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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이번주에 도전한 영역은 한국 드라마 제작 체험기다. 인기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캐릭터와 기본 설정은 빌려왔지만 무한도전 특유의 패러디로 원작을 심하게 비틀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꽃보다 남자'라는 원작에 관한 패러디라기보다 한국 드라마 전체에 대한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나 소재가 무한도전 꽃보다 남자 드라마에 모두 담겨있다. 이 드라마의 부제목인 ‘쪽대본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 제작현실에 대한 풍자다. 일주일에 두번씩 방송되는 바쁜 일정에 맞추기 위해 드라마 작가들은 쪽대본을 날린다. 배우의 입장에서 촬영 직전에 쪽대본을 받아서 급하게 연기로 풀어야 하는 건 보통 고역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도 짧은 시간에 역할을 이해하고 그걸 연기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직접 작가가 되어 쪽대본을 쓰고 연기까지 하는 체험을 한다. 말도 안되는 대본을 본 다른 멤버들은 불만을 털어놓는다. 무슨 대본이 이렇게 엉망이냐고. 그러나 정작 자신이 작가가 되면 그 역시도 비슷한 수준의 대본을 쓸 수 밖에 없다. 한국 드라마 제작여건상 쪽대본을 작가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려운 사정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작가도 바뀌는 현실이다보니 어떤 작가들은 디씨같은 인터넷 게시판을 들락거리며 시청자 반응을 살피곤 한다.

 

최근 한국 드라마도 미국드라마처럼 사전제작을 시도하고 있지만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방송사와 제작사가 이런 투자를 하기 어렵다. 미국도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먼저 제작해서 반응을 살피는 과정을 둔다. 인기가 없어서 전체 시즌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드라마도 부지기수다.

 

‘무한도전 꽃보다 남자’는 쪽대본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뒤엉키고 꼬인 이야기는 결말에 가서 어떻게든 정리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상투적인 주제와 소재가 모두 등장했다. 잔디(전진)가 걸리는 병은 백혈병이다. 백혈병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불치병이다. 그리고, 재벌2세, 납치,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증, 교통사고 등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가 다 들어간 종합판이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런 상투적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활용해서 새롭게 풍자로 재구성했다. 뻔한 이야기가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즐거움을 줄 수 있다 .

 

자주 등장하는 주제도 주요 풍자거리였지만 컴퓨터 그래픽도 웃음의 소재가 되었다. 대충 복사해서 붙여서 화제가 되었던 '연개소문'의 삼천궁녀가 떨어지는 장면도 이 드라마에서 재연되었다. 호수에 잔디를 빠뜨리는 장면에서 복사 오리도 큰 웃음을 준다. 컴퓨터 특수효과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먹히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제작한 특수효과는 대본과 연기말고도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음을 은근히 보여준다.

 

'에덴의 동쪽', '아내의 유혹', '가을동화' 등 유명 드라마의 장면 뿐만 아니라 홍콩영화 ‘천장지구’에서 나온 웨딩드레스 입고 오토바이 타고가는 장면도 나온다. 점 하나를 찍으면 다른 인물이 되고, 금니의 갯수로 다중인물을 연기한 노홍철도 재미있는 요소였다. 이렇게 하루 동안 제작된 작품이 6부작으로 완성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제작환경 속에서 그런대로 봐줄만한 작품을 꾸준히 만드는 한국 드라마 현실이 무한도전의 쪽대본드라마에 들어있다.

 

대본 작가에게 본인의 출연분과 배역을 늘려달라는 정치싸움도 등장한다. 대본 작업에 참여하면서 어떻게 고쳐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정준하는 유명 배우의 정치게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싸움으로 드라마는 산으로 가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배우도 나온다.

 

한국 드라마 제작판의 내부를 해부하며 풍자한 이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이라면 원작과 비교하며 상투성을 꼬집으며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무한도전, #꽃보다 남자, #한국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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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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