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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골목길에 앉아 재봉틀 일을 하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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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면 재래시장을 찾아보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상품들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왁자지껄 시끄럽고, 그래서 사람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삶의 활기가 넘쳐나는 재래시장에서 삶의 의욕을 충전하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서울과 지방 곳곳의 재래시장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재래시장 중의 하나가 서울의 남대문 시장일 것이다. 오랜 전통과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상품들이 넘쳐나고, 그만큼 찾는 손님들도 많은 이 시장 안경골목으로 불리는 곳에 83세 할머니의 힘겨운 삶이 있다.

서울역에서 퇴계로를 향하여 올라가다가 남산으로 오르는 굴다리를 지나면 왼편 첫번째 골목에 ‘남대문시장’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이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왼편으로 올라가는 골목이 있는데 지난해 방화로 불탄 숭례문 앞에 서있는 단암빌딩(구 도큐호텔) 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이 '안경골목'이다.

이 골목 중간쯤 길가에는 날마다 머리카락이 새하얀 할머니 한분이 재봉틀을 놓고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올해 83세의 채수임 할머니다. 일이라야 인근 옷가게에서 팔린 바지 끝단을 조금 줄여주거나 허리부분을 줄여주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쉬는 법이 거의 없다. 아침 10시경이면 출근하여 재봉틀을 돌리며 일을 하거나 일감이 없을 때면 오도카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재봉틀 밑에는 작은 카세트가 놓여 있어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퇴근 시간은 저녁 5시경. 시장의 손님들이 줄어들고 있을 때면 할머니도 주섬주섬 짐을 챙겨 퇴근 준비를 한다. 이런 일과는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철에도 변함이 없다. 인근 옷가게들이 쉬는 날이 아니면 할머니도 쉴 수가 없는 것이다.

2월 10일 방화로 소실된 지 1주년을 맞아 숭례문이 시민들에게 개방된 날도 할머니의 일과는 다르지 않았다. 숭례문 현장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만난 할머니의 모습도 전과 다름이 없었다.

“요즘은 날씨가 포근해서 괜찮구먼.”

길거리 밖에서 일하시면 춥지 않냐고 묻자, 요즘은 날씨가 따뜻해서 봄날 같다며 한겨울 추울 때는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이곳에서 몇 년째 일하시느냐고 물으니 올해로 40년째라고 한다.

“바지도 고쳐주고 찢어진 옷이나 뜯어진 곳도 꿰매주고, 재봉틀로 하는 일은 뭐든 다 잘하지요.”

아주 능숙하게 일하신다고 하자 하는 말이다.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니 올해 83세라고 한다. 그런데 83세나 된 할머니가 안경도 끼지 않고 일하는 광경이 신기하다. 실이나 일감이 잘 보이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럼, 잘 보이니까 일하지 안 보이면 일할 수 있나요?”

할머니는 아직도 시력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자녀들은 4남매를 두었는데 모두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17년 전에 사별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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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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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채 할머니는 일제 때 소학교를 나왔다고 하는데 일본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천안 출신의 할아버지를 만나 젊었을 때는 한때 부자소리 들으며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큰 음식점을 하다가 실패하여 재산을 많이 잃고, 1968년도에 발생한 대도상가 화재로 재산을 모두 날려버려 길거리 재봉틀 일로 나서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루 나오면 한 3만 원씩은 벌어 가는데 요즘은 저 옷가게들이 장사가 안 되니 나도 일감이 있어야지….”

바지 끝단 줄여주기는 3천 원, 허리부분 줄여주기는 5천 원씩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불경기가 심하여 옷가게들이 장사가 안 되는 통에 할머니의 수입도 덩달아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안 아프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데….”

어디 아픈 곳은 없냐고 물으니 어깨와 허리를 손으로 만지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울상을 짓는다. 이제 그만 쉬시면서 자식들 효도 받으실 때도 됐지 않으냐고 물어보았다.

“할 일 없이 놀면 뭐해요? 따분하기만 하지, 이렇게 일해서 조금씩이라도 벌어 쓰니까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는데….”

할머니의 말 속에 자식들의 어려운 살림살이도 짐작이 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앞으로도 계속 일할 생각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이 거북하다며 음식물을 조금 토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얼른 근처 약국으로 뛰어가 약을 사다 드렸다. 약을 받아 마시고 속이 편해졌다며 작은 도움에 고마워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 노인들의 삶이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