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경 감독

임오경 감독 ⓒ 심재철

처음 세 경기를 내리 패했고 이틀 전에야 겨우 첫 승리를 올렸다. 그 기세를 몰아 디펜딩 챔피언을 꺾는 듯 했지만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새내기 팀을 이끌고 당차게 핸드볼큰잔치에 도전하고 있는 서울시청 임오경 감독은 이처럼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임오경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은 18일 낮 부천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진 2009 핸드볼큰잔치 여자부 풀리그 삼척시청과의 경기에서 후반전 중반까지 비교적 여유 있게 앞서가다가 경기 끝무렵에 주춤하며 26-26으로 비기고 말았다.

극적인 승부를 예견한 것일까?

핸드볼 경기에서 감독은 전반전과 후반전에 각각 한 차례씩 작전 시간을 요청할 수가 있다. 그래서 승부의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나 선수들이 몹시 지쳤을 때 알파벳 'T'가 새겨진 표지를 손에 들고 안절부절한다.

지난 해 이 대회 여자부 정상에 오른 바 있는 삼척시청의 이계청 감독은 후반전 20분경 점수가 18-24로 벌어지며 선수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음에도 작전시간을 요청하는 표지를 내밀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순간의 극적인 승부를 예견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새내기 팀을 이끌고 있는 임오경 감독은 그 시간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선수들이 크게 흔들릴 때 벤치로 불러모아 정신을 차리게 하는 주문을 걸었다. 경기 결과를 놓고 볼 때, 이러한 취향의 차이가 마지막 집중력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 팀 선수들은 다른 경기에 비해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몇 초 사이를 두고 공격권이 여러 차례 바뀌는 장면도 보였다. 26-26이라는 결과 만큼이나 긴장된 승부였기 때문이었다. 2개조로 나뉘어 실력을 겨루는 남자부 방식과는 달리 여덟 팀이 모두 한 번씩 돌려붙어 순위를 가린 뒤 상위 세 팀이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되어 있는 여자부의 경우, 이 경기가 그 자리에 올라설 한 팀을 가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척시청 센터백 정지해

삼척시청 센터백 정지해 ⓒ 심재철


마지막에 웃은 것은 역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삼척시청은 간판 센터백 정지해가 '죽을 쑨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후반전 중반까지 크게 흔들렸다. 전반전 초반 7m 던지기를 어이없게도 왼쪽 기둥 밖으로 보내버리던 장면이 자꾸 떠오를 정도로 안 되는 날이었다.

그래도 삼척시청 일곱 명의 선수 중에서 가장 믿을 수밖에 없는 선수는 정지해였다. 후반전 20분, 서울시청의 오른쪽 날개 박혜경에게 골을 내준 뒤 점수판은 24-18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팀 서울시청이 '임오경 감독, 레프트백 강지혜-센터백 김진순-라이트백 윤현경' 등 실력자들로 뭉쳐진 팀이라고 하지만 디펜딩 챔피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드라마, '5초'의 마지막 순간

반전 드라마의 시작은 정지해가 맡았다. 팀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은 상태였지만 입술을 꼭 다문 그의 당찬 몸놀림은 역시 수준급이었다. 그녀가 한 골을 따라붙으며 전기를 마련한 삼척시청 선수들은 경기 시간 4분 정도를 남겨놓고 상대팀 점수판을 26으로 고정시켜버렸다.

오른쪽 날개 최설화, 라이트백 박지현, 피벗 유현지의 연속골이 터지며 부천체육관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그리고 센터백 정지해의 믿을 수 없는 몸 비틀기 동작이 나왔다. 1분 30초 정도를 남겨놓고 크로스바에 맞고 떨어지는 결정적인 슛으로 25-26까지 따라붙은 것. 그러는 동안 서울시청의 공격은 쫓기는 마음에 너무나 급하게 이루어졌다. 당연히 실책이 연거푸 나오고 말았다.

삼척시청의 이계청 감독은 왼쪽 날개 장은주와 센터백 정지해의 멋진 스카이 동작이 아쉽게도 착지 판정을 받고 동점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마지막 5초를 남기고 작전 시간을 요청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손에 땀이 밸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왼쪽 날개 장은주를 활용하는 기습 공격이었다. 5초라는 시간이 결코 넉넉지 않았지만 후반전 초반 그녀의 고른 활약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감독의 예리한 판단이 적중한 것이었다.

레프트백 심해인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장은주는 슛 각도를 줄이며 달려나오는 서울시청 문지기 용세라의 다리 사이를 노렸다. 경기 내내 용세라의 다리를 이용한 선방이 눈부셨던 것을 감안하면 그곳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구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3점짜리 버저비터와 비견될 수 있는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 것이었다.

이 극적인 승부를 끝낸 삼척시청은 3승 1무 1패의 성적을 안고 대구로 내려가 용인시청과 대구시청을 차례로 상대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3위까지의 플레이오프 티켓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반면에 새내기 서울시청은 다 잡았던 대어를 놓치는 바람에 1승 1무 3패가 되어 역시 대구로 내려가 맞붙는 두 경기(vs 부산시설관리공단, vs 한국체대)에서 큰 부담을 안고 뛰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09 핸드볼큰잔치 여자부 풀리그 경기 결과, 18일 부천실내체육관

★ 삼척시청(3승 1무 1패) 26-26[전반 12-11] 서울시청(1승 1무 3패)

◎ 삼척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박미라 선방 12, 실점 25(방어율 32%), 신해림 실점 1
장은주 5골, 심해인 5골, 유현지 3골, 정지해 7골, 박지현 3골, 최설화 3골

◎ 서울시청 선수들 선방/득점 기록
문지기 용세라 선방 12, 실점 26(방어율 32%)
안예순 2골, 강지혜 3골, 김진순 3골, 김경미 7골, 윤현경 6골, 박혜경 5골
윤현경 김진순 임오경 서울시청 핸드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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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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