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영업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 시간을 거쳐 출판사에서 잠깐 일했고 청소년 관련 단체에서 3년을 일했다. 단체를 그만두고 약 4개월. 실업급여가 끊기고 이틀 후인 지난주부터 새로운 곳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 밥벌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바란 게 있다면, 내 손으로 눈에 보이는 명확한 결과물을 얻고 싶다는 것이었다. 보다 열심히, 단 한 순간도 무기력해질 틈없이 뛰고 싶었다. 이전 직장에서 그럴 만한 동기를 찾지 못한 것이 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일단 비영리 기관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잘 버틸(?) 수도 있었던 직장을 스스로 그만두고 결국 선택한 일은, 요약하자면 전화로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직이다. 많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내며 끊어버리곤 했던 광고 전화, 그게 바로 내가 하게 된 일이다.

자발적 실업 이후 선택한 길, 영업직

직장 4~5년차 친구들. 돈벌이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결론은 그래도 뭐 버틴다다. 돈을 벌어야 벌어야 나름 잘나가는 삶을 '생각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 4~5년차 친구들. 돈벌이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결론은 그래도 뭐 버틴다다. 돈을 벌어야 벌어야 나름 잘나가는 삶을 '생각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싸이더스

관련사진보기


예전 한 시사 잡지에 그런 기사가 있었다. "매일 사표 쓰고 싶은 20대 직장 여성" 뭐 이런 제목이었던 것 같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분위기 탓이었다고 할까, 마침 그때 즈음 회사를 그만두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고 그런 얘기는 늘 그렇듯 빠르게 번졌다.

나 역시 직장을 막 그만두기 전이었는데, 내부 단체 메일에 그 기사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때 다른 30대 동료들은 '이거 완전 내 얘기인 줄 알았잖아'하며 뜨끔해했다. 하지만 나는 뜨끔하기보다 '여성만 꼭 집어서' 이야기 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칼퇴근 여성, 남성의 두 배' '자아찾기의 함정은 없을까' 같은 소제목들을 보며 단체메일로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싱글 여자이고, 서른한 살의 늦깎이 신입사원. 불안함과 두려움, 피곤함이 뒤섞여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많은 이들이 30대를 전후로 불안에 떤다. 20대의 조급함을 벗어버렸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30대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한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남자 대학동기 A. 그는 종종 '제길' 같은 메신저 대화명을 가지고 나와 접선(?)했다. "일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우리는 직장 4~5년차. 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B는 박봉을 감수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기력한 업무들에 지쳐하고,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친구 C 역시, 업무조정 때문에 은근한 압박을 받더니 결국은 그만두고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회계 관련 일을 하며 하루 종일 기계적인 일들, 도무지 발전이 없는 업무가 지겨워 죽을 것 같다는 친구들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이전저런 불만들이 난무할 뿐 거개의 투정은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거다. 일해야 한다는 거다. 일을 해야 돈을 받는다는 진리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두둑한 통장 잔고와 전문가 포스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 주말이면 멋진 애인과 여행을 즐기고, 잘 되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고운 피부와 날씬한 몸매 - 뭐 그런, 나름 잘나가는 삶을 '생각대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길" "죽지 못해 산다" 30대 직장인의 불안과 긴장

힘들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때려치고 싶은 직장이어도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힘들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때려치고 싶은 직장이어도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 마술피리

관련사진보기

제약회사 마케팅부에 다니는 친구 Q는 예전부터 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친구였다. 입사 5년차, 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으로 축하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애를 낳고 3개월 후 복직한 친구는 "아등바등 사는 게 정말 너무 지친다"고 조용히 말한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 다니던 친구 W는 임신을 하고도 아가씨처럼 예쁘게 꾸미고 다니던 전형적인 멋쟁이였다. 어느날 출산한 친구를 보러 집에 들렀다. '츄리닝'과 틀어올린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좀 부은 듯한 눈으로 안경을 끼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난 좀 슬펐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그렇게 임신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 R은 그나마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육아휴직을 잘 쓰고 있지만 아기를 어디에도 맡길 수 없어 집 밖으로 쉽사리 나올 수도 없다. "이 아이는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지만, 한순간도 맘 편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가끔 견딜 수 없이 슬프다"고 친구는 조심스레 말한다.

나는 그저 새로 선택한 일을 잘해야겠구나, 다짐할 뿐이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났다. 서른한 살,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원한다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일단 회사를 나왔는데 다시 취직하지 못하면 어쩌나, 헤어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때까지 난 변변한 데이트 한번 못하면 어쩌나, 다들 결혼하고 이대로 나만 외톨이가 되면 어떡하나… 뭐 여러 이유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다시 일을 알아볼 때,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말로만 듣던 경제불황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인데, 관련 분야의 경력이 없는 구직자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그야말로 많은 걸 감수해야 하는 인턴 정도다.

그 인턴마저도 어마어마한 경쟁률이고 그나마 대학 졸업한 지 오래된 구직자들에겐 먼 이야기다. 기본급 70만원. 판매를 하지 못하면 인센티브는 없다. 내 나이 서른하나. 예전 직장이 그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좀 더 버텼더라면,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하기도 했다.

힘들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이어도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을 관두고 그 경력을 포기하고 새롭게 뭔가 시작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일단 지금 멈추면, 다시 시작하는 기회라는 건 결코 100% 보장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지금 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매섭다.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야지

신입사원들 중 내가 최고령자다. 출근 며칠이 지나고, 동기들 중 아직 매출을 올리지 못한 몇몇에 내가 속해 있다. 사회는 전쟁터, 까딱하면 마지막 보루로 택한 영업직에서도 밀려날 수 있다.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악착같이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일 거다.

이제 교육이 끝났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못할 일도 아니라고, 나이도 있으니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도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하라고. 새로운 팀장에게 들은 말이다. 당연한 말이다. 한 번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서른 한 살 신입사원에게 더 이상 뒤로 갈 길은 없다.

지날달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률은 92만4천 명(3.9%)으로 1년 전보다 10만6천 명 늘었다. 또 취업준비자 56만8천 명, 아프거나 취업이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할 계획이 없는 사람 175만2천 명, 구직단념자 16만9천 명 등을 합치면 사실상 노는 인구는 341만3천 명에 이른단다.

'비경제활동인구 1600만 돌파… 사상 최대' 뉴스가 떠도는 요즘, 나는 이제 이곳에서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한다. 그곳에서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나의 친구들도, 그대들도, 악착같이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버텨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기를, 부디. 바란다.


태그:#직장생존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 보잘 것 없는 목소리도 계속 내다 보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