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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아인펠드 전 연방법원 판사의 영욕을 특집으로 보도한 호주국영 abc-TV.
 마커스 아인펠드 전 연방법원 판사의 영욕을 특집으로 보도한 호주국영 abc-TV.
ⓒ 호주abc-TV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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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오전, 뉴사우스웨일스(NSW) 고등법원에서 호주 사법부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재판이 열렸다. 마커스 아인펠드 전직 연방법원 판사(70)가 상급법원 판사로는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

그는 NSW주 부총리를 역임한 시드 아인펠드의 장남으로, 명문가 출신이다. 거기에다 명문학교인 <시드니보이스하이스쿨>과 <시드니대학교> 법대에서 공부한 호주의 대표적인 엘리트 법조인이었다.

마커스 아인펠드는 1977년에 호주 변호사의 최대 영예인 영국여왕 고문변호사(Queen's Counsel)가 됐고, 1986년에는 연방법원 판사로 위촉됐다.

그리고 2001년, 그는 15년 동안 재직한 연방법원 판사직을 정년퇴임했다. 그 후로는 시드니 시너고그(유대인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은퇴생활을 시작했다. 전립선암을 앓는 것 말고는 그늘진 곳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롱베이 감옥에서 1주일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언론은 아직도 그의 행적을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전직 엘리트 법조인.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 연방법원 판사에서 하루아침에 수감자로

2006년 1월 8일 오후 4시 1분. 마커스 아인펠드 전직 연방법원 판사에게 운명적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그 시간에 그가 운전했던 자동차가 스피드 카메라에 찍힌 것. 그는 시속 50Km 구간에서 60Km로 운전하여 77 호주달러(약 7만 원)의 벌금스티커를 발부받았다.

아인펠드는 전직 방송인이며 친구인 비비안 첸커와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연방법원 판사 퇴직연금을 매년 20만 달러나 받는 입장에서, 77 달러는 그냥 납부하면 그만인 작은 돈이었다.

문제는 운전 위반자에게 부과되는 벌점이었다. 그 당시 그는 점수가 4점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벌점 3점을 추가로 받으면 머지않아 운전면허를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판사 출신답지 않게 스피드를 즐기는 편이어서 수시로 운전면허 취소의 위기를 맞았다.

그는 오랜 궁리 끝에, 일평생의 명예를 통째로 잃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지방법원에 제출할 진술서를 쓰면서 "내 자동차가 스피드 카메라에 찍히는 날, 나는 시드니 북부도시 포스터에 있었다. 내차는 미국에서 온 친구 테레사 브레넌 교수에게 빌려주었다"고 거짓진술을 한 것.

명예를 잃은 연방판사.
 명예를 잃은 연방판사.
ⓒ 시드니모닝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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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 벌점 3점 피하려다 날려버린 '명예'

2006년 8월, 지방법원은 아인펠드의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여 부과했던 벌금과 벌점을 취소했다. <데일리텔레그래프>의 비바 골드너 법원담당 기자는 그 사실을 짧게 써서 데스크로 보냈다.

그날 데스크를 맡았던 마이클 비치 부편집장은 브레넌 교수의 경력을 기사에 추가하기 위해서 인터넷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입력했다. 그 순간, 믿기 어려운 사실이 확인됐다. 브레넌 교수가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자동차 뺑소니사고로 3년 전에 사망한 것.

비치 부편집장은 아인펠드에게 확인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는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테레사 브레넌 교수가 아니고, 내가 방글라데시를 방문했을 때 만난 동명이인 테레사 브레넌"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또 있었다. 이름만 똑같은 게 아니라,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기사는 보류됐고, 비치 부편집장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그 후 2년 동안 꼼꼼한 취재와 경찰 조사가 이어졌다.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론과 경찰은 결정적인 증거를 계속해서 찾아냈고, 아인펠드는 수습불능의 미궁으로 빠져들어 갔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을 수습하기 위해 세상에 없는 사람까지 만들어내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

작은 거짓말이 키운 범죄... 세상물정 몰랐던 노인판사

마커스 아인펠드 전직 연방법원 판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변하는 사회시스템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70세 가까운 노인이었다. 또한 상급법원의 위엄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오랫동안 단절시켜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그는 시드니 곳곳에 CCTV가 설치됐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위치추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났다는 테레사 브레넌은 그가 만들어낸 100% 허구였다. 그렇게 잘못 끼워진 첫 번째 단추 때문에 아인펠드는 자꾸만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옥죄어 오는 언론의 추적보도 때문에, 그의 두 번째 거짓말은 첫 번째 거짓말보다 더욱 정교해졌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공인물과 아주 구체적인 내용의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그녀에게 자동차를 빌려주면서 E-태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가르쳐주었고, 시드니를 여행할 만한 명소들도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의 창작은 '유령과의 대화'를 진술서에 기록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방법원과 언론에 내놓는 진술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는 유령의 외모까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녀는 보통 키로 내 어깨에 닿을 정도였고, 날씬한 몸매에 진하지 않은 갈색 머리를 지녔다."

