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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이 있는 금산군 부리면괴 이웃한 영동 호탄교 부근 풍경. 적벽강 풍경과 거의 비슷한 곳이다.
 적벽강이 있는 금산군 부리면괴 이웃한 영동 호탄교 부근 풍경. 적벽강 풍경과 거의 비슷한 곳이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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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 나와 시대 사이에 가로놓인 마지막 불화

'퀵마우스'라고 불리는 빠른 말투, 같은 말을 두세 번씩 반복해 듣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특유의 수다스러운 입담, 황금색으로 물들인 헤어 스타일. "좋아! 가는 거야!"와 같은 유행어가 있으며 '닥터노' '퀵마우스' '돌+아이' 등의 별명을 가진 개그맨 노홍철.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처음 그를 방송에서 봤을 때 나잇살이나 먹은 나로선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적응하기 어려웠다는 말이 더 맞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듣자니 그가 이 시대의 트렌드요, 요새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거다. 노홍철, 아니 이 시대에 군말 없이 적응하는 살신성인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도태의 길을 갈 것인가 망설이다가 결국 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라는 노홍철에게 적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체유심조라했던가. 마음을 고쳐먹으니, 그 다음부터는 노홍철의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흘러가면 언젠가 내가 노홍철 팬 클럽에 가입하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노홍철과 화해함으로써 난 완벽하게 21c에 편입될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이 시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마지막 불화는 깨끗이 청산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터무니없는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노홍철이 혜성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엽기적인 동작, 거침없이 내지르는 하이톤의 말투. 이 여자를 두고 사람들은 '여자 노홍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난 이 시대에 크게 절망하고야 말았다. 하늘은 어찌하여 불과 5·6년의 시차밖에 두지 않은 채 이렇게 시끄러운 두 사람을 한꺼번에 이 세상으로 내보냈는가.

제아무리 큰 절망일지라도 그 무거운 감정을 계속해서 내 안에서 기생하도록 놔두는 것은 현명한 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이번에도 난 '여자 노홍철'에 기꺼이 적응하기로 결론지었다. 보라, 저 솔직하고 유쾌한 모습을. 어찌나 솔직한지 그녀가 입을 열면 적막한 이 시대가 제 그림자 뒤에 숨긴 갖가지 음흉마저 저만치 날려버리는 듯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요즘 이 두 사람이 펼치는 유쾌·상쾌한 개그가 '노홍철'이 환절기에 접어든 내 입맛을 되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개그계의 노홍철·김나영 - 문학계의 김영남 시인·성미정 시인

사람들은 개그계에만 노홍철 같은 사람이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따분하고, 별 의미도 없으면서 무슨 심오한 의미나 숨어 있는 듯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해괴망측한 단어를 나열해 놓고 독자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시인족(詩人族)이 사는 세상에도 노홍철 같은 약간 시끄럽긴 하지만 재미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얘기다. 남자 노홍철만 있는 게 아니라 구색 맞춰 여자 노홍철도 있다. 이들이 쓴 시를 읽노라면 어느새 흐렸던 기분이 맑게 개고 삶의 엔도르핀마저 팍팍 솟아난다.

그게 누구냐고? 어디서 들어라도 봤는가? 김영남 시인과 성미정 시인이라고. 이 두 시인의 시는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깨트리고 만다. 내용을 읽기 전에 우선 제목부터 기발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재치 만발이다. 그럼 본격적인 시 맛보기로 들어가기 전에 제목부터 시식해 보기로 할까. 먼저 1957년생 김영남 시인의 시 가운데서 기발한 제목을 단 시부터 둘러보기로 하자.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커브가 아름다운 여자', '가을은 그녀에게 다리를 놓아온다', '아직도 그곳에서는 추억과 교전할 수 있다', '입구가 숨겨져 있을수록 여자는 아름답다' (<시집 정동진>)

'그리하여 해리는 추억을 경작하게 되었다', '나의 애인을 빨간색으로 바꾸려 한다', '언덕 위에 그대가 파릇파릇하다', '슬픈 추억은 향일암 일출로 바꾸세요', '품위 있는 진열장이 고객을 감동시킨다' , '나의 제품은 고객 감동을 지향한다' (시집 <모슬포 사랑>)

'눈이 내리면 총체적으로 불행하다', '그 시위 현장이 나를 성토하고 있다', '포장마차는 멍게로 사수하는 거야', '수선화가 오늘의 부실을 던져온다', '저 탱자울이 내 귀를 잡아당긴다' (시집 <푸른 밤의 여로>)
  
어떤가. 평소 시라는 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확신하면서 시 죽이기에 앞장섰던 당신도 저런 제목을 가진 시라면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한 마리 지렁이처럼 꿈틀대지 않는가. 이번에는 1967년생 성미정 시인이 쓴 시 제목을 한 번 맛볼 차례다.

