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윤리위에 회부된 신영철 대법관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서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법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소통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능력은 폄하되고, '법'이 진실인양 군림하며 나와 우리의 문제들을 심판하는 유일한 능력자로 추앙받고 있다.

 

법만 거스르지 않으면 아무리 나쁜짓을 해도 잘먹고 잘살고, 지금의 권력자들은 유난히도 법질서와 법대로를 부르짖고 있다. 그 와중에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사회운영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법을 활용할만 한 힘과 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면죄부가 되고,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저승사자로 변질되고 있다.

 

'신뢰'라는 동맥을 스스로 끊어버린 '식물판사'

 

그런 와중에 일이 터졌다. 대법관이라는, 한 나라의 법질서를 수호하는 최정점에 있는 인사가 부지런하게도 메일에 전화도 모자라 직접 판사들을 찾아다니며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리도록 재판에 개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법이란, 질서의 수호자가 될 수는 있어도, 진실의 수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법이 삶과 사회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최고의 가치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판결을 통해, 법에 규정된 권한과 권력을 통해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는 내용은 없는 껍데기만 남아있는 가짜 법치주의자들의 행동은 대법관이라는 고결한 직분까지 오염시켜 버렸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모른척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만하면 자기 식구를 감싸려는 성향을 보이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들로부터도 "재판에 개입했다"는 조사결과를 받아든 '영철씨'는 아무런 말이없다. '영철씨'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법치를 모욕한 것인지를 인정하고 물러나든, 아니면 그대로 자신의 자리에 눌러앉아 국민의 세금을 축내든 그는 더 이상 법관일 수 없다. 다만 그가 원가상승 압력에 못이겨 결국 1000원 짜리 햄버거를 500원 인상한 뒤 사람들에게 너무도 미안해 하는 '영철버거'의 영철씨 같은 비단결 같은 마음을 회복하기를 바랄뿐이다.

 

'영철씨'의 재판개입사건은 똑똑하기로는 한반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가장 멍청한 짓을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인간의 품위와 삶의 질은 똑똑함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한다. 법관의 동맥과도 같은 '신뢰'를 자기 스스로 끊어버린 안타까운 자해사건으로 법관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식물법관'에게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않았다 송신도 할머니와 재판지원 모임 사람들

▲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않았다 송신도 할머니와 재판지원 모임 사람들 ⓒ 영화제작사

진실을 덮는 법정을 보여주는 두 편의 영화

 

'영철씨'에게 추천하고 싶은 두 편의 영화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다. 영화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것이지만 재판에 대한 영화다. 그래도 지지않았고, 하지 않았다는 제목처럼 재판에서 패배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 두편의 영화는 법이, 그리고 법원이 진실과 정의의 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16세에 중국의 전장에 끌려가 일본군의 성욕을 해소하는 기계로 취급당했던 송신도 할머니.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한 시골에서 억울한 인생을 하소연 할 곳 없이 조용하게 살아온 할머니는 일본인들이 정신대 할머니들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연락이 닿는다. 너무도 생생한 할머니의 증언에 사람들은 바로 지원모임을 조직하고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재판을 진행한다.

 

"힘든일인데 하시겠어요?"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해야지!"라며 재판에 임한 송신도 할머니는, 전쟁범죄의 피해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당찬 기운으로 힘든 재판과정을 눈물과 웃음이 머무려진 드라마로 만들어간다. 시민들의 성원, 할머니의 의지, 그리고 변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법정은 할머니의 소송을 기각한다. "일본정부가 잘못한 건 맞는데,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돈도 바라지 않고, 단지 일본정부의 '사과'를 청구한 소송에 대한 법원의 이런 결론에 '부당판결'이라며 모두 조롱하지만 이 결론은 상급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 영화는 허구가 아닌 사실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법정이 진실이 아닌 법질서와 법조문의 수호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을 잘 여준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일본 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든 간에 일본 정부는 너무도 큰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철씨'도 이 영화를 보면 법과 재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왜? 똑똑하니까!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진실을 덮는 법정

▲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진실을 덮는 법정 ⓒ 영화제작사

공교롭게도 '영철씨'에게 소개할 두번째 영화도 일본법정을 다룬 영화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 영화계도 조폭영화만 만들지 말고 좋은 법정영화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려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는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한 청년의 법정투쟁기를 보여준다. 사건을 재연하는 비디오 제작 등과 같은 변호인의 끈질긴 노력과 청년이 여러가지 불이익에도 자신의 무죄를 일관되게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유죄를 인정하고, 성추행범에게 내려지는 일반적인 형량을 부여해 청년을 전과자로 만들어버린다. 법원은 소극적으로 검찰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을 뛰어넘어, '죄를 자백하면 관용을 베풀겠노라'고 하지도 않은 일,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라는 예단과 편견을 드러낸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집에서 야동이 나왔다고 성추행범이 확실하다는 판단을 하는 한편의 코미디 같은 법정에서 선량한 한 청년은 졸지에 성추행범으로 공인된다.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통해 유.무죄를 판단받을 기회를 봉쇄당한 채 반성과 자백을 강요하는 법질서에 힘없는 청년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지금도 이 땅에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분노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법질서의 희생양들이 많다. 법이 곧 진실이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의 최소한에 불과한 법을 도덕과 진실의 자리에 모시고 법질서를 부르짖고, 불법행위에 대해 엄단하겠다며 국민에게 대드는 권력자와 법률가들이 진실의 수호자로 군림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짐승의 법치를 인간 사회에 꾸겨넣으려고 하는 개념없는 법치의 시대에,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법원에 그 해답을 구걸하는 정치 무능의 시대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영철씨'에게 이 두편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영철씨'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진실의 수호자라는 헛된 생각을 버리길 바란다. 법률가는 다만 진실을 추구하고, 가까이 다가가려 힘쓸 뿐 진실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회복하기 바란다. 법이 곧 진실이라는 교만으로 인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교도소에 갇혀 자유를 억압당하고, 억울함으로 평생을 살아가며 거리에서 방패에 찍힌 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근신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http://www.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2009.03.20 15:05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http://www.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신영철 법치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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