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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워낭소리가 독립영화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는 반가운소식이 들려온다. 이 즐거운 비명소리가 잇따라 개봉되는 차기 독립영화의 성공에도 이어질 것인가 하는 조심스러운 걱정을 하고 있던 중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2월 26일 개봉되었다.

열여섯 고운 나이부터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한 여자의 가녀리고 슬픈 이야기.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딜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위안부' 문제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이 모든 잡생각은 오래된 국밥집에서 욕쟁이 할머니에게서나 들어봄직한 '시원한' 할머니의 말투에서부터 싹 가신다. 고통과 아픔은 꾹꾹 눌러 덮은 지 오래. 위풍당당 송신도 할머니 곁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10년간의 재판을 진행해온 일본여자들의 이야기는 오히려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같이 짜릿한 박진감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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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식이 전혀 없는 어린 나이부터 경험한 위안부 시절 낙태를 4번 경험한 할머니가 "7개월째 아이가 뱃속에서 죽었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손으로 스스로 죽은 아이를 꺼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육체가 파산한 사람'이라 칭하는 이 할머니는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 한번 깜빡하고 주제를 바꾸어서 일본 수상들에게 "양파같이 생긴 녀석" "입 삐뚤어진 녀석" 이라며 호탕하면서도 빛나는 말들을 던진다. 

"그래 나 무척이나 아팠어! 그래도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미안하다!'라는 사과의 말일 뿐이야. 사과를 안 하네. 참내 에이 나쁜 녀석들! 그냥 소송 계속하지 말자. 힘들게 왜하니? 너희들 생각에 꼭 계속해야겠니? 그래! 그럼 우린 한배를 탄 거야. 갈 때까지 가 보자구! 암튼 그건 그렇고 앞으로는 절대 전쟁을 하지 말아. 아니 자기네 좋자고 전쟁을 왜 해 애꿎은 사람들만 막 죽어나갈 뿐이야."

영화의 매력은 관객과 할머니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도입부부터 '일단 아픔은 누르고 함께 사과를 받아보는데 집중해보자'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있다. 할머니를 앞세워서 목표를 향해 함께 호흡하지만 문득문득 아무렇지 않게 걸어나가는 할머니가 귀여우면서도 그 아픔의 무게를 말하지 않는 할머니의 '쿨함과 대범함'이 오히려 동정을 하려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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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25일 저녁, 홍대상상마당에서 안해룡 감독은 종군위안부 고슴도치 할머니를 주제로 한 동화 <봉선화가 필 무렵>의 저자 윤정모씨와 시사회를 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송신도 할머니도 사람들과 언론 등이 찾아가서 괴롭히면 어쩌냐"는 관객의 질문에 안해룡 감독은 껄껄 웃으며 "택도 없는 소리예요. 할머니와 함께 재판을 진행한 일본여성들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게다가 할머니의 포스가. 아니 영화 보시면 느끼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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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전 한국에서 종군위안부 김학순 할머니 장례식에서 쓰레기통에 쳐박혀있는 꽃들을 보면서 꼭 이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안 감독은 워낭소리의 성공에 이 영화도 묻어가면 좋겠다고 농담 섞어 말하지만 이미 일본에서 상영되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한다고 한다. 피해자를 보듬어주고 또 함께 동참해준 일본인들에게 고마운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서 홀대하고 지겨워하지는 않았나 반성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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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윤정모씨 또한 종군위안부라는 역사적인 주제가 후세에도 쉽고 진지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봉선화가 필 무렵>을 집필했고 안 감독의 다큐멘터리 또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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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머니한테 전화를 하고 싶어지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강추한다.

-간만에 눈물 한번 시원하게 한참 흘리고 싶은 사람 . 의도하여 눈물을 뽑아내는 장면이 없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이맥스와 같이 느껴져서 관객의 눈물샘을 줄기차게 뻥뻥 자극한다.

- "요즘따라 억울한 일도 많은데 좀 당차지고 대범해지고 싶다" 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 할머니는 자신의 아픔에 관한 동정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괜찮아! 나도 이렇게 당당하고 멋지잖아?" 라며 관객을 보듬어 준다.

- 미운사람을 용서하고 싶거나 혹은 이기고 싶은 사람. 할머니는 "이길 수 없더라도 내 마음이 진 것이 아니기에 적어도 나는 인생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라는 모습으로 "거!참 사과를 안하네. 참" 한마디로 상대방을 부끄럽게 만들어 버린다.  할머니는 진정으로 이기는 방법과 용서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귀엽고 대견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보기 전에 굳이 준비하지 않고 가도 되는 사항들

-종군위안부에 관련된 사회적 비판의식이나 그리고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
영화에 간결하게 설명되어 있고 영화는 보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들과 뭉쳐서 막강한 가해자에게 맞서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할머니와 함께 극장에서 함께 웃고 울다보면자연스레 주제에 친밀해진다.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발전을 위해서 이바지해야한다는 의무감
영화는 다큐멘터리라는 냉정한 시각으로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를 액션스릴러물과 같이 긴장감있게 표현했다.  독립영화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임하는 자세를 다른 상업영화와는 다르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독립영화'라는 꼬리표를 떼고 상업영화랑 당당하게 맞서도 궁색함이 없다. 또한 '조금 늘어지는 학습물'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관람하면 결과는 그 반대이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 상황이 최악이다. IMF 때보다 심각하다"와 같은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위축되었고 거리의 색깔도 회색이다. 봄이 오려는 2월의 끝자락에 시원하게 한번 울고 다시 어깨 펴고 "그래! 어디 덤벼봐라! 절대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고 다시 시작하라고 "세상 가장 씩씩한" 송신도 할머니가 큰 격려를 한번 준다.

안해룡 윤정모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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