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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덕분에 오바마를 가까이에서 취재할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오바마를 가까이에서 취재할 수 있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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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오바마 뒤꼭지 봤어."
"아니, 앞꼭지를 봐야지 뒤꼭지를 보면 뭐해?"

오바마 유세장에 못 들어간 큰딸의 감격(?) 발언이다.

지난해 10월 28일 미국 대선을 딱 1주일 남긴 날, 내가 살고 있는 미국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 유세가 예정되어 있었다. 150년 만에 찾아오는 유력 대통령 후보의 방문이었다.

오마이뉴스 팔아 오바마 보다

인구 5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대학 도시 해리슨버그는 오바마 방문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술렁거렸다. 시에서는 대중교통을 증편하고 유세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하고 도로 일부도 폐쇄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유세를 보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빠지거나 휴무를 한 채 유세장으로 직행한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변화(Change)'와 '할 수 있어(Yes, we can!)'를 외치는 오바마의 전략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집권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었다.

유세 날짜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커져 오바마 유세장에 들어가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더구나 오바마 유세가 예정된 곳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운동장 같은 열린 공간이 아니고 수용 인원이 한정된 실내 농구장이었던 만큼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오바마의 열렬한 팬인 내가 아는 한 미국인 교수는 자기 집 앞마당에 <오바마> 입간판까지 세워놓고 열심히 오바마를 '전도'하고 다녔지만 유세장은 포기한다고 했다.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서 농구장 수용 인원인 8천 몇 등 안에 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황은 이랬다. 모두가 지레 포기를 하고 TV로 중계되는 중계방송이나 본다고 했다. 하지만 해리슨버그에 산 지 3년 3개월 밖에 안된 평범한 시민 '나영 한'은 꼭두새벽부터 줄을 서지 않고도 유세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떻게? <오마이뉴스>를 팔았다.  

나, 오마이뉴스 특파원!

오바마가 해리슨버그에 온다는 소식은 이곳 대학 신문과 지역 일간지, 오바마 홈페이지를 통해 일찍이 발표되었다.

후보 확정이 일찍 끝난 매케인의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경선 마지막까지 오바마-힐러리 카드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경선이 뜨거워지면서 오바마가 격전지로 분류된 '스윙 스테이트'를 방문하는 가운데 버지니아에도 온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엄마도 갈 거야?"
"가봐야지. <오마이뉴스> 특파원인데. (오마이가 나를 '특파'한 바 없지만 내가 스스로 특파했다. ^^) 또, 오바마가 버지니아 다른 지역에 온다고 해도 가봐야 할 텐데 스스로 우리집 앞마당까지 온다는데 거길 안 가봐?"

당연히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대선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이기도 했고 사상 최초의 흑인 후보인 오바마는 여러 면에서 취재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유세장 입장. 사실 오바마 유세는 오후 5시 15분에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또한 그날이 공휴일도 아니기 때문에 자영업자도 아닌 나 같은 사람은 직장을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사 빠지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해도 그 줄이 입장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닐 것이기에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하지?

"엄마, 방법이 있을 거야.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하면."

평소 엄마의 <오마이뉴스> 글쓰기를 탐탁찮게 여기는 큰딸이 방법을 강구해 본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오바마 닷컴. 딸은 사이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더니 마침내 찾았다며 몇 가지를 물어왔다.

"엄마는 어느 나라 미디어야?"
"뭘 그런 걸 물어, 다 알면서. 당연히 한국이지."
"어떤 미디어야? 신문, 라디오, TV, 잡지…."
"인터넷 신문은 없어?"
"아, 있다."
"또 …"

이어지는 몇 개의 질문에 답을 한 뒤 딸은 나를 오바마 유세를 취재하는 한국 언론인으로 등록시켰다. '자, 그럼 이제 나는 보통 구경꾼이 아닌 당당한 언론인이야. 언론인 자격으로 오바마를 취재하러 가는 거라고.'

<오마이뉴스> 프레스카드의 위력

그날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섰다. 오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나는 길다란 행렬을 보면서, 또 잰 걸음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유로운 웃음을 흘렸다.

'흐흐, <오마이뉴스>의 '나영 한'은 이미 프레스에 등록된 기자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집에서 한가하게 점심까지 먹고난 나는 10분도 채 안 걸리는 농구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유세장과 가까운 주차장은 이미 폐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를 두고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유히 차를 몰고 차량 진입을 막는 경찰을 향해 "프레스"를 외치며 무사통과했다.

무사통과뿐 아니라 주차 문제도 아주 쉽게 해결했다. '프레스'라고 하니 유세장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모두 <오마이뉴스> 덕분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작은딸은 새삼 프레스의 위력에 놀라면서 즐거워했다.
오바마 유세를 취재하면서 받은 프레스 카드.
 오바마 유세를 취재하면서 받은 프레스 카드.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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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은딸도 <오마이뉴스> 덕을 봤다. 왜냐하면 오바마 유세에 가고 싶어하는 딸을 내가 조수로 임명(?)해 데려갔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도 보통 사진기자나 조수들을 대동하기에 나도 딸을 조수로 끼워 데려간 것이다.