이어 그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북미 악센트를 사용하는 남자로부터 전해 듣는 것으로 그의 창작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의 대단원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아인펠드는 그 대목에서 운명의 날에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전 방송인 비비안 첸커를 다시 끌어들였다. 첸커 어머니의 자동차를 빌려서 시드니 북쪽 도시로 갔다고 꾸민 것.

그러나 그것은 '빅브라더 시대'의 도래를 알아차리지 못한 70대 노인의 결정적인 실수였다. 미디어와 경찰은 첸커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CC-TV 당일 기록을 확인했다. 자동차는 온종일 주차장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아인펠드는 그 대목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법원에 유죄를 인정하고 재판을 받기로 한 것. 언론으로부터 모든 것이 다 밝혀진 다음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타고난 거짓말쟁이고 위선자였을까?

"나는 부정직한 사람 아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택시를 타고 법정에 출두한 아인펠드 전 연방법원 판사.
 택시를 타고 법정에 출두한 아인펠드 전 연방법원 판사.
ⓒ 호주abc-TV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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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아인펠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70 평생 동안 온몸으로 실천한 모범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동성애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 호주 애버리진 인권운동, 난민 인권운동 등을 열정적으로 펼쳤다.

특히 그는 호주 내륙에 위치한 투멜라 원주민 집단거주지역의 참상을 폭로하여 연방정부가 상수도와 전기 시설을 완비하도록 만들었다.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가 완공되는 날, 원주민들과 어울려 춤을 추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호주 TV에 자주 등장했다. 그런 연유로 일부 애버리진은 그를 "호주의 만델라"로 불렀다.

아인펠드는 호주사회봉사단체인 <오스트케어> '난민 대사'를 맡아, 철창에 스스로 갇혀서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는 난민의 참혹한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또한 <유니세프> '어린이 대사'를 맡아서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등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빈민퇴치 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지난 2002년, UN은 그의 인권운동과 사회정의를 위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여 UN상을 주었다. 호주 <내셔널트러스트>에서도 그를 '살아있는 보물' 명단에 올렸다. 호주연방정부에서도 40년 동안 이어진 그의 봉사활동을 평가하면서 '명예로운 호주인 메달'을 수여한 바 있다.

그럼 이쯤에서 아인펠드의 변명을 들어보자. 호주국영 abc-TV의 시사프로그램 '포 코너스(Four Corners)'가 그 역할을 맡았다. 젊은 여성 진행자 사라 퍼거슨은 곤혹스럽고 슬픈 표정을 짓는 노인의 눈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결정적인 대목에 이를 때마다 아인펠드를 몰아붙였다.

"당신은 습관적으로 부정직한 사람이 아닌가?"
"아니다. 나는 부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만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다. 나쁜 상황에서 나의 분별력을 잃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마음속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 캄캄한 터널을 빠져나오자고 외치는 데, 나는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반복적 자기암시로 인한)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그동안 나를 신뢰하고 성원해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치부를 내보이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그토록 훌륭했던 인물, 마커스 아인펠드는 어디에 있었나?"
"사라졌다. 사라졌다. 서서히 소멸했다."

벌점 3점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징역형에 처해진 호주의 은퇴한 연방판사 마커스 아인펠드(좌)와 판사들에게 촛불재판 압력메일을 보내고 국회에서 위증했던 한국의 신영철 대법관(우).
 벌점 3점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징역형에 처해진 호주의 은퇴한 연방판사 마커스 아인펠드(좌)와 판사들에게 촛불재판 압력메일을 보내고 국회에서 위증했던 한국의 신영철 대법관(우).
ⓒ 호주 abc-TV 화면캡처/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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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펠드 연방판사와 신영철 대법관, '다른' 운명

지난 3월 20일, 뉴사우스웨일스 고등법원 브루스 제임스 판사는 "피고의 행위는 치밀하게 계획한 위증과 의도적인 범죄행위로 최고 3년,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2년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제임스 판사는 판결문의 끝부분에 "법의 정의를 모독한 죄"를 거론하면서 "그는 사법부의 심장을 강타했다"고 질타했다. 제임스 판사는 이어 "그는 오랫동안 변호사와 상급법원 판사에 재직하면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을 위반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나 제임스 판사는 연방법원에 재직했던 대선배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부담감을 떨칠 수 없었는지 "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경구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법정 여기저기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2년 선고가 내려지면서 역사적인 재판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비상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교도관이 명예를 잃어버린 노인을 롱베이 감옥으로 향하는 호송차에 태웠다.

한동안 만신창이가 됐던 호주 사법부가 길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진실의 순간'이었다. 판사들에게 촛불재판 압력 메일을 보내고, 국회에서 위증한 신영철 대법관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상당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태그:#호주 연방판사, #신영철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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