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클림트 '황금빛 비밀'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입구의 대형홍보물
 클림트 '황금빛 비밀'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입구의 대형홍보물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현대미술사에 상징주의로 큰 획을 그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황금빛 비밀-토탈아트를 찾아서'展이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5월 15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은 주로 오스트리아 벨베데레(Belvedere) 국립미술관이 소장해온 것으로 드로잉과 유화 등 대표작 등 110여 점을 선보인다.

빈 분리파(Wiener Sezession)
프랑스인상파에서 독자적 노선을 걸었던 앙데팡당이 있었듯이 빈에서도 상업적이고 관료화된 기존화단에 반발하여 과거의 모든 미술로부터 분리한다는 뜻에서 1897년 클림트가 주도하여 만든 미술유파다. 다음해 1월에는 월간지 '베르 사크룸(Ver Sacrum, Sacred Spring 성스러운 봄)'을 내고 3월에는 제1회 빈 분리파전을 열기도 한다. 클림트는 참신한 화가들을 발굴하여 전시도 주선한다. 한편 모네, 샤반 같은 외국작가도 소개하며 오스트리아에 모더니즘을 뿌리내린다. 그의 영향은 전 유럽으로 퍼진다.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창시자로 지구상에서 그림이 가장 많이 복제되는 인기작가다. 워홀이 상업미술을 하다가 화가가 되었듯 클림트는 장식미술을 하다 화가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건축이나 벽화, 상업미술이나 순수미술의 경계를 넘는 토탈아트(총체예술 Gesamtkunstwerk)를 낳는다.

그가 30살이 되던 해 같은 예술의 길을 걷던 동생 에른스트를 잃고, 부친마저 돌아가자 심적 공황에 빠진다. 그래서 남은 동생, 조카,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다. 세기말 분위기도 있었겠지만 이런 개인사가 그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인식과 불안을 더 촉발시켰는지 모른다.

물론 당시 사회가 오늘날과 같은 페미니즘이 통한 건 아니지만 남자들은 모든 죄를 여자에게만 덮어씌우던 시대가 끝나고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하여간 클림트는 남자로서 여자가 되어 성해방을 주도적으로 이끈 작가 같다.

그가 보는 여자의 심미안은 남다르다
- 여성미에 대한 빼어난 탐구자(1883~1894)

'여자누드(Study of a female nude)' 캔버스에 유채 86×45cm 1883.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Portrait of Marie Breunig) 혹은 검은 드레스 입은 여인' 155×75cm 1894(오른쪽)
 '여자누드(Study of a female nude)' 캔버스에 유채 86×45cm 1883.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Portrait of Marie Breunig) 혹은 검은 드레스 입은 여인' 155×75cm 1894(오른쪽)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위 작품을 보면 그가 여성에 대한 예리한 탐구자로 여성 자신도 모르는 신비한 매력을 발굴하여 작품으로 만드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사실 그의 누드는 본 궤도에 오를수록 낯설고 섬뜩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습작인 '여자누드'를 보면 그가 얼마나 그리스 고전주의에 정통했고 여성의 몸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마리 브로이니크 초상'은 '여자누드'가 나온 지 11년 후 작품으로 훨씬 원숙하게 보인다. 이 작품에서 그는 구상적 인물과 추상적 배경을 절묘하게 혼합했다. 이런 초기작들을 통해 그의 변모과정도 엿볼 수 있다.

부(富)는 쌓았으나 타락한 주류사회의 위선폭로
- 기존의 법학, 철학, 의학을 모독하는 충격적 화풍(1897~1898)

'의학(Medicine)'의 구도를 위한 습작(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55cm 1897~1898. 아래 월계관을 쓴 여자가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다
 '의학(Medicine)'의 구도를 위한 습작(부분화) 캔버스에 유채 72×55cm 1897~1898. 아래 월계관을 쓴 여자가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 작품은 1894년 오스트리아교육부의 의뢰로 제작한 빈 대학 천장화 '법학, 철학, 의학' 중 '의학' 습작이다. 병마로 괴로워하는 누드 옆에서 건강의 여신 '히기에이아'는 이를 등지고 있고 배경색도 병적인 불그스레한 색채를 띠고 있어 사람들의 격한 반발을 샀다.

특히 '철학'은 당시의 과학적 신념을 뒤집는 것이라 87명의 빈 대학교수가 서명한 탄원서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근대성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니체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든 19세기적 사고를 벗어나려고 했던 그가 이에 응할 리 없었다. 이 작품은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타 확실하게 국제적 평가도 받는다.

그가 이렇게 큰소리를 내는 건 19세기 유럽사회가 식민지개척과 근대화로 부를 쌓았으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미술로 보는 20세기>에서 "클림트의 작품이 당대에 '퇴폐적 에로티시즘'이라고 비난받았으나 그 시대가 그의 작품보다 더 퇴폐적이었다. 성도덕도 문란해져 매독이 창궐했다"고 적고 있다.

