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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학생으로부터 쪽지를 받았다. 쪽지에는 요일별, 시간대별로 아이의 방과후학교 수강시간을 표시해 놓고, 아이를 학원수업시간에 늦지 않게 보내달라는 학부모의 부탁이 적혀있었다. 방과후수업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까지 이뤄지는데, 아이는 매일 오후 4시 이후부터 오후 6시까지 국어, 수학, 미술, 피아노까지 5과목에 달하는 학원에 다녀야 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많은 과목을 수강하면 어떻게 방과후수업을 진행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직장 일도 있지만 아무리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학원을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이유를 댔다.

이 학생의 어머니가 유별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26일자 주요 신문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중·고 학생의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지난해 10월 현재 36%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방과후교육이 시범 과정을 거쳐 지난 2006년, 전면으로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났건만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자격증 준다'고 선전할 땐 언제고...

종이접기 작품 막내 아들이 자격증 취득의 꿈을 안고 참여했던 프로그램 작품들, 작품에 묻어 있는 흔적을 볼때 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 종이접기 작품 막내 아들이 자격증 취득의 꿈을 안고 참여했던 프로그램 작품들, 작품에 묻어 있는 흔적을 볼때 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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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지난해 막내 아들이 종이접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시킨 적이 있다. 프로그램 안내서를 보니, 1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면 협회 이름으로 자격증도 준다고 했다. 기왕이면 종이접기도 배우고 자격증도 따면 더 보람있을 것 같았다.

워낙 조용히 앉아서 혼자 무엇을 하는 걸 좋아하는 아들은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에 성실히 참여했다. 학년이 끝날 즈음 마지막 수업이라 '오늘 자격증을 받아 오겠구나!' 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막내 아들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 들어왔다.

"엄마! 자격증 못받았어요! 안 주던데요! 꼭 받아서 엄마 기쁘게 해드릴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기가 막히고 화가 치밀었다. 프로그램 안내서에 나와 있는 강사에게 전화해 이유를 물었다. 강사는 "처음 수업할 때 자격증 취득한다고 안 했잖아요. 그래서 일반과정으로 수업했어요. 자격증 과정은 몇 작품 더 해야하는데…"라고 말했다. 안내문에는 분명히 '일년 동안 꾸준히 하면 아동종이접기 자격증을 준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후로 막내 아들은 더 이상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 실망감과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앉아서 종이접기 책 한 권을 접던 애가 지금은 손도 대지 않는다.

"학원은 돈 받은 만큼 애라도 쓰지만"

연극수업 학교에서 직접 강사를 채용하여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수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연극수업 학교에서 직접 강사를 채용하여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수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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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우리 아이의 사례뿐만 아니라, 그 교육에 연관성이나 책임성이 떨어지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활성화 되어 있는 컴퓨터의 경우, 접수를 시작하면 장사진을 이룬다.

접수시 선착순으로 학생을 모집한다면서 많은 선물을 미끼로 내놓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선물이라는 것이 연예인 사진이나 게임캐릭터, 컴퓨터 게임 CD 등 초등학교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대부분이다.

사설 업체 강사를 파견하는 경우, 수시로 강사가 교체되어 학부모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프로그램이 개설되더라도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면 수업 자체가 폐쇄되고 그 책임은 강사가 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6개월~1년 정도는 수업을 해야 내실 있는 수업이 진행되는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2~3개월 짜리 단기프로그램 개강과 폐강이 반복되어 아이들이 겪는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 방과후학교 강사들은 학생들 인원수가 곧 수입과 직결되는데, 그러다보니 수업의 질적 내용보다는 이벤트에 더 신경을 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사탕을 준다거나 계속해서 몇 번 등록하면 '피자, 햄버거 파티를 해준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게 그것. 그러다보니, 학생들이 방과후수업의 내용과 상관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니, 방과후수업을 믿지 못하고 사교육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학부모들 잘못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부모 K씨는 "왠지 학원은 돈 받은 만큼 값어치를 하려고 애를 쓰는 게 피부로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냥 형식적으로 시간 채우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아요. 강사들의 열의도 부족하구요. 그러니 어떻게 학원을 안 보내요. 부모들도 힘들어요. 이중 삼중으로 부담을 해야 하니… 학교에서 다 해결되면 얼마나 좋아요" 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프로그램 수 늘면 뭐하나

방과후교육의 성과가 현실과 달리 부풀려져 있는 것도 문제다. 각 학교는 방과후학교 운영 결과를 교육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한 명의 학생이라도 신청을 하면 수업이 개설되는 것으로 보고는 되지만, 사실 운영은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가령 영어 방과후수업의 경우, 수준별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참여 학생이 적은 경우는 종종 다른 학년과 통합 수업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방과후학교가 애초 처음 의도와 다른 결과들을 낳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사교육을 부추기고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에게는 의욕 상실의 상처마저 주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순진하게도 방과후학교가 사교육을 물리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방과후학교 활성화 방침에 따라 2005년 29만6000여 명에서 2006년 40만9000명, 2007년 46만7000여 명을 기록하는 등 참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또 '프로그램 수도 2007년 2만3959개에서 지난해 3만844개로 28.7% 늘어 방과후학교 운영의 물적 토대는 어느 정도 마련됐다'고 한 신문이 보도해서 하는 말이다.

방과후학교 운영이 통계 숫자와 참여율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교육과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계획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학교와 방과후교육과 사교육의 틈 바구니에서 끼어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을 자유롭게 해줄 방법은 진정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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