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나는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을 현장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전해 들었다. 2008년 1월 22일, 그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뉴욕의 한 아파트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을 때 나는 관광차 찾은 뉴저지에서 짧은 영어로 커피를 주문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을 대대적으로 떠들어대던 텔레비전 뉴스 보도에도 별 감흥이 없던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것도 한여름이 다 되서야 그의 유작 <다크나이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다. 함께 출연한 마이클 케인은 '조커'로 분한 히스 레저의 연기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아 자신의 대사마저 잊어버렸을 정도였다고 하던데, 그의 광적이고도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악당 연기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 워너 브라더스


신들린 '조커'의 등장에 힘입어 <다크 나이트>는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관객들을 동원했으며 '걸작 블록버스터'라는 평단의 극찬까지 동시에 받았다. 그리고 지난 22일(현지 시간) 제 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사후 두 번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다크 나이트>는 여러 모로 곱씹을 만한 구석이 많은 영화다. 흥미로운 캐릭터들의 서로 얽힌 관계 역시 매력적이며 잘 만들어진 히어로 영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정치학적인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이전된다. 탁 트인 영상과 화려하고 꼼꼼하게 연출된 액션 신은 별개로 영화는 몇 번을 되풀이하여 봐도 즐겁다.

최근 <다크나이트> 재개봉 소식도 들리던데 문득, 히스 레저는 가고 없지만 조커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혼자 보긴 심심하잖아. 아래 인터뷰는 물론 가상이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만나준 '조커'에게 미리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이다.

나의 테러는 '퍼포먼스'... 내가 파괴하려 했던 건

영화<다크 나이트>의 홍보 포스터  

▲ 영화<다크 나이트>의 홍보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 당신을 연기한 히스 레저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꿩' 대신 '닭'까지는 아니지만,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다.
"이봐, 당신! 근데 왜 그렇게 심각해?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캐릭터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겠나? (면도칼을 들며) 당신 표정을 보니 우리 아버지가 떠오르는군. 내 얼굴의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까?"

- 그 얘긴 조금 이따가 하도록 하지. 지금 한국에선 아카데미 수상 결과와 <다크 나이트> 재개봉으로 당신에 대한 관심과 그리움이 커지고 있다네. 그래서 괜찮다면 몇 가지 질문을 할까 하는데, 괜찮을까?
"그래, 그래… 하지만 나를 너무 따분하게 만들진 않는 게 좋을 거야."

- 먼저 영화 속의 악당인 '조커'라고 하면 가차 없이 파괴하는 테러리스트에 무정부주의자라는 인상이 떠오르는데….
"테러를 겸하는 아나키스트라, 너무 전형적인 설명이라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표적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요즘의 테러리스트와 나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어. 생각해 봐. 영화에서 나의 테러로 '떼죽음'을 당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구. 물론 협박을 하거나 배를 타고 이동 중이던 시민과 죄수들에게 폭탄을 설치하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따져봤을 때 대량 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파괴하고자 했던 건 체제와 관습이지, 사람들의 생명이 주된 목적은 아니었단 거야.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지. 가령 배트맨의 정체를 폭로하겠다며 텔레비전에 출연한 변호사를 죽이라든가, 배에 장착된 폭탄을 먼저 폭발시키라는 나의 협박은 도덕 게임에 지나지 않아. 합리주의와 휴머니즘이란 미명과 위선을 벗겨내고 본심을 드러내라는 경고지."

- 그렇지만 당신의 협박은 놀랄 정도로 두려운 것이었어.
"감독이 '조커의 협박이 위협적인 것은 실제로 그의 협박이 이루어지건 아니건 간에 그 예상할 수 없음이라는 본질에 기인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아무리 터무니 없는 일이라도 이 미친 놈은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게 혼란의 본질 아니겠어? 그런 것도 있고 아나키즘이란 폭탄으로 견고하게 성을 이루고 있던 그들만의 세계와 시스템이 일순 무너진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도 있었던 거지." 

