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영철 대법관, 그가 참 끈질기게 오래 버티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신뢰가 생명인 사법부의 '신뢰'를 다 떨어뜨려 놓고···."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답답한 듯 웃었다. 그는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의 신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했다. 결국, 신 대법관은 사법부 신뢰를 크게 깨뜨렸으니 기본적으로 법관의 자격이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재판 관여 소지가 있다"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신 대법관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17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인섭 교수를 만났다.

 

한 교수는 '사법 파동'으로까지 비유되는 지금의 상황을 차분한 어조로 진단하며 개별 법관 독립을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법관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해야 하며,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보여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에 이미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며 "그는 법관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별 문제가 안 됐는데, 독립된 사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며 "외압 못지않은 법원 내 서열과 관료주의를 극복하고 개개 법관들이 동등한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민을 적으로 삼고, 형법을 공격 무기로 사용"

 

한 교수는 지난 5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 공판에 직접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한 교수는 "촛불을 수사하는 검찰이 정치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촛불시위를 정치적으로 단죄 기소하는데, 이건 정치적 과정이다"며 "법원이 판결할 때는 (검찰의) 정치적 색채를 탈각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 내내 한 교수는 정부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삼갔다. 하지만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는 형법 학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과 원칙을 가감 없이 밝혔다. 

 

"(정부는) 준법,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입법을 하고, 국민의 감수성에 맞고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법집행을 해야 한다. 국민의 일부를 적으로 삼고, 적에 대해 타격하고 공격하는 식으로 법이 운영돼선 안 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형법이 국민에 대한 공격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의 약점을 샅샅이 뒤지고 거기서 한 건 잡아 공격을 한다. 또 '저 사람 처벌해야 하는데···'하면서 법조문을 뒤지고, 처벌할 수 있는 법조문을 찾으면 '만세!' 부르고···. 이런 건 형법을 탄압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법 집행이 그래선 안 된다."

 

아래는 한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신 대법권 신뢰 잃어 법관직 유지 못해"

 

- 신영철 대법관(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메일 등에 대해서는 '재판 관여 소지가 있다'고 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신 대법관이 왜 아직도 사퇴를 안 하는지 모르겠다. '법관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해야 하며,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보여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신 대법관은 중앙지법원장 시절에 이미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법관들에게도 신뢰의 도전을 받았다. 그 정도면 법관직을 유지할 수 없다."

 

- 지적한 대로 사법부가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말이 많다.

"알렉산더 해밀턴(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입법부는 지갑을, 행정부는 칼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지갑도 칼도 없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

 

사법부 신뢰의 제1기초는 사법부의 독립, 법관 독립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하지만 신 대법관 사건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별 문제가 안 됐다. 독립된 사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새롭게 대두됐다. 우리나라는 사법부의 독립은 이뤄졌지만 개별 법관의 독립에서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게 드러났다.

 

신 대법관은 재판에 직접 관여했다. 그다음에 사법행정권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관여했다. 그 두 가지가 결합이 되면 개별 법관 모두가 영향을 받게 돼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개별 법관이 용기 있게 (재판 관여를) 거부할 수도 있고, 소신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신을 편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소신을 굉장히 무리하고 힘들게 행사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문제의 책임이 있는 그) 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있다. 국민들이 신뢰를 하겠나."

 

- '독립된 사법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이 그 전에는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독립과 개별 법관의 독립은 다른 문제라는 게 드러났다.

 

한 재판부는 부장판사와 우배석 좌배석 판사로 구성된다. 다 같은 법관으로서 판단은 동등하게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부장판사를 상사처럼 생각한다면 삼인합의체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법원의 문화를 보면 모든 법관들이 아주 대등하게 같은 법관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배석 판사에서 대법관까지 보이지 않는 서열과 단계가 층층이 존재한다. 이런 상태에서 정말 개별 법관의 독립이 유지될까?

 

신 대법관 사건을 보자. 중앙지법원장은 인사평정에 관여한다. 인사권자의 심기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다. 물론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같이 정보원들의 사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시시하게 그런 것에 외압을 느끼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많이 안정됐다. 지금의 일상적 작은 불편은, 옛날 권위주의 시대의 외압과 같은 압박적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진상조사단이 '대법관'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나"

 

- 집시법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던 박재영 판사가 사표를 내는 등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작년 연말 연초,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대대적 인사조치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청와대 쪽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그런 분위기가 몇 개월 지속되면서 청와대의 의중을 살피며 각 기관에서 일종의 충성 경쟁 같은 게 벌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권력자의 의중에 맞는 강경 대응 기조가 나왔는데, 용산 참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청와대가 공세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인데, 그런 게 시국사건이 많이 몰려 있는 서울중앙지법에 영향을 주지 않겠나. 그래서 권력의 뜻에 스스로 부합하는 행동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 이번 진상조사단이 제대로 조사를 안 했다는 비판도 있다.

