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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이 작년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저지른 촛불재판 개입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한 달여 전 용산참사에서 끝내 공권력 남용은 없었다고 강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는 사뭇 다른 것이 사실이다.

 

16일 오후 3시 진상조사위원장인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은 분명한 어조로 (신 대법관의 행위는) "재판 관여로 볼 소지가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반복하여 밝혔다.

 

"신 대법관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고 한 조갑제 류의 사람이거나, "진보좌파 소장 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유출했다"고 한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번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의 발표에 일단 안도감을 느꼈을 터이다. 상당수 국민은 조사위의 발표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망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한다. 개중에는 '역시 법원은 아직 검찰만큼은 막 나가지는 않는구나' 식으로 짐짓 스스로 위안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사위의 발표를 대체적으로 환영한다. 조사위는 신 대법관에게 제기된 재판 개입 의혹의 상당 부분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법관의 독립 침해 행위'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관의 독립을 중시하는 법원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어서 다행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법관의 독립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법부의 독립은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위의 발표 결과를 모두 납득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발표 내용에는 의문과 의심을 자아내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사위 발표에는 많은 미진함이 있으며 심지어 모순과 맹점까지 도사리고 있다.

 

진상조사 발표 내용의 미진함, 모순, 맹점

 

[첫째, 발표 내용에서 미진한 점]

 

조사위는 신 대법관에게 제기된 6, 7가지 의혹 중에서 명백한 증언이 있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행위에만 '유죄'를 인정했을 따름이다. 조사위는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이메일을 통한 재판 독촉 및 관여'에 "재판 관여로 볼 소지가 있다"고 했고 또 다른 혐의인 '촛불재판 몰아주기'에는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조사위는 '시국사건 선고연기요구', '위헌제청 기각압력', '영장기각사유 변경압력', '즉심양형 변경압력', '보석결정 만류압력' 등의 행위에는 "재판관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완곡 화법을 구사해 부정했다.

 

조사위는 이 중에서 맨 처음 시국사건 담당판사에게 선고 연기 요구를 한 혐의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혐의들의 경우 관련자들의 증언이 있는데도 이를 무시했으며, 특히 '보석결정 만류압력'은 조사 결과 명백히 드러난 사실임에도 문제 삼지 않았다.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위헌제청을 하고 다른 판사가 촛불 피고인을 보석 허가한 직후인 작년 10월 13일, 신영철 중앙지법원장(당시)은 형사단독 판사에게 휴대전화를 걸었다. 그는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피고인에 대한 보석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압력 발언을 했는데도 조사위는 이를 "재판 관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으니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메일 우송은 '재판 관여'라면서 휴대전화 압력은 '재판 관여가 아니다'는 것으로 결론지은 것인지? 이는 혹시 이메일은 증거가 남아 있는 데다가 언론이 요란히 문제 삼은 것이니 피할 수 없다고 본 반면 휴대전화는 그렇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식이 아니었는지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둘째, '개입은 있었지만 영향은 없었다'는 모순]

 

조사위는 신영철 지법원장의 재판 개입이 있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끼친 사례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가자 김아무개(37)씨의 변호인은 지난 6일 "압력이 실제로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담당판사가 선고일을 잡았다가 박재영 판사가 위헌제청을 하자, 전화로 '위헌제청 결과를 보고 선고하겠다.'며 선고일을 미뤘었는데, 신 대법관의 압력 전화가 있은 이틀 후 갑자기 공판 기일을 새로 지정해서 벌금 500만원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한겨레> 보도)

 

위 증언과 보도가 사실이라면 신영철 당시 중앙지법원장의 재판 개입은 실제로 재판 진행은 물론(미뤘던 선고일을 갑자기 재지정) 양형에까지(벌금 500만원) 영향을 끼쳤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럼에도 조사위는 이 변호인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리고 담당 판사는 조사했는지 등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조사위가 애초부터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여부를 밝히겠다는 적극성이 과연 있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조사위의 주장은 '재판에 개입은 했지만 재판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이 된다. 이는 마치 '도둑질은 했는데 도둑맞은 물건은 없다'는 식이니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진상조사에서 보지 못한 맹점]

