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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와이키키가 한 눈에 보이는 Diamond Head가 인접해 있는 카피올라니대학 캠퍼스 일대의 풍광은 각별합니다.
▲ '주차장입니다' 정상에서 와이키키가 한 눈에 보이는 Diamond Head가 인접해 있는 카피올라니대학 캠퍼스 일대의 풍광은 각별합니다.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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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생활 속, 잊을 수 없었던 기억

사상 유례가 없다는 경기불황, 첫 직장이었던 여행사를 쫓겨나듯 나올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컴퓨터 좀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나 피해간다는 건설현장 공무 일을 반쯤 떠밀려 맡게 된 지도 몇 달이 흘러갑니다. 휴일도 보장받을 수 없고, 하다못해 두 달에 한 번 정도씩만 나서는 병원 가는 길도 몇 주를 미뤄야 하는 그렇게 소질에 안 맞고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해 가면서도 제게 힘을 주는 몇 안 되는 '추억' 이 있다면 바로 이 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 하와이 가요~'

지병 때문에 군입대가 늦어지다가 결국은 공익요원 복무가 결정됐고, 나름대로 제 특기를 살려 가면서 열심히 복무한 결과 제대, 그거 참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오더랍니다. 그렇게 2007년 초에 제대를 하고,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만에 하는 복학 때문에 고민이 심각하기는 했지만 일단 시작한 공부는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복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위 '새내기 증후군' 을 심각하게 겪은지라 F학점을 메우는 게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2학년인데도 불구하고 2학년보다는 1학년에 아는 친구들이 더 많은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는 처음보다는 썩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내 연례행사였던 토익(TOEIC) 경시대회에 시험삼아 응시해 보기로 했습니다. 모의시험이긴 하지만 순위 안에 들면 정시시험비도 나오고 성적만 좋으면 장학금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멋모르고 친 시험.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1학기 때는 전교 3위를 하더니, 2학기 때엔 아예 전교 1위를 해버린 게 아닙니까.

그게 계기가 됐는지 주임교수님께서 절 부르시더니 '하와이 인턴십 한 번 가 볼 생각 없느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가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의 몇몇 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교환학생 프로그램 같은 걸 진행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하와이는 처음이었던지라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놓칠 만한 기회가 아니었기에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1차 선발에서 떨어지는 불운이 있었지만 교수님께서는 '너 아니면 갈 만한 사람이 없다' 면서 최대한 노력해 주셨고, 같은 학과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가는 하와이행이 확정됐습니다. 평생 외국 구경 한 번 못 해볼 것 같았던 제 첫 미국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860점. 이 별것아닌 점수로 전교 1등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2학기 토익경시대회 성적 860점. 이 별것아닌 점수로 전교 1등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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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 '통'하기

누구나 하와이를 말할 때 먼저 얘기하게 되는 것이 바로 '알로하 정신(Aloha Spirit)'입니다. 하와이 말로 '안녕'이라는 뜻으로 통하는 Aloha지만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알로하 정신은 먼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하와이 사람들의 모습 속에 녹아있습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환경에 낯설어하던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을 다해주셨던 Kapiolani Community College(이하 KCC)의 국제교류센터 직원이신 Tim Park(한국 이름 박현일) 선생님께서는 수업이나 일상생활 같은 곳에서 많은 부분을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분이 고마운 이유는 그 곳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교류할 기회를 여럿 만들어주셨다는 것이겠지요. 교환학생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특별한 손님' 자격으로 온 사람이라면 주변 학생들과의 원활한 교류는 어느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규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현지 학생들과의 교류 시간이라든가 휴일에 데려다 주신 교회 같은 곳에서 한인들은 물론 현지인 학생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세계 어느 곳에서 온 사람이든 서로 마음이 통하는 곳, 어려운 말로 공감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과 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훤칠한 외모에 악기도 잘 다루시고, 예쁜 따님도 두신 박현일 선생님. 하와이 생활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바이올린 연주중이신 모습.
▲ 박현일(Tim) 선생님 훤칠한 외모에 악기도 잘 다루시고, 예쁜 따님도 두신 박현일 선생님. 하와이 생활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바이올린 연주중이신 모습.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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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친구를 만들고

학교 수업은 의외로 빨리 마칩니다. 매일 아침 9시에 강의실로 모여 10시에 오전수업이 시작되면 오후 3시면 어느 새 수업이 끝나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가든가 식료품 사러 월마트로 가든가 했지만 프로그램이 계속되고 나니 친구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라면 역시 주체하지 못할 '끼'를 충족시켜 준 Evan이겠지요.