"신 대법관은 진상 조사단의 다른 법관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고 본다. 신영철은 대법관이다. 그런데 진상조사단은 법원행정처장(대법관), 고등법원장,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부장판사 등으로 구성됐다. 이 사람들이 대법관을 조사하고 대법원장을 조사하는데 받는 심적 고통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할 때처럼 강하게 할 수 있었겠나. 대법관이 '피곤하다 좀 쉬자' 하면 그날 조사도 못 한다. 진상조사단 구성원들은 훌륭한 분들이지만, 조사 환경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했다. 내부에서 생긴 일을 조사할 때는 외부인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사의 신뢰성을 인정받는데, 그게 빠졌다."

 

- 신 대법관이 국회에서 위증했으니, 구속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불구속 수사, 재판을 견지하는 사람이다. 증거 인멸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 굳이 구속할 이유가 있나. 형사 사건이 될 수 있나 하는 문제는 더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구속 이야기가 나오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가 대법관직에 앉아 있다는 게 우리 사회의 윤리적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참 끈질기게 오래 버티는 이유를 알 수 없다."

 

- 개별 법관의 독립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

"우선 대법관을 선정하기 위한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가 공정하게 잘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이미 93년 '3차 사법파동' 때 법원 내 서열적 관료주의가 법원 밖의 압력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부의 관료제 극복은 외압 대항보다 어렵다. 많은 논의를 거쳐 개개 법관들이 동등한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지난 3월 5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검찰이 촛불을 정치적으로 수사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검사가 계속 '촛불집회는 정치 시위 아니었나'라고 물어서 했던 말이었다. 국민은 언제 어디서나, 즉 이불 속이건, 강의실에서건, 집회 현장이건 그리고 주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 이건 기본 전제다. 그런데 '어떤 정치적 구호가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따지는 건 권위주의 혹은 식민지 시대의 사고에 불과하다.

 

작년 촛불 정국 이전에도 야간에 집회 시위가 벌어졌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집시법 위반이니, 일반교통방해죄니 하면서 처벌을 이야기한다. 권력자 의중에 따르는 수사일 수밖에 없다. 촛불집회를 단죄 기소하는데, 이건 정치적 과정이다. 법원이 판결할 때는 (검찰의) 정치적 색채를 탈각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신 대법관은 이걸 방해하려 했는데, 그의 뜻을 따르면 법원 판결은 신뢰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 법학자로서 '법의 현실적 구현'을 연구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 법학자로서 촛불집회에서 무엇을 배웠나. 

"촛불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1항이 구호로 등장했다. 국민들이 이걸 스스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처음 있는 일인데, 헌정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다. 헌법을 자기 목소리로 내면서, '장식규범'에서 '생활규범'으로 바꾼 게 아닌가. '국민헌법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은 바뀌어야 한다는 걸 현장 체험을 통해 다시 느꼈다."

 

"사형 6개월 이내에 집행하면 오히려 그게 야만적"

 

- 사형제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사형 집행 반대 의견을 모으는 형법학자 서명을 전개했는데 결과는 어떤가.

"사형집행 재개 반대 서명에 형법학자 132명이 동참했다. 우리나라 형법학자가 150명 정도 된다고 파악하고 있는데, 대단히 높은 참여율이다. 지난 13일 법무부에 서명 용지를 전달했는데, 그쪽에서도 놀라움을 나타내더라.

 

법률에 의하면 사형 집행은 선고 6개월 이내에 하게 돼 있다. 일부 국회의원은 '6개월 이내에 집행 안 하는 게 직무유기 아니냐'고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보면 사형확정에서 집행까지의 시간이 짧은 사건일수록 정치적 선택인 게 많았다. 인혁당, 조봉암, 조용수 등.

 

미국의 예를 보면, 사형 선고에서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평균 15~20년 걸린다. 혹시 오판 가능성이 있을까 재심 또 재심하는 것이다. 6개월 이내에 집행하면 오히려 그게 야만적인 나라다."

 

- 하지만 최근 사형제 찬성과 집행 여론이 높아졌다. 

"사형제를 두고 있는 나라건 아니건, 집행하는 나라건 아니건 연쇄살인범은 있다. 연쇄살인범이 사형의 공포 때문에 범행을 안 저지를까? 그리고 어느 나라나 사형 찬성 여론이 높다. 하지만 국회는 더 선도적으로 나가야 한다. 보통 국회에서 먼저 사형제 폐지하고 시간이 흐른 뒤 시민들이 따라가는 형태가 돼야 한다."

 


태그:#신영철, #촛불 재판, #한인섭, #형법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