애국여걸 유티트를 요부와 악녀로 묘사하다
- 20세기초 여성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1901)

'유디트 I(Judith I)' 캔버스에 유채와 금박 153×133cm 1901
 '유디트 I(Judith I)' 캔버스에 유채와 금박 153×133cm 1901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1901년 5번째 분리파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유디트는 이스라엘을 아시리아에서 구한 애국여걸로 서양미술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소재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녀보다는 악녀가 된다. 구국보다는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정형적 '팜므 파탈(femme fatale, 요부)'로 그려져 있다.

자신의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듯 눈은 반쯤 감고 입은 벌린 채 앞가슴도 풀어헤치고 있으며 옷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한 표정은 영락없는 유혹녀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자른 살로메의 이미지와 닮았다.

그림 아래를 보면 유디트는 적장 호로페르네스의 목을 손에 쥐고 격정과 황홀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관능과 장식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우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하여간 강한 남성도 여지없이 쓰러뜨리고 여성의 궁극적 승리를 노래한다.

환희의 찬가와 새천년 희망염원
- 베토벤프리즈 벽화(Beethoven Frieze 1901~1902)

'베토벤프리즈-'적대세력(Hostile Forces)'와 '행복의 염원(Yearning for Happiness, 오른쪽 하단)' 회벽 위에 카세인 및 복합매체 1901~1902. 비어즐리와 유사성이 있다
 '베토벤프리즈-'적대세력(Hostile Forces)'와 '행복의 염원(Yearning for Happiness, 오른쪽 하단)' 회벽 위에 카세인 및 복합매체 1901~1902. 비어즐리와 유사성이 있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 프리즈연작은 클림트가 베토벤교향곡 9번 합창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1부 '행복의 염원(Yearning for Happiness)' 2부 (이를 방해하는) '적대세력(Hostile Forces)' 3부 '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This Kiss to the Whole World)'로 짜여 있다. 앞에서 언급한 건축과 벽화와 회화가 하나 되는 토탈아트가 주는 짜릿함으로 온몸을 떤다.

2부는 고통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왼쪽 세 여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괴물 '고르곤(gorgon)'으로, '질병, 광기, 죽음(적대세력)'을 상징한다. 또한 벽면마다 차별화된 색으로 다른 상황을 보여준다.  

클림트가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그런지 작품에 음악이 흐르는 것 같고 장식은 덩굴처럼 둥근 선이 많은 아르누보 혹은 유켄트스틸(청춘양식) 풍이다. 벨 에포크(19세기말 20세기초 유럽의 태평성대)시대와 연관되어 보인다. 하여간 그는 이런 애욕주의를 통해 죽음과 절망도 환희와 열락으로 바꿔보려는 꿈과 이상을 품은 것 같다.

키스로 전 세계에 보내는 구원의 메시지
- 에로스의 찬가와 환희의 송가는 상통한다(1901~1902)

'베토벤프리즈-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This Kiss to the Whole World)' 회벽 위에 카세인 및 복합매체 길이 34.14m 높이 2.15m 1901~1902. 벽화 뒤에서 환희의 송가가 들려오는 것 같다.
 '베토벤프리즈-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This Kiss to the Whole World)' 회벽 위에 카세인 및 복합매체 길이 34.14m 높이 2.15m 1901~1902. 벽화 뒤에서 환희의 송가가 들려오는 것 같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전 세계에 보내는 키스'는 인류구원을 염원하는 시적인 제목이다. 그런 면에서 키스의 찬가와 환희의 송가는 통한다. 하지만 살점은 없고 불거져 뼈만 나오는 모습으로 격정적 키스를 하는 것은 그 이면에 인간이 죽는 존재라는 것도 일러준다.

<구스타프 클림트(마로니에북스)>의 전기 작가인 질 네레는 클림트가 임신부를 많이 그린 것은 생명을 낳는 탯줄인 자궁을 인간의 희망을 무르익게 하는 큰 그릇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이 작품을 '떠날 수 없는 모성으로 향한 끊임없는 여행'으로 해석한다.  

로댕은 이 벽화를 보고 "비극적이면서도 거룩한 작품"이라 극찬한다. 하긴 이런 화려하고 다채로운 문양이 나오는 건 청나라, 일본양식(자포니슴)의 영향도 있지만 주로 비잔틴양식에서 온 것이다. 이 작품은 2차 대전 때 훼손됐다 복구되어 1984년에 다시 공개된다. 