 '비누를 훔치러 다닌 적이 있었다', '야구처녀의 고독은 둥글다', '가축들 혹은 가죽들' (시집 <대머리와의 사랑>)

'여보, 띠포리가 떨어지면 전 무슨 재미로 살죠', '다락방이 소녀를 엄마라고 불렀죠',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의 빠쪽한 보랏빛 콧수염을 꺼낼까 말까 갈등하는 당신의 안해가', '어느 푸른 밤엔 이 모든 풍경을 오래된 나무 찬합에 담아 원족을 나가면 더욱 좋겠소' (시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뒤죽박죽 별장으로 오세요', '고통어 자반', '엄마는 이다음에 자라면 무엇이 되고 싶어요',  '나의 엄마 마음은 아직 우러나지 않았다', '사랑은 갈치 같은 것' (시집 <상상 한 상자>)

요즘은 간절기라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은 때이다. 그런 분들은 오늘 저녁엔 갈치 같은 사랑 한 마리를 골라 적쇠에 자글자글 구워드실 일이다. 

철두철미 '고객' 만족을 지향하는 프로 시인

음식점에 가면 종종 본격 요리가 나오기 전에 수프로 배를 채우고 마는 우매한 백성들을 보게 된다. 엄마라면 달려가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지경이다. 자, 이제 별 영양가 없는 수프먹기 같은 제목읽기는 그만 드시고 본 요리를 드실 시간이 되었다. 김영남 시인의 '진보와 보수 사이에 해오라기가 앉는다'라는 시가 식탁에 올려져 있다.

진보적으로 살까, 보수적으로 살까
금산 수통리 적벽강까지 한 사람을 데리고 와 걱정
하는 내겐
저 절벽은 진보다.
절벽 위에 재작년까지 보이지 않던 해오라기가 떼로 
날아왔고
맞은편에는 작년에 없던 2차선 도로를 힘차게 뚫고
있으므로……

진보적인 여자와 텐트를 쳐볼까, 보수적인 여자와
물놀이를 해볼까
텐트를 치며, 물수제비를 뜨며 계속 고민하는 나의
여름휴가.
이럴 땐 한번 물어보는 거다, 저 흔들리는 미루나무
에게
가지의 모든 이파리까지 뒤집어
바람이 불 때마다 시스템적으로 사고하고 있으므로……
뒤집어 사고해도 한결같은 목소리이므로……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는 사이
해오라기 한 마리가 날아와 미루나무 꼭대기에 앉
는다.

보라, 저 미루나무 꼭짓점을
저건 진보와 보수의 교묘한 절충이다.
내 고민의 정반합이다.
아니다, 저건 야합이다.
금세 날아가버릴 새하얀 금언(金言)이다!
          - 김영남 시 '진보와 보수 사이에 해오라기가 앉는다' 전문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김영남 시인은 신춘문예에 시 '정동진역'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정동진역> <모슬포 사랑> <푸른 밤의 여로>가 있다. 그는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깊은 공감에 바탕을 둔 따뜻한 시를 쓴다. 기발한 상상력에다 재치발랄한 언어의 옷을 입힐 줄 아는 유니크한 시인이다. 그는 "공급 위주로 모든 걸 판단하는"(시 '그 시위 현장이 나를 성토하고 있다") 시를 배격한다. 그 대신 그는 늘 '고객만족'을 지향하는 제품 -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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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진보와 보수 사이에 해오라기가 앉는다'는 시집 <푸른 밤의 여로>에 들어 있는 시편이다.시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충남 금산 부리면 수통리 적벽강이다.

우리에게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는 시조로 고려말 삼은 가운데 한 분인 야은 길재의 고향이며 인삼어죽으로 유명한 곳이다.

시인은 여름휴가를 맞아 이곳으로 놀러 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다짜고짜 "진보적으로 살까, 보수적으로 살까"라는 철 지난 화두를 꺼낸다. 왜, 무엇 때문에  모처럼만에 멀리까지 나들이 와서 생뚱맞게 진보 타령· 보수타령을 하는 것일까. 즐거움으로 만땅 채워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혹시 시인은 며칠 전 술자리에서 젊은 후배에게 "형은 어느새 낡은(보수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라고 핀잔을 들었던 일을 떠올린 건 아닐까.

그는 눈앞에 치솟은 절벽을 바라보며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저 절벽은 (내게) 진보(나 다름없)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왜 불가능한 줄 뻔히 알면서 고민하는가. 그토록 진보 쪽에 줄서기가 어렵거든 얼른 보수 쪽에 붙으면 될 텐데 말이다. 그가 진보를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진보 쪽이 상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그는 "시스템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미루나무에게 갈 길을 묻기로 한다. 그가 보기에 미루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면서도 사고할 줄 아는 영장(靈長)이다. "뒤집어 사고해도 한결같은 목소리"를 지니기까지 한….

