이건 거의 코미디 수준 아닌가. 또 올라간(승진한) 사람들을 보세요. 과거 불법 비자금이나 경영권 작업과정에서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들이 중용되기도 하고."

- 지난 1월 인사를 두고, 일부에선 삼성이 이재용 체제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발끈하며) 도대체 누가 '이건희, 이재용 체제'라고 규정을 짓는지 모르겠다. 자꾸 외부에서 이런 식으로 체제를 인정해주고 나면, 이씨 일가는 여전히 이 사회에서 성역을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영구불변의 권력을 인정해주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는 법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현 정부 아래에선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현 정부는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누굴 위한 법치인지가 헷갈릴 정도"라면서 "박연차씨 500만 불짜리 해외 계좌를 그렇게 잘 파헤치던 검찰도 이건희 회장의 3000억 원짜리 해외 비자금은 제대로 건드리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사정 당국이) 죽은 권력에 대해선 왜 그렇게 단호하면서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비겁한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면서 "검찰이 최고 권력자라도 집권이 끝나면 언제든 수사할 수 있는 전통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와 같은 전통이 특정 자본권력에도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와의 인터뷰 시간이 얼추 2시간을 넘어섰다. 김 변호사는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는 제과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좀 살맛 나게 해줬으면 좋겠어. 일부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요즘 주위를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무서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습다고 해야 하나? 너무나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어디에서 '좌파는 체제도전 세력, 이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하던데,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고.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되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소수자를 위해 좀 더 배려하자고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보면 좌파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고 일하는 것이 마치 무슨 범죄자인냥 말하고, 취급하고... 우리나라가 무슨 전제주의 국가도 아니지 않은가."


태그:#김용철, #이건희, #삼성특검,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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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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