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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뒤뜰에서 할머니 한 분이 쑥을 캐고 계십니다.
▲ 쑥 캐시는 할머니 학교 뒤뜰에서 할머니 한 분이 쑥을 캐고 계십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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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따뜻한 학교 뒤뜰에 할머니 한 분이 쑥을 캐고 계십니다. 손자 손녀들 또래 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재잘거리며 옆을 지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쑥을 캐는 모습을 한참 지켜 보았습니다.  밖에 나 다니실 때, 지팡이 대신 밀고 다니는 작은 손수레를 옆에 두고 쑥을 캐는 모습을  보니 2년 전, 아흔 셋을 일기로 아침 밥숟가락 드신 채 꽃잎 지듯 스르르 잠드신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할머니가 남기신 돈 400원

할머니께서 쓰시던 것을 우리 집에 옮겨 놓았습니다.
▲ 소나무 궤짝 할머니께서 쓰시던 것을 우리 집에 옮겨 놓았습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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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시집 오실 때 가져 오셨다는 소나무 궤짝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리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아내가 물려 받은 셈이지요. 할머니 생전에 그 궤짝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돌아가신 지 두 해가 지났지만, 궤짝을 거실 한 켠에 놓으니 할머니 냄새를 맡는 것 같아, 볼 때마다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그 궤짝 안에 들어있던 하얀 옥양목 한 필,  할머니께서 젊었을 때 손수 베를 짠 것이라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탓에 아내는 황토로 물을 들여 창문 가리개를 하려고 세탁기에 넣고 돌렸습니다. 빨래가 다 되어 세탁기에서 옥양목을 꺼내던 아내가 종이돈 넉장을 조심스럽게 건네 주면서 내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거 옛날 돈인데 얼마나 오래된 거예요?"

 
아내 손에서 종이돈 넉 장을 받아 들고 자세히 살펴봐도 발행 연도가 없습니다. 아마 삽십년은 넘었을 듯 싶은 100원짜리 넉장이었습니다. 거친 세탁기 물살을 잘 견디고 우리 손에 쥐어진 400원, 액면가로 따지면 강냉이 튀밥 한 봉지도 살 수 없는 적은 액수지만, 그 돈을 옥양목에 곱게 싸서 비자금처럼 궤짝 깊숙이 넣어 두고 흐뭇해 하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400만원도 더 되는 가치로 전해집니다.

한편으로는, 그 돈이 당시에는 꽤 큰 가치였을 텐데 써 보지도 못하고 보낸, 할머니의 망각의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가난한 농촌 살림에 어찌 그 돈을 잊으셨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옥양목 같은 할머니의 삶

할머니께서 남기신 돈입니다.
▲ 옛날돈 400원 할머니께서 남기신 돈입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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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유월, 아침부터 매실을 딸 욕심에 일찍 매실밭으로 간다고 문안인사도 못 드렸는데 매실을 따기 시작한 지 채 한 시간도 못 돼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작은 어머니만 할머니와 함께 아침을 드시던 중이었습니다.

"야야, 할머니가 이상하다. 어서 와야겠다."

전화를 받고 급히 달려가니 막 숨을 모우시는 중이었습니다. 할머니를 안고 "할머니, 할머니" 몇 번 부르니 슬며시 눈을 떠서 한 번 보시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그야말로 밥숟가락 드신 채, 꽃잎이 지듯 스르르 눈을 감으셨습니다. 평생 어질게만 사신 할머니를 그렇게 보내 드렸습니다. 

아침마다 "할머니, 매실밭에 갔다 올게요"하며 손 잡아 드리면 "오냐, 그래 그래"  농사 짓는 큰손자가 애잔한 듯 웃어 주시던 할머니를 그날 아침은 손도 잡아 드리지 못하고 보내 드렸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가슴에 아픔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열여덟에 시집을 오셔서 할아버지와 함께 예순 여섯 해를 사셨습니다.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참 오래 사신 셈이지요. 우리가 결혼을 해서 12년을 모시고 살았는데, 곁에서 지켜 보는 우리가 감동을 받을 만큼 두 분은 금슬이 좋으셨습니다. 40년을 모시고 사신 제 어머니도 두 분이 큰 소리로 다투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 삶에도 아픔은 많았습니다. 두 분이 오래 사시다 보니 칠남매 자식들 가운데 다섯을 먼저 가슴에 묻는 큰 아픔을 겪었지요. 자식을 하나 둘 먼저 보내면서 그 아픔을 참아내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보니 어머니라는 이름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지 배웠습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도 살아야 하는 게 모진 사람 목숨이라며, 늘 한을 토해 내시던 할머니 삶은 하얀 옥양목 같았습니다. 헤진 이불 호청을 빨아 빳빳하게 풀 먹이고 다시 꿰매 덮는 날, 그 감촉과 냄새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전해 옵니다.

할머니가 남기신 것은 세월입니다

소나무 궤짝에 들어 있던 옥양목
▲ 옥양목 소나무 궤짝에 들어 있던 옥양목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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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거쳐 돈을 얻었으니 돈세탁을 한 셈입니다. 세상에서 회자되는 돈세탁이 어떤 경로로 되는지 잘 모르지만, 평생 농사를 지으며 숨겨 둔 비자금 한 푼 없는 사람이 그나마 이름만이라도 돈세탁을 한 번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전에 숨겨 둔 할머니의 비자금인지 모르지만, 액면가 400원의 종이돈 넉 장을 돈세탁 하고 보니 즐겁기만 합니다. 검은 돈을 숨기기 위해 돈세탁을 한다는 이야기를 대충 들은 터라  우리도 돈세탁을 했다고 아내와 함께 마주보며 한참 동안 웃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저희한테 남겨 주신 것은 오래된 소나무 궤짝과 옥양목 한 필, 그리고 100원짜리 종이돈 네 장입니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따져 무엇하겠습니까?  돈으로 살 수 없는, 세월이 고스란히 스민 할머니의 흔적이 늘 내 곁에 있는데 더 무슨 가치를 바라겠습니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할머니, #옥양목,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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