 

또한 조사위는 정작 심각하고 중대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가 법원장으로 사건에 관여하고 제 의견을 얘기해서 리더십이 발휘됐을까요?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법원장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구한테 일을 맡기고 항상 잘해주기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전화해서 뭘 어떻게 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2월 9일. 신 대법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

 

이것은 재판몰아주기 문제가 불거진 시점에 이루어진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신 대법관은 아직 이메일 건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는 판사들에게 '전화' 같은 것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후 이메일 건이 드러난 것은 물론 이번 발표에서는 국회 증언과 달리 직접 '전화'를 건 사실도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조사위는 대법관이 국회 위증이라는 범법 행위를 했음에도 그 사실을 언급도 하지 않았다.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한 법원이...

 

 

신영철 대법관은 법원장 시절 걸핏하면 판사 회식 자리를 이용해 마치 군기반장처럼 압력을 행사했음이 드러났다. 그는 판사들에게 미네르바 구속과 관련성이 있는 '전기통신기본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기각하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는데, 조사위는 이를 "개인적 의견 표명 수준을 넘는 재판 관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게다가 그는 야간집회 위헌심판을 빨리 부결시킬 목적으로 헌재와 직접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조사위는 이토록 심각하고 중요한 건을 문제 삼지 않았다. 또한 같은 사법부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신영철 대법관을 만난 적도 없다고 거짓 해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조사위는 신 대법관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법원장의 뜻'으로 하여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도 있듯이 이것은 평균 도덕성에도 못 미치는 '치팅(cheating)' 행위이자,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해서는 결코 안 되는 일이다. 미네르바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구속시킨 법원이 이런 공적이고도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를 눈감고 넘어가려 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맹점(盲點)'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관절 신영철이라는 사람은 무슨 힘이 있기에 전화와 이메일은 물론 판사들을 직접 소집하여 압력을 넣을 생각을 감히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에겐 어떤 배경이 있었기에 국회에서 위증을 하고 대법원장의 말을 각색하고 헌법재판소장에게 위헌 심판 일정을 채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또한 그렇게 많은 일탈 행위를 버젓이 하고도 무슨 비결로 법원 최고위직인 대법관에 제청·임명될 수가 있었을까?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이 점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의 보도에 의하면 이번 조사 발표 내용은 마지막 단계에서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고 한다. 발표 전날인 15일 밤까지도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는 부적절하지만 재판 개입으로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발표 내용이 기울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표 당일인 16일 오전 '법관 독립 침해'로 급변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조정(?)된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만에 하나 발표 내용이 하룻밤 사이 역전된 것이라면 아예 조사 자체도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발표한 내용도 정치적인 희곡이나 시나리오 수준이지 사법적인 '팩트'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문제는 이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부터가 이번 사건의 본질, 즉 몸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심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증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들이 일개 법원장이 저지르기에는 너무도 노골적이고 대담한 일이었기에 생기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발표는 신영철 하나만 오직 '유죄'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과로 그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를 제외한 사법부 사람들은 죄다 '무죄'가 되었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무찔러야 할 원수로 알고 돌진했다가 결국 풍차 날개에 휘말려 혼쭐이 나는 인물이다. 혹시 신영철 대법관은 '촛불'을 '풍차'로 알고 덤빈 걸까? 결국 그는 촛불에 데고 말았다. 신영철 대법관은 사법사상 최초로 윤리위에 회부되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이제 그의 낙마는 시간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산초판자는 돈키호테의 종자(從者)이지만 주인보다 단연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풍차 같은 것에 덤비는 일을 결코 하지 않는다. 신영철 하나를 확실한 돈키호테로 만든 사법부의 진상조사 발표가 혹여 촛불과 정의로운 판사들의 저항을 피해가기 위한 산초판자들의 미봉책이 아니었기를 다만 바랄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전쟁과 사람>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신영철, #촛불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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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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