그날 작은딸에게 맡긴 조수의 역할은 현장을 캠코더로 찍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초라한 내 캠코더와 삼각대는 곁에 세워진 쟁쟁한 '프로'들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그래서 촬영을 포기했다. 또, 오바마 닷컴에 가면 금세 좋은 화질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을 것이기에 아예 삼각대를 펼치지도 않았다.

사실은 큰딸에게도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주고 싶어 조수 역할을 권유해 봤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등록된 시민기자이기도 한 지라 기사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권유하지 않았는데 큰딸은 학교에서 듣는 '미국 정치'의 참관수업 일환으로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일찌감치 유세장에 가서 줄을 섰다. 그렇지만 못 들어갔다.

나중에 딸의 말을 들어보니 앞에서부터 차례대로만 입장했다면 들어갈 수 있었단다. 하지만 입장 시간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졌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자기네 코앞에서 줄이 끊기고 말았다나.

새치기에 분개하며 아쉬워하는 이들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마침 취재 나온 '데일리뉴스 레코드(DNR)' 기자 눈에 띄어 다음 날 조간에 큰딸의 이름과 딸이 한 말이 실리기도 했다.
"나는 비록 오바마 유세를 못 봤지만 새치기를 하는 따위의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게 너도 오마이를 따라 왔으면 오바마 볼 수 있었잖아."
"No, thanks." (그래, 잘났어!)

오바마, TV에서 보던 거랑 똑같애

연설이 끝난 뒤 오바마가 청중들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 프레스 단상에서 찍었다.
 연설이 끝난 뒤 오바마가 청중들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 프레스 단상에서 찍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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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 전용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언론인은 길게 줄을 설 필요도 없었다. 시간에 맞춰 들어가서 소속 언론사의 이름과 기자 본인만 확인하면 됐다. <오마이뉴스>를 말한 뒤 바로 프레스 카드를 받았다.

유세장 안에는 프레스용 연단도 준비되어 있었다. 오바마가 서게 될 연단보다 조금 높았다. 거리도 겨우 10여m 남짓 떨어진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좋은 사진, 동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엄마, 오바마 얼굴 똑같애. TV에서 보던 거랑."

오바마 단상과 가까운 곳에서 직접 오바마를 본 작은딸의 소감이다. 유세 다음 날 학교에 간 딸은 친구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제 네 엄마 봤어. 거기 기자들만 올라가는 높은 데서 오바마 사진 찍는 거."

그렇다. 나는 <오마이뉴스> 덕분에 '높은' 자리에서 오바마 유세장면을 생생하게 취재할 수 있었다.

지난 해 미국 대선 당시 투표장 모습. 오바마를 찍었다고 투표용지를 보여주는 여대생.
 지난 해 미국 대선 당시 투표장 모습. 오바마를 찍었다고 투표용지를 보여주는 여대생.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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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취재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4일 선거 당일, 투표소에 들어가 시민들의 투표 장면을 찍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또 민주당과 공화당 양사를 방문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취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오마이뉴스> 프레스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외국인인 내가 어찌 감히 그런 중요한 곳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었겠는가.

내가 만난 유명 인사들

버지니아텍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CBS-TV '이브닝 뉴스'를 진행하던 케이티 쿠릭을 만났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버지니아텍 총기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CBS-TV '이브닝 뉴스'를 진행하던 케이티 쿠릭을 만났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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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텍 총기사건 현장에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총집합했다. 이곳에서 NBC-TV 앵커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도 봤다.
 버지니아텍 총기사건 현장에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총집합했다. 이곳에서 NBC-TV 앵커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도 봤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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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유명 인사도 만나고 삶의 발자취도 남기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유명 인사도 만나고 삶의 발자취도 남기게 되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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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경험은 지난해 대선 때뿐만이 아니었다.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미국의 유명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 덕분이었다. 그런 유명 인사들을 손으로 꼽아보자면 여럿 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케이티 쿠릭과 투투 주교다.

케이티 쿠릭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뉴스 앵커 가운데 하나로 CBS-TV의 '이브닝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케이티를 지난 2007년 4월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을 취재하러 갔다가 현장에서 만났다.

그녀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이브닝뉴스'를 마치고 프레스 센터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평소 TV에서 많이 봤던 그녀를 만나 기뻤다. 그래서 사진도 요청하고 잠시 얘기도 나눴다. 케이티뿐 아니라 NBC-TV의 앵커인 브라이언 윌리엄스도 그곳에서 봤다.

또, 2007년 9월에는 이곳 제임스매디슨 대학교 <마하트마 간디센터> 기자 간담회장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를 만났다. 그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그의 강연도 취재해서 <오마이뉴스>에 올리기도 했다.

투투 주교가 JMU '마하트마 간디 센터' 앞 잔디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이 간담회를 마친 뒤 '마하트마 간디 글로벌 비폭력상' 시상식장으로 떠났다.
 투투 주교가 JMU '마하트마 간디 센터' 앞 잔디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는 이 간담회를 마친 뒤 '마하트마 간디 글로벌 비폭력상' 시상식장으로 떠났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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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덕분에 투투 주교를 바로 코앞에서 찍었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투투 주교를 바로 코앞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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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오마이뉴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사건도 만났다. 특별한 자취 없이 평범하게 살아왔던 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인생이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덕분에 그동안 살아온 날들에, 또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흔적도 추억도 남길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오마이뉴스> 너, 때문이었다. 고맙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태그:#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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