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2의 <워낭소리>? 이대로는 나오기 힘들죠"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 만료 등 악재... "영화 다양성 정책 나와야"
09.02.11 12:05 ㅣ최종 업데이트 09.02.11 18:50 이승훈 (youngleft)
  
ⓒ 이승훈
워낭소리

"워낭소리로 번 돈이요? 작년 적자 메우는 데 써야죠."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워낭소리>의 배급사인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의 표정엔 안도와 우려가 교차했다.

 

"<워낭소리> 덕분에 인디스토리 설립 이후 3번째 위기를 넘기게 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독립영화 개봉과 마케팅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올 하반기를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곽 대표는 "독립영화의 경우 단관 개봉을 하더라도 포스터 제작 등에 필요한 최소 홍보마케팅 비용만 따져도 600만~700만원이 든다"며 "또 이런 영화들은 비용 문제로 적극적인 마케팅이 힘들어 그만큼 관객과의 접촉면도 작기 때문에 적자를 피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영화를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해 마케팅 비용에 욕심을 부려 수천만원을 투입할 경우에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진다.

 

곽 대표는 "인디스토리야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도) <워낭소리>에서 얻은 수익으로 어떻게든 운영을 해볼 수 있겠지만 만약 <워낭소리>가 없었다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다른 독립영화 배급사들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립영화 배급사들도, 감독들도 "걱정돼"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도 예외가 아니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배우이자 첫 장편영화 <똥파리>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인 'VPRO 타이거 상'을 수상한 양익준 감독도 요즘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에 이어 한국 영화로는 세번째로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지만 자신의 영화를 완성하고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과정에서 부딪치는 현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살고 있던 집의 전세금을 빼고 팔 수 있는 재산을 다 팔아 영화 제작비를 댔지만 빚이 1억원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똥파리>가 완성될 무렵 영진위의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도 없어졌다. 양 감독은 "정말 황당할 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는 4월 개봉을 앞두고 있긴 하지만 양 감독은 "돈을 갚아야 할 20여명의 명단이 적힌 수첩을 보면 나오는 게 한숨뿐"라고 말했다.

 

그는 "완성도도 있고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 하더라도 여건들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소규모로 개봉할 수밖에 없고 입소문이 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사비를 털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완성하고 배급을 하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워낭소리>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계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화의 문화적 측면보다는 산업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독립영화를 둘러싼 현실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개봉 독립영화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지원했던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은 2008년을 끝으로 폐지됐고 독립영화계의 숙원이었던 독립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은 예산이 삭감되면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영화는 산업'이라는 정부... 한숨 커지는 독립영화계

 

영진위의 개봉지원 사업의 막차를 탄 <워낭소리>가 관객 30만명을 돌파하면서 독립영화 역대 흥행 기록을 매일 경신해 가고 있지만 이는 대단히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독립영화계는 영화의 산업적 측면에만 중점을 두는 정부와 영진위의 정책에 깊은 우려를 보내고 있다. 영화 산업이 위기라는 이유로 800억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등의 단기적인 산업진흥 정책에만 매진할 뿐 중장기적인 독립영화 지원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익의 논리로 도저히 상업 영화를 이길 수 없는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은 찬서리를 맞을 수밖에 없다.

 

<워낭소리>의 제작자이자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인 고영재 PD는 "경쟁력이 있는 곳에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한마디로 미국의 할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미국은 우리와 달리 비영리재단이나 자선 재단 등 개인의 창의성을 지원할 민간 주도의 시스템이 잘 마련돼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면서도 그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외부 여건에는 눈을 감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워낭소리>의 흥행 성공으로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독립영화 체질 강화론'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영화는 다양한 실험이 일어나고 그만큼 많은 실패가 일어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여기에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체질 강화를 주문하는 것이 난센스라는 것이다.

 

곽용수 인디스토리 대표는 "인디스토리만 해도 이제 10년째로 그만큼 독립영화의 역사가 일천한데 덜 큰 아이를 시장에 던져놓고 싸우라고 할 단계는 아니다"며 "독립영화의 체질 강화가 일부 필요성이 있다고 해도 그 전에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조건이 마련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지원 정책 마련 중" -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독립영화계의 우려에 대해 영진위는 새로운 지원 정책을 준비중이라는 입장이다. 영진위 영상문화조성팀 관계자는 "2009년 없어진 개봉지원 사업의 경우 직접 지원금을 줬던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지원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독립영화계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위기의 한국 영화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영화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꾸준한 정책이 필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문화라는 것이 자본을 무조건 투입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목매는 것보다 창의성을 가진 개인이 활발하게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것이다.

 

고영재 PD는 "영화 산업을 위해서 독립영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독립영화는 예술적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통해 영화 산업에 창의성과 활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산업 전반을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나 영진위가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착해 이런 기둥을 튼튼하게 하는 다양성과 공공성을 외면하는 정책을 지속한다면 제2의 <워낭소리>는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 PD는 "독립영화에서 시도된 예술적 가능성들이 영화 산업 전반으로 전이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영화의 다양성도 확보하고 산업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며 "영화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영화의 다양성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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