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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사회> 저자 김만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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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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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은 우리 경제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스트로스-칸 IMF 총재도 세계경제가 내년부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위기만 지나면 취업하기 좋은 사회가 올까? '이태백'도 '사오정'도 행복할 수 있을까?

<실업사회> 저자 김만수 박사(대전대 강사)의 답변은 "그래도 실업률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김만수 박사는 지난 2004년 <실업사회>에서 삼성전자의 재무제표,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등 각종 통계지표를 통해 '실업률 증가 경향의 법칙'을 제시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노동생산성은 증대되고 자본 규모가 확대되어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

따라서 경제위기가 끝나면 실업률이 일시적으로는 줄어들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계속 올라간다고 그는 보고 있다. 사회 여론이 기업에 일자리 만들기를 요구해봐야 별 소용없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지 고용을 창출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실업률이 낮아지면 기업에 불리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업사회>에서 김 박사는 자본주의를 "실업자와 빈민층이 존재하지 않으면 만들어내는 사회, 그들이 증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라고 표현했다. 또한 인터뷰에서는 "성장하도록 저주받은 사회"라고도 했다.

"실업률이 '0'이면 기업엔 재앙"

 <실업사회> 저자 김만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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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정부와 기업의 잡 셰어링 기조에 대해 "임금 깎아서 고용을 유지한다면, 노동자들만 고통을 부담하는 것이다, 기업은 고통 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은 그보다는 덜 줄이는 방식으로 합의해야 진짜 '잡 셰어링'이라는 말이다.

늘(?) 3%대를 넘지 않는 실업률 통계도 비판했다. 실업과 취업의 기준이 비현실적이어서 사실상의 실업자들이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그는 "3%대 실업률이 말하는 것은 '취업 못한 너만 바보'라는 것이다, 실업률이 30% 수준이 되면 사회체제와 구조의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대안은? 사실 별로 많지 않다. 그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도발적이고 역설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노동력 공급이 확 줄어야 수요 공급의 균형이 유지되고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귀중함을 인식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전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요새 학생들에게는 사춘기를 겪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직장 들어간 뒤 서른쯤 되어야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고민한다"면서 청년실업자들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에 10년쯤 미친 듯이 매달려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만수 박사와 했던 인터뷰 전문. 인터뷰는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3월 27일 오후 5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 우선 정부와 기업의 잡 셰어링 기조를 평가해 달라.
"예를 들어 '지금 회사 사정상 100명 중에 절반을 해고해야 하는데, 해고하지 않을 테니 임금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게 정부가 말하는 잡 셰어링이라면, 이건 기업이 고통을 분담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끼리 고통을 분담하게 하는 방식이다. 중소기업은 모르겠지만, 재벌과 같은 대기업은 임금을 절반까지 줄이지 않을 수 있는 여력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잡 셰어링이라면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임금은 절반과 (현재 임금의) 100% 사이에서 결정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노사 협상으로 그 중간쯤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동자는 결국 그 상품의 소비자이기도 하니까. 지나친 임금 삭감은 구매력 감소로 이어진다."

- 일자리 창출 대책에 대해 한시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정부도 인정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일단 긴급처방으로 취업문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기적으로는 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백수들도 유권자이니, 백수들의 고통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질문은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창출한다. 정부는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정부는 복지 정책을 확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네 도서관을 짓는다든지 방과 후 학교나 장애인복시시설 등을 늘리면 그런 분야의 일자리들이 창출될 수 있다. 사서 업무를 전공한 사람이나 복지를 전공한 사람들이 보람 있게 일할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강화되며 전체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이 조금이라도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에 그런 일을 할 의지가 있는지, 이 정부를 선택한 국민의 생각은 어떠한지도 궁금하다."

- 기업 처지에선 고용창출을 위해 뭘 해야 하나.
"사실 고용을 창출하는 건 기업의 관심사가 아니다. 기업의 관심은 이윤 창출에 있다. 이론적으로 실업률이 '0'이면 뽑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되는데, 이건 기업 처지에선 재앙이다. 기업이 더 이상 성장,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실업이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복지정책 외에 경제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도 있다. 삼성이나 현대 등과 같은 재벌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 된다. 대부분의 고용은 중소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려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지금보다 좀 더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중소기업정책을 통해 그렇게 되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정부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다. 쉽게 말해 정부가 누구 편을 드느냐 하는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장하도록 저주받았다"

 <실업사회> 저자 김만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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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사회> 분석에 따르면, 경제위기가 끝나도 실업난은 계속되는 것인가.
"외환위기 때부터 우리나라는 선진국형 실업 상태에 접어들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실업률이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점점 높아진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안 바꾸는 한 '실업률 증가 경향의 법칙'은 계속된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다는 말은 사람 대신 기계를 많이 쓴다는 말이다. 이러면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어 노동력의 공급 과잉이 일어난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노동력 공급을 줄이려는 노력이 출산율 감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데, 이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실업률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를 알려면 결국 (출산을 주로 맡고 있는) 여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 볼 때, 완전고용이 장기간 지속되면 노동규율이 약화되고 노동조합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져 인플레가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완전고용이 이루어진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1970년대에 2% 수준의 실업률을 보일 때도 완전고용은 아니었고, 사실상의 완전고용이었다고 해도 임금은 인상되지 않았다. 사실 난 이제 경제 성장에 별로 관심이 없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버리는 게 행복인가?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게 선진인가? 이런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는 성장하도록 저주를 받은 사회다. 성장하지 않으면 고용은 창출되지 않는다. (퇴직하는 사람만큼만 창출된다.) 인간을 더 많이 착취하고 자연을 더 많이 약탈하고 상품을 더 많이 소유하려는 매일매일의 '소란'(웬델 베리, 미국의 문명비평가)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 사람들이 '소란'에 참여하는 것은 불안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안전망이 없으니까 지금 안 벌어두면 언제 낙오될지 모르고, 집값이 뛰니까 지금 안 사두면 죽을 때까지 내 집 마련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크다.
"모두 불안하다. 우리 사회는 생존 경쟁이 아니라 생존 전쟁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개인의 선호이자 선택의 문제다. 그러니 낙오되지 않겠다고 하고 내 집 마련하겠다고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러면 모두 자기 일만 생각하게 된다. 체제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각자 각개전투로 불안을 해결하도록 인간을 다그치는 방법은 많다."