댄스게임과 한국 가요를 좋아한다는 멋진 친구 Evan. 마지막 주 산업시찰 나갈 때 동행해 준 버스 안에서.
▲ 함께 즐길거리를 만들어 준 친구 Evan 댄스게임과 한국 가요를 좋아한다는 멋진 친구 Evan. 마지막 주 산업시찰 나갈 때 동행해 준 버스 안에서.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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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식당에서 한 친구가 저를 찾았습니다. 평소 댄스게임 '펌핏업'을 '좀 하는' 걸 안 그 친구는 '내 호적수가 될 만한 현지인이 있다' 며 수업 끝나면 식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함께 가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약속된 시간이 되자, Evan이라는 친구가 자기도 수업이 끝났다며 걸어서 10분 거리 정도 되는 큰 게임장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하와이에 와서 못 보던 TV프로들 빼놓고는 이렇다 할 즐길거리를 찾지 못한 제게 댄스게임은 상당히 재미있는 것이었기에 전 열심히 발판을 밟아댔습니다. 뒤에 선 친구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지역예선전에도 나간 적이 있다는 Evan의 실력에 저는 결국 무릎꿇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승패가 무슨 상관 있을까요. '함께 즐길거리' 를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Evan은 제 하와이 생활 중 가장 못 잊을 친구 한 명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한국인들이 해외, 특히 미국에 살게 되면 교회에 많이 간다고 합니다. 미국은 개신교 국가이기 때문에 개신교 교회가 가장 많고, 또한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기에 우리 말이 통하는 곳이기도 하고, 갖가지 정보들을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배가 끝나면 함꼐 준비한 음식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Wailiae 한인침례교회 지하 친교실 예배가 끝나면 함꼐 준비한 음식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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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되면 당연한 일이지만 미국에서도 토요일에는 수업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토요일과 일요일은 재량껏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Tim 선생님께서는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좋으니 일요일 정오에 열리는 한인교회 우리말 예배에 함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일요일에 크게 할 일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교회에서는 교회 밴과 목사님 개인 차량으로 15분 정도 걸리는 교회까지 손수 우리를 데리러 와 주었습니다. 교회 가 본 게 예전 국민학교 떄 빼놓고는 얼마 없었던 저였기에 많이 낯설긴 했지만 종교의식이라는 게 그걸 알든 모르든 경건한 자세를 갖게 하는 터라 진지하게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며 간만에 교회에서 느껴지는 감흥을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늦여름 같은 하와이의 2월 날씨에 푸르게 자란 교회 앞 잔디밭. 주일이면 아이들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 교회 앞 잔디밭 늦여름 같은 하와이의 2월 날씨에 푸르게 자란 교회 앞 잔디밭. 주일이면 아이들 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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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회 나오길 잘 했다' 고 느껴지는 순간은 예배가 끝난 뒤 마련되는 친교시간이었습니다. 그 근처에서 생활하는 한인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기 때문에 평소 궁금했던 그 곳 생활에 대한 많은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랬지만 특히 이 곳에 미국인 담임목사님으로 계시는 Wagner 목사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애정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첫 주일에는 이름난 한국식당에 손수 데려가 비빔밥 한 그릇씩을 대접해 주시기도 하셨고, 친구 만들기를 도와주시겠다며 아이스링크에도 데려가 주셨고, 바쁜 저녁시간을 쪼개 현지 한국 학생들과 함께하는 바비큐 파티도 열어주셨습니다. 마지막 주일에 일일히 이름을 불러주고, 악수를 나누며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하셨던 목사님의 과분한 친절에 주일마다 1달러씩 냈던 헌금이 마냥 부족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왼쪽부터 Wagner 목사님, 장로님, 한국인 목사님. 저녁 바비큐파티를 겸한 전도모임에서 한 컷.
▲ 하와이 한인침례교회 목사님 왼쪽부터 Wagner 목사님, 장로님, 한국인 목사님. 저녁 바비큐파티를 겸한 전도모임에서 한 컷.
ⓒ 박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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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 번에는 하와이에서 만난 잊지 못할 풍광들을 담아 보겠습니다. 하와이 생활 하셨던 분들, 하와이 생활중이신 분들의 댓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그:#하와이, #전문대, #인턴십, #연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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