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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간 미국 전역을 열광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어 온 <아메리칸 아이돌, American Idol>이 올해도 어김 없이 '시즌 8'을 선보이며 미국 안방극장으로 파고 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작년에 막을 내린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7>을 통해 미국의 정치, 문화를 한번 들여다보자. 너무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말고 가볍게 접근해 보자.

2008년 진행된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7의 한 에피소드를 보면 뮤지컬의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깜짝 출연해서 출연자(경쟁자)들과 한 무대를 꾸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사회자가 느닷없이 (당시 대통령이던) '부시'를 소개하자, <아메리칸 아이돌> 스테이지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부시 내외가 등장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방청객들과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돈을 모금해 줘서 고맙습니다. .. 어쩌구 저쩌구 ..앞으로도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아메리칸 아이돌> 시청자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의 인사말을 건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발생한다. 왜 부시는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했을까?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지지율(approval rating) 역대 최저를 연일 갱신 중이었던 부시가 미국 내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에 왜 나왔을까? 아니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아메리칸 아이돌>쇼의 성격상 젊은 연령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젊은층의 경우 정치적으로 진보적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양대 정당제가 확립된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민주당 지지성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인 부시가 이 쇼에 나와서 시청률 팍팍 떨어뜨릴 지도 모를 짓을 했을까.

매년 연말 CNN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는 진정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여의도 대전: 패거나 밀치거나>속 어느 국회의원이 <M.NET 쇼>에 출연, 최신 가요를 열창하는 대신 지겨운 연설을 늘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과 부시의 이 '불편한 동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메리칸 아이돌>을 만든 방송사가 FOX TV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아메리칸 아이돌> 공식 사이트
 <아메리칸 아이돌> 공식 사이트
ⓒ americani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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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는 극장에서 영화 시작 전 서치라이트 로고가 배경음악과 함께 돌아가는 영화제작(배급)사인 '20C FOX'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또한 '미드의 본좌'를 자처하며, <엑스 파일>을 필두로 <심슨 가족>, <24시>와 같은 최고의 인기, 흥행작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하지만 FOX는 종합 미디어그룹이며, 방송의 경우, 미국 내에서 NBC, ABC, CBS 와 같은 3대 메이저 채널과 CNN, MSNBC 등의 케이블 채널과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폭스방송은 정치적 스펙트럼이 우측으로 편향된, 즉 보수성향의 방송매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사살된 침팬지=오바마] 만평을 게재한 '뉴욕포스트'와 형제지간이다. 둘 다 소유주가 '루퍼트 머독'이다. 이와는 반대로 폭스의 대칭점에 위치하고 있는 (MS)NBC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채널이다. 공식적으로 동성애자임을 선언한 '레이첼 매도우'에게 그녀 자신의 쇼인 <The Rachel Maddow Show>를 진행할 기회를 준 사실이 폭스와는 많이 다른 NBC의 성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 보니, 양 방송사는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폭스의 맹물인 '빌 오라일리', NBC의 행동대장 '키스 올버맨'은 서로 치고 받는 난타전을 벌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양 방송사는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 정당에게 유리한 보도를 내보내기도 한다. NBC에 출연한 진보적 패널, 정치평론가들은 폭스 TV를 일컬어 '수구xx'하는 표현들을 스스럼없이 내뱉곤 하며, 폭스뉴스에 얼굴을 드러내는 보수논객, 방송인들은 상대방을 '좌x' 등의 용어로 도배해 버린다. 특히 대통령 선거철이 되면, FOX 방송에서는 공화당 지지성향의 보수 정치인, 패널들을 대거 출연시켜 진보진영 공격의 최선봉에 서기도 한다.

<아메리칸 아이돌>에 모습을 드러낸 부시 내외
 <아메리칸 아이돌>에 모습을 드러낸 부시 내외
ⓒ FOX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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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 채널이 얼마나 보수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때 뉴스화면을 보면 왼쪽 상단에 성조기(미국 국기)가 펄럭이는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삽입해서 전국적으로 내보내곤 했다. 폭스 TV를 상징하는 색깔 역시 파란색과 붉은색이 원초적인 결합을 이루고 있다. 국기 속 색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와 같은 맥락을 잘 이해한다면, 미국을 비롯,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주된 시청자층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인 공화당 소속의 정치인이자 대통령인 부시가 출연한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참고로 폭스 TV의 보수성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다. 작년 11월 끝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의 '존 맥케인'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사실 투표일 전에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이미 오바의 승리가 확실시 되던 상황이었기에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보수진영의 한 축인 폭스뉴스 조차도 자체 여론조사에서 오바마가 큰 %차이로 맥케인을 앞서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다. 타 언론에서는 폭스방송의 양 후보간 지지율 격차 보도를 보고서야 정말 오바마 쪽으로 대세가 기울긴 기울었나 보다 하면서 입맛을 다시곤 했다. 오죽 격차가 크게 벌어졌으면 그랬을까. 적당한 표차로 뒤지고 있거나 박빙이었다면 절대 폭스가 그와 같은 고백(?)은 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태그:#아메리칸아이돌, #부시, #폭스, #MSNBC,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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