마침내 그는 미루나무 꼭짓점에서 자신이 처한 고민의 해결점 - 정반합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진보와 보수의 교묘한 절충"이 그 해결점이다. 그러나 그는 금세 그 결론을 뒤집고 만다. "아니다, 저건 야합이다./ 금세 날아가버릴 새하얀(거짓말 같은) 금언(金言)이다!"라고 고개를 젓는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진보와 보수의 교묘한 절충"은 그가 바라던 해결책이 아니고 야합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가 꿈꿨던 것은 진보와 보수가 사이좋게 살아가는 원융(圓融)한 세상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소시민이 꿈꾸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히 단언하건대, 시인은 결코 '"진보와 보수 사이에 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한 마리 해오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층 간의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이 대한민국 사회에선 어느 곳에도 완충지대란 없다. 심지어 개나 소들마저도 한쪽 편에 서지 않으면 사료를 얻어 생존하기 어려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인이여. 인제 그만 고민을 그칠지어다. 시인이 헤겔의 정반합을 이야기했으니 난 칸트식으로 답하고 싶다. 굳이 진보냐, 보수냐 따질 것 없이 마음이 내리는바 정언명령대로 살면 된다고. 그대의 양심이 명하는 대로. 이것이 내가 시스템적으로 사고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어째 내 시스템이 불량한가요?

지독한 반어법과 블랙 유머들이 가득한 시 세계

아, 골치 아프다. 이렇게 골치 아플 땐 누가 누가 나를 위로해 줄까.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에겐) 바보상자가 있잖아요." 그렇다. 우리에겐 골치 아픈 '현안'들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TV가 있다. 성미정의 시 '육봉달'은 우리를 2005년도에 방영되었던 모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 속으로 데려간다.

장장 한 달째 머릿속에서 육봉달이 손에
북경오리를 들고 뛰어다닌다 한때 나도
북경오리를 먹고 싶어했다 하얀
밀쌈에 바삭한 오리 껍질을 얹고 파채를
올려 까만 춘장을 살짝 발라 먹고
싶었다 TV 중국 여행에서 본 그대로
북경오리는 관념의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육봉달이 나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했을
때 난 북경오리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 나보다 먼저 북경오리를
때려잡다니 그것도 맨손으로… 하긴
그것도 북경오리를 먹는 한 방법일 수 있는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선 북경오리가 꿱꿱거리고
있는데 육봉달이는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달리는 마을버스 2-1을 타고 보란
듯이 여행을 떠나는구나
아! 나는 언제쯤이라야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창백한 관념의
접시를 박살내고 달리는 마을버스 2-1에
올라타 익숙한 풍경 속으로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 성미정 시 '육봉달' 전문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성미정은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지금까지 <대머리와의 사랑>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상상 한 상자> 등 세 권의 시집을 상자했다. 이 시인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주입하려들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겪고 느낀 대로 담담하게 삶을 서술할 뿐이다. 시인이 쓴 시에 전개되는 풍경은 우리가 어느 날엔가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다. 그랬던 것을 시인의 시를 통해 다시 보면서 "아하! 그때 그것엔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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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상상 한 상자>에 들어 있는 이 '육봉달' 이란 시는 모 방송국의 공개 코미디 프로 '제3세계'라는 코너에서 개그맨 박휘순이 분했던 육봉달이란 인물이 했던 대사를 바탕으로 해서 쓰인 시다.  

육봉달은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 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다. 아무려면 사람이 아무리 맨손일망정 오리 한 마리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겠는가? 이런 것을 용기라 부르며 뻐기는 육봉달이란 인물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초등학교 1학년짜리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떡볶이 먹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신이시여, 떡볶이를 철근에 비교해서 자신을 엄청난 사람으로 포장하는 육봉달에게 진정한 힘이 뭔지를 알려 주소서.

또 육봉달 회장이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이유는 미스터리다. 그러나 이것 역시 도전정신이라고 하기엔 무모하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육봉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자화상이다. 그럴 듯한 용기도 없이 살아가지만 누구나,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자신만이 할 수 있노라고 자신을 과대포장하는 데는 아주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슬프지만 우리는 모두 육봉달이 될 수 있는 자질과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아! 나는 언제쯤이라야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창백한 관념의/ 접시를 박살내고 달리는 마을버스 2-1에/ 올라타 익숙한 풍경 속으로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라고 육봉달보다 더 좀스런 현실에 갇혀버린 자신을 한탄한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이 블랙 유머 가득한 얘기를 더욱 처절한 것으로 만들고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으로 특별한 언어 감각을 가진 두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이 두 시인에겐 언어를 재미있게 다루는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김영남 시인의 '모슬포에서', '몽대항 폐선', 성미정 시인의 '눈물은 뼛속에나 있다는 생각' 같은 시는 가슴을 뭉클하게 할 만큼 절창이다.  

시대가 각박할수록 유머는 더욱 절실하고 권력이 냉정하고 진지하게 국민에게 군림하려 할수록 풍자가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다. 김영남 시인·성미정 시인은 고객이라는 독자가 원하는 시를 쓸 줄 아는 드문 시인이다. 우리 정치는 언제쯤에나 그렇게 고객만족을 지향하는 정치가 될 수 있을까.


태그:#김영남, #성미정, #육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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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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