배트맨은 사디스트, 그와 싸우는 게 재밌을 뿐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 장면  

▲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 당신에게 있어 '배트맨'이란 뭔가.
"자네가 예전에 쓴 글을 읽어보니 '조커와 배트맨은 역학적으로 공생의 관계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조커는 '안티 배트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고, 배트맨은 그런 조커를 없애려고 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확인한다'라는 대목이 있더군.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내가 보기에 배트맨이란 녀석은 밤마다 괴상한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쓰고 뒷골목의 건달들이나 괴롭히는 악취미를 즐기는 사디스트야. 계급적인 사디즘이랄까. 반면 조커는 어때? 처음엔 무정부주의니 관습을 파괴한다고 하지만 나중에 이르러선 단지 '배트맨과 싸우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고백하지 않나.

조커에겐 협박이나 폭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 그 모든 걸 놀이이자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정리하면 배트맨과 조커의 관계에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란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두 가지 욕망이 교차하고 있어. 명확하지?" 

- 영화 속에 비유적으로 흐르고 있는 권력 메타포도 짚고 넘어가자. 이를테면 힘으로 악을 억누르려는 배트맨이나 전쟁을 선포하여 테러리스트를 퇴치하려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대처 방안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나.
"영화에서 '알프레드'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이 한 말이 있는데, '슈퍼맨이 미국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화상이라면, 배트맨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라 했다고. 미국이 됐든 배트맨이 됐든 그들이 부르짖는 정의는 굉장히 한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들이 친절하게 웃어주고 배려를 해주는 것도 우리가 그들의 재산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같은 편'일 때에 한한 것처럼 말이야.

웃기지 않나? 그들이 진정으로 인권과 평화를 갈망한다면 왜 팔레스타인에 백린탄을 뿌려댔겠어. 허울과 명분으로 전락한 정의는 단단하게 보이지만 태생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허물어진다구. 내가 배트맨에게 선포한 전쟁이 그런 '제스처'였고, 고담의 검사 하비 덴트를 변질시킨 것도 마찬가지였어." 

한국에 나만큼 황당한 녀석이 또 있나보군

- 영화에는 많은 기사가 등장한다. 고담에 새로 부임하여 범죄를 소탕하는데 일조한 하비 덴트 검사는 백기사라는 별명을 얻고, 어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배트맨은 흑기사로 불리게 되는데, 그걸 보고 나는 <다크 나이트>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크 나이트>는 확실히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무엇보다 배트맨과 나는 동전의 양면처럼 방향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똑같다고 생각해. 시민들에게 있어 배트맨은 조커와 같은 '별종'으로 단지 갱스터들을 처치할 때에만 환대를 받을 뿐이고 시민들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면 가차 없이 배척을 받잖아.

배트맨, 그 친구는 정말 고달프고 외로운 일을 하는 거라고. 자기 딴에는 시민들을 위해 죽어라 뛰었는데 나중에는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도망 다니는 처지니까. 시민과 배트맨의 일방적이고도 어긋난 상호 관계의 아이러니가 배트맨의 흑기사라면 조커의 흑기사란 기존의 사회 질서와 권위 따위를 전복하는 흑사병에 가까워. 나의 목적은 돈도 아니고 권력은 더더욱 아니야. 단지 기름이 잔뜩 들어있는 드럼통 몇 개와 총알 몇 개로 혼비백산에 빠진 도시를 보며 즐길 뿐이지."

- 그나저나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고담만큼이나 우울한 한국 사회가 떠오르는군. 지금 한국에선 정부와 경찰이 손을 잡고 시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나만큼 황당한 녀석이 또 있나 보군. 날이 풀리면 촛불들이 다시 일어날 테니 조심하라고 전해주게. 그나저나 제발 내 얼굴의 흉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말해줘. 여기 감옥에 있는 동안 자서전이라도 써서 알려야겠어. 잘 있게, 친구."

다크나이트 조커 히스 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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