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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부터 밤까지 11시간 일을 한다. 그리고 한 달에 일곱 번, 혹은 여섯 번을 쉰다. 내가 하는 일은 백화점 쇼핑 카트 관리 아르바이트다. 말은 꽤 거창하지만 사실 카트를 내주고 거두는 걸 반복하는 단순 육체노동이다.

처음에는 두어 달로 끝날 줄 알았지만 벌써 1년이 되었다. 새 정부가 출범할 즈음 시작한 일인데 1년 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었고 또 새로 일을 시작했다.

일은 고되지만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와 비교하면 여기가 백번 나은 듯싶어 그냥 눌러 앉았다. 덕분에 백화점의 구석구석을 똑똑히 볼 기회가 생겼다.

백화점 '매장 지역'의 반짝반짝한 조명을 뒤로 하고 직원들의 '후방 지역'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몸 쓰는 알바 현장에 부는 '노령화'

방긋한 함박웃음이 찌푸린 우거지상으로 변신하는 건 순식간이다. 오만가지 종류의 울화와 분통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담배를 많이 피운다. 끽연실 재떨이에는 언제나 꽁초가 수북하다. 아무래도 참아내기 힘든 순간들이 흔하기 때문일 테다.

내가 일하는 카트 관리 부서도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다. 1년 전만 해도 20대 초반이 많았는데, 이제는 20대 중반, 혹은 후반 형님들이 더 많이 일한다. 개중에는 방학 동안 잠깐 일하러 온 사람도 있다. 여기서 만난 함아무개(24) 형이 방학 기간 동안 일하는 이유는 용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학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서다.

이제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을 넘어 '삼태백'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현실에서 피부로 느낀다. 청년 백수들은 마치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무력감에 빠진다.
 이제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을 넘어 '삼태백'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현실에서 피부로 느낀다. 청년 백수들은 마치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처럼 무력감에 빠진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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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대한민국의 대학 등록금이란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매년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이 속출하니 진짜 '살인적'인 등록금이다. 말 그대로 등록금에 목을 매는 기막힌 현실이다. 형은 그래도 자긴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며 아는 학교 선배는 "1년 학자금 대출 받아 학교 다니고, 다음해는 휴학해서 1년 돈벌이로 작년 대출금 갚는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실 그리 드문 사정은 아니다.

물가도 오르고, 환율도 오르고, 그야말로 내 임금 빼고는 다 오른다. 그저께는 한참 카트를 끌고 가면서 낑낑거리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나타나서는 말을 걸었다. 삼십대 중반은 되어 보였다. 무에 그리 궁금한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였다. 주말이고 바빠 죽는 와중이라 일순 짜증이 났다. 그러나 퍼뜩 사정이 짐작이 되기에 조근조근 아는 대로 대답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카트 관리 부서에 지원서를 쓰러 온 사람이라고 밝혔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아저씨는 금방 자리를 떴다. 마음이 아팠다. 이 일은 20대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차마 하기 어려웠다. 아마 아저씨의 지원서는 소용없는 종이가 되었을 테다. 아무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역시 나이 서른에 카트를 밀고 끄는 일은 그리 체면을 차릴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지원서를 쓰러 오는 아저씨들이 적잖게 있다.

"집에서 노는 거, 사람이 할 짓 아냐"

비단 백수로 지내는 사람은 서른뿐이 아니다. 당장 대학 졸업을 한 청년들도 당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불투명한 미래는 대한민국 청년의 보편적 불안이다. 양아무개(25) 형은 이미 졸업을 했지만 딱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여 여기로 왔다.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했지만 워낙에 문이 좁고 사람은 많은 세계라 취직이 쉽지 않았다.

백화점에 오기 전까지는 이른바 '노가다'로 불리는 일용직 막노동을 했다고 한다. 어찌 일하는지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니 여러모로 가히 '야생적인' 일자리였다. 내가 "되게 힘들었겠다"고 하자, 형은 "집에서 노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고 답했다. 집에서 눈치 보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멀쩡한 몸뚱이를 가지고 무력하게 주저앉은 생활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백화점은 다른 일자리보다 훨씬 일하기 좋은 곳이다. PC방 아르바이트는 주간이나 야간이나 상관없이 최저임금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좋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워낙 넘치기 때문에 최저임금 이하에다 여러 명목으로 돈을 떼어 가도 어쨌든 일하겠다는 이들은 있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면 밥을 치킨이나 햄버거로 때워야 한다. 처음에는 잘도 먹지만 나중에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치밀 지경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편하다지만 계산 실수로 손해가 나면 제 임금으로 메워야 한다. 게다가 밤중에 취객이 말썽이면 정말 골치 아프다.

알약으로 지친 몸 달래는 아주머니들

백화점은 자본과 노동 간 계급이 확연한 공간이다. 손님에 대한 '절대 복종'은 '서비스 정신'이 되어 백화점 매장의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백화점은 자본과 노동 간 계급이 확연한 공간이다. 손님에 대한 '절대 복종'은 '서비스 정신'이 되어 백화점 매장의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 허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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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카트 관리부에 새로 들어온 이아무개(20)는 우리 중 가장 어린 동생이다. 여기 오기 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굴지의 레스토랑인데도 노동 처우는 기막혔다.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했지만, 욕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점심으로 손님이 먹다 남긴 고구마로 맛탕을 만들어 주는 걸 먹은 적이 있다며 서글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백화점 직원 식당의 돈 값 못하는 밥상을 불평하던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해가 바뀌며 가격이 올랐지만 외려 질은 떨어진 밥상이다.

정해진 식사시간 지키려고 허겁지겁 먹고 밥상을 물리면, 역시 아주머니들도 허겁지겁 매장으로 돌아가고 있다. 식후에는 물과 함께 꼭 알약을 두어 개 삼킨다. 아주머니들이 가방에서 저마다 하얀 약봉투를 꺼내는 풍경은, 식사 후 양치질처럼 거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가끔 그런 일상성에 위화감이 든다.

알바는 청년만 하지 않는다. 아저씨에 비하여 아주머니는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편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의 학원비와 집안의 생활비를 위해 약을 먹어 가면서 노동하고 있다.

거기에 쓰레기를 치우고 쓸고 닦는 환경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있다. 저녁밥을 먹고 급히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은 저마다의 고통을 묻어둔 이들로 복닥거린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꿈꾸며...

오늘도 뉴스에는 별로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춘향이 그네 타듯 뛰는 환율은 어느덧 1500원을 훌쩍 넘겼다. 지하철 역에서 주운 신문에는 웬 대학교수가 '기업이 구조조정이란 쓴 약을 마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이가 백화점 후방 지역의 생활을 하루라도 한다면 생각을 조금 달리할 것이라고 푸념을 했다. 오늘 하루도 전쟁하는 마음으로 출근을 한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손님은 똑같이 바글바글한 백화점의 모습은 화사하고 평화롭다. 손님의 어떤 억지라도 웃는 얼굴로 묵묵히 참아내니까 절대적으로 평화롭다.

때문에 '매장'에서의 웃음보다는 '후방'에서의 욕설이 더욱 인간적이라 하겠다. 후방지역에서 토하는 육두문자의 나열은 저 밝은 곳에서 결코 내비추지 못하는 속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나의 석 달 임금과 맞먹는 핸드백을 덥석 구매하는 이들을 보면서 굴욕감을 느끼지 않기란 좀체 어렵다.

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필요하다. 때로는 응원이 절박한 심정이 된다. 내일도 출근해야만 한다. 매일 노동의 전쟁을 치르는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를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불황이 ㅁㅁㅁ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입니다.



태그:#아르바이트,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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