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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6일 오후 2시 대법원은 '환경부의 상고를 기각한다'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지난 2006년 6월부터 제기한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보비공개결정처분취소' 소송이 끝났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미군기지 환경오염정보를 공개하라!'는 원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소송은 반환 미군기지 캠프페이지의 환경오염조사 결과, 복구비용, 정화주체 등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환경부가 거부 통지하면서 시작하였다. 환경부에서 밝힌 이유는 사안이 국가안보와 관련되며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이하 부속서 A)에 반하기 때문이란다. '부속서A'는 양측 위원장 승인 없이 자료를 언론과 대중에 공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경문제, 알고 모르고의 차이 커

시민단체 관계자가 캠프하우즈 토양오염 현장을 확인 중이다.
▲ 캠프하우즈 토양오염 시민단체 관계자가 캠프하우즈 토양오염 현장을 확인 중이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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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쟁점은 '헌법'과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 에 근거한 '국민의 알권리'와 '부속서A' 혹은 '국가안보' 사이에 우선 순위를 따지는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사안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에 직면했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인다.
 
힘의 불균형은 정보력의 차이에서 온다. 환경문제에서는 특히 그렇다. 마을에 폐기물 매립장, 변전소, 혹은 골프장이 들어올 때 일반인들은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나 알게 된다. 주민들이 환경분쟁이 예상되는 이런 사안들을 언제 접하느냐에 따라 싸움의 지형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사업계획단계, 환경영향평가단계, 공사착공단계, 공사완공단계, 공사완공 후 시설물 가공 및 이용단계 등 진행상황과 시기에 따라 싸움과 대응전략은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군피해 지역 주민들이 주민 네트워크 발족식을 가지고 있다.
▲ 군기지 소음 주민네트워크 발족식 군피해 지역 주민들이 주민 네트워크 발족식을 가지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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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테면 개발사업 자체를 중단시키기 위해 소송을 취하고자 할 때 주민들이 사안을 어느시점에 알았느냐에 따라 '취소소송' 또는 '무효확인소송' 으로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행정소송인 취소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행정청의 인ㆍ허가 처분이 있음을 처음 알 게 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해야한다. 이 사실을 몰랐을 경우 행정처분이 있었던 날로부터 1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이 기간을 놓쳐버리면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취소소송'보다 승소 가능성이 낮아진다. 

정보공개청구제도는 이런 힘의 불균형을 만회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 일단 정보공개를 청구하게 되면 관계기관은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원으로 행정기관에 전화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과정이 무척 번거롭다. 우선 담당자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몇 차례 전화연결 단계를 거처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화가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다. 정보공개청구제도를 이용하면 담당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다. 연락이 없으면 정보공개청구 홈페이지(http://open.go.kr)에 들어가면 담당자 직통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민원인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사건의 정황, 사업의 실체, 사업계획과 진행상황을 부분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우리 마을에 드리워지는 어둠의 정체를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 말이다.

물론 정보공개청구를 한다고 모든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의해 비공개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또는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 국방, 통일, 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 등은 비공개대상으로 분류된다. 미군기지는 그 자체로 성역이었다.

관계부처는 '국가안보' 혹은 '국방'에 관련된 부분으로 판단하여 정보공개에 소극적이어 왔다. 이때 문제는 자의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관련 웹사이트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내 미군기지 관련 정보 또한 거부된 적도 있다. 군기지 환경오염 관련 사항은 군사기밀일 수 없다. 미국 군부대 오염에 관한 정보(미국 방부 연례정화보고서,www.denix.osd.mil)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미군기지정보 비공개처분취소소송'에서 환경부와 담당공무원은 '부속서A'가 '국민의 알권리'에 우선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좀 더 나아가서 외교부 북미국장과 주한미군 부사령관에 의해 서명된 부속서A가 조약이며 국내법적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사안이 양측 위원장의 합의만으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은 권위주의적 관료 사회에서 흔히 발견된다.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엘리트 관료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며 이에 대한 집행을 지휘총괄 한다. 이런 사회는 폐쇄회로적이다. 정책결정 혹은 집행과정에서 시민과 대중의 참여를 성가시거나 비효율적이라 생각한다.

'부속서A' 상에서 양측 위원장의 승인 없이 관련 자료를 언론과 대중에 공개할 수 없다는 규정은 바로 이 지점과 만난다.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환경부와 담당공무원의 판단 배경에는 이런 사고에 그 뿌리가 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이런 사고의 패턴은 한미 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정에서도 발견된다. 그들은 권위주의 관료 체제로의 역행을 바라는가?

민주주의가 낳은 선물 '정보공개제도'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환경정화 없이 반환되는 미군기지들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다.
▲ 환경정화 없는 미군기지 반환 규탄 기자회견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환경정화 없이 반환되는 미군기지들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다.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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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정보공개를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정당기능의 실종 때문이기도 하다. 녹색연합과 춘천지역 시민단체가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환경부가 거부했다. 이들은 결국 환경소송센터를 통해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승소판결을 내렸다. 표면적으로 정치인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국정조사를 통해 관련 정보들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다양한 갈등들을 제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소외된 목소리에 특히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주요현안에서 정치와 정당의 역할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촛불정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한나라당이 용을 쓰는 것은 국민적 교감도 없는 '방송법'같은 것들이다.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때 시민들은 거리의 정치를 복원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자신이 낸 세금 중 최소 3,200억 원이 반환 미군기지 정화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정부의 '정보비공개 원칙'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 마을 미군기지에서 지난 5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들이 저지른 토양오염으로 지하수가 오염되었을 수도 있고 내가 마시는 식수에 유입 되고 있을 수도 있다.

다행히 대법원이 미군기지 환경오염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앞으로 42개 미군기지 추가반환을 앞두고 있다. 이런 주요한 시점에서 중요 정보들에 대한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할 뻔 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보공개제도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함께 확립되어온 민주주의의 성과이다. 이번 소송을 수행한 박근용 변호사(환경소송센터 운영위원)는 "생각보다 판결이 늦어져 법리적인 판단이외에 다른 것이 개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했다"고 한다. 이번 정권은 우리 시민들이 사법부마저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데 일조한 것 같다. 덕분에 시민들의 학습효과는 대단하다. 이번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똑똑해지고자 하는 시민이여!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활용하라!'       


태그:#환경소송, #미군기지, #토양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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