인간의 본능인 에로티시즘, 예술로 승화
- '기다림', '생명의 나무', '충만' 등 절정기 만개(1905~1909)

한가람미술관 아트숍에서 파는 클림트의 황금빛 상품들 '기다림' '생명의 나무' '충만((fulfillment, 우산장식)' 1905~1909년에 제작됨. 금빛은 여자를 화려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하는데 적격이다.
 한가람미술관 아트숍에서 파는 클림트의 황금빛 상품들 '기다림' '생명의 나무' '충만((fulfillment, 우산장식)' 1905~1909년에 제작됨. 금빛은 여자를 화려하고 관능적으로 표현하는데 적격이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눈 뜰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위 작품들은 20세기초 그의 절정기의 것들이다. '기다림', '생명의 나무' '충만'은 참으로 매혹적이라 미적 쾌감과 함께 성적 오르가슴도 느끼게 한다. '충만'에서 보여준 입맞춤은 인간의 존재마저 망각케 할 정도로 아찔하고 황홀하다.

괴테는 "여성적인 것이 세상을 구한다"고 했는데 클림트는 "관능적 사랑이 세상을 구원하다"는 말인가. 하긴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로제 다둔은 "에로티시즘은 단순히 성과 성애를 넘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포함한 인류의 생존자체와 관련되는 본질이다"라고 말했다.

클림트는 이렇게 18세기 프랑스혁명에서 루소와 볼테르가 계몽주의자 역할을 했듯 에곤 실레와 함께 20세기 에로티시즘 미술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는 이렇게 20세기가 이성의 억압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능을 분출하는 시대임을 예언한 셈이다.

클림트의 어머니 고착과 여인숭배
- 여자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1917)

'아말리 주커칸들 초상(Portrait of Amalie Zuckerkandl) 미완성' 캔버스에 유화 128×128cm 1917. '마리아 뭉크 초상(Portrait of Maria Munk)' 캔버스에 유화 50×50cm 1912(아래)
 '아말리 주커칸들 초상(Portrait of Amalie Zuckerkandl) 미완성' 캔버스에 유화 128×128cm 1917. '마리아 뭉크 초상(Portrait of Maria Munk)' 캔버스에 유화 50×50cm 1912(아래)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클림트는 전생에 여자였는가. 그는 여자 자신들도 모르는 미의 영역을 발굴하며 여성을 예술품으로 만든다. 우아한 상류층 부인에서 청순한 시골소녀까지 다 클림트의 모델이 된다. 물론 후반기에는 인상파와 다른 숲의 정령이 살고 있는 것 같은 클림트식 풍경화를 선보인다. 

그는 빈의 문화예술인 모임을 주도한 '비트겐슈타인부인(1905)'과 기품 있는 '프리차 리들러(1906)' 등 귀부인을 많이 그렸다. 위 '아말리 주커칸들'도 그런 소재 중 하나로 후기작이다. 그가 이런 그림에 집착하는 건 마더 콤플렉스와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클림트는 자식을 14명 낳을 정도로 바람둥이였지만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하고만 산다. 그는 '요부에 대한 집착'과 함께 '어머니에 대한 고착현상'을 보여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마리아 뭉크 초상'은 죽은 여인을 그린 그림임에도 오히려 밝고 화사하다.

미완성 유작인 '아담과 이브'
- 성서의 이브를 현대적 팜므 파탈로 변신(1917)

'아담과 이브' 캔버스에 유화 173×60cm 1917. 아트숍 모조품(왼쪽) 원화(오른쪽). 여기서 성기노출은 성적 자극보다는 인간실존의 상징을 뜻한다.
 '아담과 이브' 캔버스에 유화 173×60cm 1917. 아트숍 모조품(왼쪽) 원화(오른쪽). 여기서 성기노출은 성적 자극보다는 인간실존의 상징을 뜻한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제 끝으로 '아담과 이브'를 보자. 뱀의 유혹에 빠져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다는 이브,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팜므 파탈이 그의 그림 속 마지막 주인공이 된다. 금발머리, 호피무늬, 발에 장식한 아네모네가 그녀의 농염함을 더욱 짙게 한다.

이 클림트의 유작은 기존의 개념을 깨는 것이다. 아담은 이브의 후광 속에 파묻혀 무기력해 보이는 반면 이브는 아주 활기차다. 아니 당돌하다 못해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작가는 여기서 이브를 자책이나 죄의식과 거리가 먼 자의식이 강한 여성으로 부각한다.

클림트가 "모든 예술은 다 에로틱하다"며 에로티시즘의 거장이 된 지 100여 년이 넘었건만 우리에겐 아직 그런 주제를 다루는 대가가 없다. 유례가 없는 가부장제로 한국은 지금도 남녀평등지수에서 세계100위 아래다. 이번 전을 계기로 우리도 문화에서 촌티를 벗고 다양한 가치와 주제를 포용되는 21세기문명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http://www.klimtkorea.co.kr
약도 http://www.klimtkorea.co.kr/exhibit_4.php 문의 02) 334-4254
입장료 성인 16,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



태그:#구스타프 클림트, #토탈아트, #에로티시즘, #빈 분리파, #팜므 파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