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종합경기장 입구에 세워진 채금석 선생을 상징하는 축구공과 흉상, 기념비
ⓒ 조종안
군산 축구협회 백영식 회장은 ‘2009 금석배 전국학생 축구대회’가 2월18일 오전 11시부터 28일까지 군산 월명종합 경기장과 군산대·호원대·금강 체육공원 등 7개 보조구장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군산 축구발전과 축구인들의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 1월 13일 월명종합 경기장 2층에서 사무실 현판식을 하고 업무에 들어간 백 회장은 ‘금석배’가 군산에서 영구개최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20년 전 채금석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나는 자네가 내 뒤를 이어줄 사람으로 믿네!” 하시기에 마음으로 3가지 약속을 드렸는데 둘은 지키고 하나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선생님의 유지를 받들어 오직 군산 축구발전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고 전북축구협회가 주관하며 군산시와 군산축구협회가 후원하는 이번 대회에는 초등부 52개 팀 고등부 32개 팀이 참가, 조별리그를 거쳐 16강부터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린다. 2008년 고등부 대회에서는 부평고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전주공고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차지한 바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금석배 전국학생 축구대회’는 지난 1992년 처음 열리고 나서 익산과 전주를 순회하며 개최되어오다 작년에 고 채금석 선생의 고향인 군산에서 영구 개최하기로 결정됐다.
전북에서는 초등부·고등부 합해 전주·익산·고창 등지에서 10여 개 팀이 참가할 예정으로 알려졌는데, 축구 명문으로 소문난 군산 제일고와 문화초등학교가 우승을 노리고 열전을 펼칠 것으로 기대된다.
대회가 열리는 11일 동안 선수와 임원, 학부모를 포함해 6천여 명이 군산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선수들의 몸 컨디션을 조절하려고 개막일 이전에 와서 숙식하는 팀들도 상당수여서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군산시와 군산축구협회는 대한축구협회와 사전 협의를 통해 선수단 관리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관내에 있는 숙박업소와 식당 등에게는 친절 및 청결에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채금석은 누구? |
▲ 손자 같은 제자가 경기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자 기뻐하는 채금석 선생
ⓒ 군산축구협회
민족 암흑기인 1904년 4월 9일 군산시 구암동 260-1에서 태어난 채금석은 1995년 12월 26일 향년 91세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오로지 축구공과 함께 인생을 마감한 한국의 대표적인 축구국가대표 선수요, 축구 지도자로 한국 축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진정한 축구인이었다.
주력이 좋아 '오토바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던 채금석이 축구공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02년 미국 남 장로교에서 세운 군산영명학교 축구부에 입단하면서부터였다. 이후 1930년 경신 중 재학시절 일본대표(와세다 대학)팀과의 경기를 우승으로 이끈 선수로서의 활약상은 당시 전국에 걸쳐 유명한 일화가 화제가 되리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로 활약했다.
또한, 1933년 제2회 경·평(서울·평양) 전에 출전, 승리로 이끈 이후 해방 전(1944년)까지 한국의 축구 왕 김용식씨 등과 명성을 얻었다. 1934년 광주학생사건과 관련, 일본관헌 폭행사건으로 중학교를 중단한 채금석은 이후에도 계속 평화축구단 등 소수의 여러 축구 조직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에도 앞장섰던 의혈 넘치는 애국청년이었다.
1935년 베를린올림픽 예선전에 한국 대표선수로 출전한 것을 끝으로 국가대표선수 생활을 마치고 낙향한 이후에도 고향 출신으로 이루어진 일명 구암축구단을 구성, 활약하면서 53세까지 전북 일반부 전국체전 전북대표로 출전하리만큼 왕성한 축구사랑정신을 발휘했다. 1985년에는 경신고등학교 측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일본순사 폭행사건 후 실로 51년 만에 학업 중단의 한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채금석은 한평생을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훌륭한 축구 지도자 및 국가대표선수, 프로축구, 실업, 대학, 초·중·고 등 후진 선수양성에 공헌함으로써 한국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한 한국 축구계의 거봉이자 거인이었다. - 채금석 선생 기념비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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