-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실업률은 3.9%다. <실업사회>에서 실업률 문제와 관련, 취업이나 실업에 대한 현실적 개념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늘(?) 3%대다. 이번 통계치는 4.X%를 안 넘기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나도 통계 표본이 되어 조사원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조사원이 찾아와서 일사천리로 묻는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지금 일하고 있냐?', '일자리 구하고 있냐?', '일할 의사가 있냐?' 그런 것들이다. 악의적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수치는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늘리면 된다. 주부는 일하고 싶은 사람도 모두 비경제활동인구다. 구직활동을 단념하는 사람도 비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된다. 취업 준비하며 '알바'하는 사람들처럼 사실상의 백수들에 대해 통계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취업자로 계산된다. 사실상의 백수를 온전히 고려하면 현재 한국의 실업률은 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적 재앙 수준이다.

3%대 실업률이 말하는 건 뻔하다. 다른 사람들 다 취업하고 있는데 왜 너만 못하냐는 거다. 취업 못한 너만 바보라는 거다. 이번에 강의하면서 취업 못한 고대생의 자살에 대해 느낀 점을 써보라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왜 죽냐, 그 의지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실업률이 30% 되면 그건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인류의 미래는 여자에게 달려 있다, 애 낳지 말자"

- 실업을 극복하는 운동과 실업자도 인간답게 살자는 운동, 어느 쪽이 더 필요한가.
"실업 극복은 고용 창출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운동세력이 아니라) 주로 기업이 고용을 창출한다. (물론 기업은 해고도 창출한다!) 나는 일을 해도 누군가는 실업자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면 실업자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의 운동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운동이든 운동을 하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결국 실업자운동에도 조직이 필요하다."

- 노동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조직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운동에 많은 요구를 할 수 있다. 임금도 올리고 노동조건도 개선하고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들과 연대하고. 말은 많이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노조는 가입률이 매우 낮다. 노조 안에서도 일의 선후를 따져 노선투쟁을 할 것이다. 당위의 차원에서는 요구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노조에게 적절한 요구인지는 의문이다."

- 이외수의 '백수가'를 개인적 차원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취업은 늦게 하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귀한 직업에 종사하라는 내용인데, 요즘 같은 시기에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권하기 쉽지 않다.
"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고시공부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말이 무의미하니 그는 계속 고시공부를 할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사춘기를 안 겪는 것 같다. 사회가 그럴 여유를 안 준다. 제때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며 미친 듯이 공부만 한다. 공부해 대학 가면 다시 학점 따고 영어 배우느라고 바쁘다. 졸업해 첫 직장 들어가 서른쯤 돼야 '이게 내가 할 일인가' 하면서 사춘기를 겪는 것 같다. 그런데 '백수가'는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자신의 인생인데, 한번쯤 생각할 수는 있지 않을까?

기업이나 정부 쪽에서 요새 젊은이들에게 하는 비난도 자제했으면 한다. '요새 젊은이들은 편한 일만 찾고 연봉 많은 직장만 찾는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일은 죽어라 힘들게 하면서 적은 돈 받는 게 옳은 건가? 그건 미친 거다. 기업은 생산성이나 수익성, 타당성 등을 검토하여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합리적 선택을 한다. 개인도 취업하여 손익을 따진다. 자신의 지식과 기술과 능력, 그걸 얻으려 쏟은 돈,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그 시간에 받는 스트레스 등을 모두 계산하고 그 반대급부로 받는 임금을 저울질한다. 이걸 계산해보니 남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투자 안 한다고, 편하게 돈만 벌려 한다고 기업을 비난하나? 왜 그런 비난을 개인에게만 하는 걸까?"

- <실업사회>에서 실업자 개인의 불만이 쌓여 집단화되고, 연대가 사회세력으로 성장할 때까지 실업률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회적 연대가 가능할까.
"지배하는 집단이 얼마나 교묘하고 교활한지, 지배받는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달려있다. 지배자에게는 피지배자를 분열시킬 방법이 많다."

 <실업사회> 저자 김만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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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개인의 불만은 오히려 재테크 열풍, 사교육 경쟁 등으로 이어지지 않나.
"생존전쟁에서 개인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선택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힘을 모았으면 좋겠는데, 이 또한 앞의 질문과 관련되는 문제다. 힘이 모이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더 당하는 방법도 있다."

- <실업사회>를 쓰고 5년이 지난 지금, 새로 구체적인 대안을 생각한 것은 없나.
"대안은 본질상 구체적인 게 아니다. 구체적인 건 방법이다. 난 대략의 방향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결국 싸움이 결판낼 것이다. 예를 들겠다. 노예제 사회에서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노예를 부리며 노예의 생사여탈권도 갖고 있다. 그는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노예도 짐승이 아니니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옳다. 둘이 싸워 이기는 쪽이 옳은 것이다. 옳은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쪽이 옳은 것이다. 삶은 투쟁이다."


태그:#실업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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