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난 코미디언이라 시사 쪽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잘해주셔야 돼. 난 손석희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어렵게 원고 써주면 큰 일 나요, 알았죠? 이거 코미디하는 사람한테 시사 프로그램이 말이 되는 거냐고?"

지난 2003년 10월, 비좁은 회의실에서 처음 만난 김미화씨는 자신을 이 자리까지 억지로 '끌고' 온 정찬형 피디에게 아직 원망이 많이 남아있는 듯 작가들을 붙잡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얘기를 하자며 피디가 몇 번이나 찾아오길래, 자기 딴엔 일주일에 한 두 번 출연해주는 게스트인줄 알았단다. 그런데 꺼내 놓은 계획서를 보니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그것도 혼자, 더군다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라는 이야기에 기겁을 했단다.

연예인들에겐 그 시간이 행사 다니면서 돈 벌기 가장 좋은 땐데, 생방송으로 방송국에 앉아 있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거다.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이미 방송국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손석희의 시선집중, 여성시대, 라디오시대 같은 프로를 만들어낸 정찬형 피디의 설득에 안 넘어갈 사람은 없었다.  

방송 첫날 그는 마이크 앞에서 덜덜 떨었다

첫 방송 날, 김미화씨는 방송경력 20여년이 무색하게 마이크 앞에서 덜덜덜 떨고 있었다.  인사말을 할 때도, 날씨 전해주는 리포터를 부를 때도 그는 몇 번이나 틀리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더니, 1부 방송을 끝내기 무섭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는 역시 자기는 시사 쪽이 아니라며 원망 가득한 눈으로 피디를 흘겨보는데, 솔직히 그때 우리 제작진 모두도 우리의 선택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진가는 그 다음부터 나타났다. 이라크에 다녀온 이진숙 기자가 출현했는데, 10살 짜리 딸을 둔 김미화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8살짜리 어린 딸을 두고 전쟁터에 다녀온 이진숙 기자의 손을 잡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건 MC라기보다는 고생하고 돌아온 동생 얘기를 가슴 쓸며 혀를 차며 듣는 큰 언니 같은 모습이었다. 그날 우리는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지금 이라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김미화는 참 독특한 사람이다.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시키고 출근시간까지 늦추는 수학능력 시험 날엔 여상을 졸업하고는 대학 대신에 조그만 여행사에서 경리를 봤던 자기 얘기를 하면서, 오늘 같은 날 시험보지 않는 자기 같은 고 3학생들도 한 번 생각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171번 운전면허시험에 떨어진 할아버지와 면허시험 당락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 합격해서 동네 잔치할 때 자기도 꼭 가겠다고 덜컥 약속해버리는 '대책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들이 생전 가족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듣다가 눈물 뚝뚝 흘리는 더없이 '여린' 사람이기도 했다. 

기존 진행자의 필수 조건이었던 잘나고 똑똑하고 냉정한 모습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하는 김미화에게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탄 이들이나 한참 된장찌개를 끓이며 저녁 준비를 하던 주부들은 하나 둘 그런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내 대신 담당 공무원에게 불편한 걸 말해주고, 잘났다고 하는 정치인에게 은근슬쩍 따져주고 꼬집어주고, 전문가인 교수님한텐 이것저것 살뜰하게 궁금한 걸 물어봐주는 그녀가 만만하고 친근해진 거다. 중국 발 멜라닌 파동 땐, 다른 방송에선 불러 호통만 치던 식약청 담당자에게 지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알지만 우리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조금 더 열심히 해달라고 부탁하는 '특이한' 진행자이기도 했다.  

이름만 빌려주는 홍보대사가 아니네 

김미화는 참 바쁜 사람이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처음 시작할 때 그녀는 유네스코를 비롯해 장애인 단체, 여성 단체 등 약 50여개 단체의 홍보대사였다. 몇 년 후 다시 세보니, 그 수가 70여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래서 난 홍보대사가 이름만 빌려주는 간단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 중인 방송인 김미화씨.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어느 주말 정신대 피해자들이 사는 '나눔의 집'을 간다고 해 따라나섰는데, 마침 어버이 날이었다. 봄볕 따뜻한 경기도 광주시 퇴촌의 나눔의 집에선 어버이날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할머니들을 비롯해서 견학 온 고등학생들, 동네 이장님 앞에서 원래 도와주기로 하고 펑크 낸 사회자를 대신해 그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날 김미화씨는 나눔의 집을 찾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면서 한바탕 신나는 행사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김미화씨를 딸같이 예뻐하면서 더 놀다 가라고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런 언니한테 또 한 명의 정신대 피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뉴스는 누구보다 서럽고 억울하고 안타까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조금 전 방송에 소개된 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영면 소식에  방송을 끝내고는 그 늦은 시간에 장지까지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동료를 떠나 아는 것과 삶을 일치시키는 존경스런 인생 선배를 둔 뿌듯함이었다. 

복지 예산 축소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제작진들이 이런 저런 정치, 경제 논리 속에서 분석을 하고 있으면, 김미화씨는 폐질환을 앓다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와 어린 시절 길음 시장에서 본 거지 아이 얘기, 급식으로 나왔던 옥수수 빵 얘기를 해주며 그 예산이 줄어들면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자분자분 설명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효순·미선이 사건이나 파병 반대 같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그녀가 누구보다 슬퍼하고 안타까와 했던 이유도 남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고 남의 아픔에 팔 걷을 줄 아는 그 마음 때문이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린 방송을 만들면서도 항상 당당할 수 있었고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김미화란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그냥 때마다 나오는 타령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불편해하고 그런 정치적인 시선을 바로 잡고 싶어했다. 그녀 삶을 규정짓기엔 너무나 초라한 색깔을 씌우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을 무시해도 좋으련만, 김미화씨는 하나하나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고 싶어 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야할 길도 먼 그녀에게 노사모니 좌파니 반미 같은 말은 우리가 보기에도 참 귀찮고 우스운 딱지다 싶었다. 제작비 절감과 경쟁력 차원에서 MBC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씨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김미화씨의 키는 153cm다. 피곤한 저녁나절에 153cm 눈높이로 대한민국을 얘기하는 진행자 한 명 갖는 것, 그건 아직 우리에겐 너무 사치스런 일일까?

덧붙이는 글 | 최현정 기자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은라디오시대> 작가를 거쳐, 현재 뉴욕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미화, #MBC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