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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영화관 안에서는 울지 않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웠을 뿐이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불이 켜질 때까지 사람들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영화 생각을 다시 해 보았다. 맛있게 담배를 피우시던 할아버지, 느릿느릿 걸어가던 비쩍 마른 소, 사실상 영화의 내레이션을 담당한 투덜거리시던 할머니. 그런데 이 영화가 떠오를 때마다 울컥하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그저 잔잔한 영화였을 뿐인데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시골 할아버지의 소박한 아름다움
영화 속 주인공 할아버지는 여든이 다 되셨다. 다리도 불편해 힘들게 걸으신다. 출연 분량 대부분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이시다. 연세가 많으시기에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하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일을 마치고 소가 끄는 수레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귀가하는 모습도, 소 옆에 앉아 맛있게 담배를 태우시는 모습도, 거친 손에 워낭을 들고 앉아 소의 무덤을 바라보는 모습도 주변 풍경과 함께 예술 작품이었다.
내 머리 속에 이 영화가 초록빛 논의 이미지로 남아 있듯이, 농촌에 계시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내 느낌이 철없는 도시 사람이 농촌에 대해 갖는 낭만적 환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니 맘대로 포장해서 아름답게 보는 것이라고.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두 노부부의 고된 노동 장면을 보여준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안쓰러움 때문이었지만, 할머니의 푸념과 잔소리에서 느낄 수 있듯, 노동 강도는 연세 드신 두 분에게 장난이 아니다.
도시가 배경인 영화에서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면, 벌써 심신이 피폐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할아버지만큼 흙투성이가 되는 일을 하는 이가 도시에 사는 주인공이었다면, 그들의 힘들고 구질구질한 삶에 가슴이 아파 더 이상 영화를 보기가 싫어졌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그 힘든 노동을 하고 자주 앓으면서도 푸른 논만큼 평화롭게 살아가신다. 농촌이라는 자연과 가까운 환경이 할아버지에게 힘들어도 건강한 삶을 선물했기에 이리 평온한 삶을 누리시는 것이 아닐까? 철없는 도시인의 환상이었대도, 시골에서 소와 함께 소의 모습을 닮아가며 느리게 살아가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한국인에게 소는....
충(忠)이라는 말을 하면 유교 윤리라는 말이 곧장 뒤따라온다. 왕과 지배층이 근사하게 포장해 피지배층에게 강요하던 이데올로기라는 평가도 많다. 충(忠)이라는 말이 싫으면 의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러면 이번엔 조폭들의 덕목 아니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으니 좀 거시기 하긴 하다.
한국인은 유난히 충성, 혹은 의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동물을 볼 때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사는 고양이는 요물로 보면서 개는 충성을 다하기에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런 관념은 나라마다 다른 것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고양이 미라까지 만들었다.
소 역시 한국인에게 묵묵히 일하는 일꾼, 충직한 동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소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라는 영화 카피가 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소를 먹인 적도, 꼴을 베어 본 적도, 쇠죽을 쑤어본 적도 없다. 요즘에는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이런 나도 부모님과 할머니께 소와 농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암소를 데려가 쟁기질을 하면, 송아지가 따라와 천방지축 뛰놀아 골치 아프다든지, 5년 정도 부리면 그 후에는 일을 잘 못해 팔아야 한다든지, 팔려가는 소가 그 큰 눈에서 진짜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지 하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농경국가를 마감한지 100년이 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는 직접 농사를 지으셨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그래서일까? 농사와 관련된 모든 것은 고향같은, 어머니 품 같은 아련함을 준다. 비록 내 고향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도 얼룩배기 황소도 없는, 새까만 아스팔트 큰 길 양쪽에 회색빛 공그리 건물이 다닥다닥 들어선 도시지만 말이다.
그런 농업의 상징적인 존재가 소이다. 이 영화의 감독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의 곁에는 항상 소가 있었고, 그래서 소와 인간의 교감을 주제로 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Ⅰ
할아버지가 더 이상 소를 먹일 자신이 없어 우시장에 팔러가는 장면이 이 잔잔한 영화에서 가장 두근거렸던 부분이었다. "저 소 죽으면 내가 상주질 할 거야"라고 말씀하신 할아버지가 아니셨던가! 팔리면 분명 도살될텐데... 팔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영화 포스터에서 본 손에 든 워낭을 어쩔 수 없어서 소를 팔고 할아버지가 쓸쓸히 손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우시장에서 할아버지는 소 가격을 500만원이라고 부른다. 터무니없는 가격이고 할아버지도 아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500만원이 필요하거나, 억지를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의 이 오랜 동료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 눈에는 이런 모습도 보였다. 만약 믿을만한 어떤 이를 만나 그가 소가 줄을 때까지 잘 돌봐주고 먹여준다고 했다면 할아버지는 기꺼이 소를 그에게 넘기고 오지 않았을까?
다행히 할아버지는 소를 팔지 않았고, 소는 그해 겨울, 눈을 감았다. 두 노부부는 소의 무덤을 만들어 주셨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양인들이 인도로 가는 길을 찾던 시절, 일본에 찾아온 이들을 일본인들은 야만인으로 보았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쇠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따뜻하게 불 때고 살라고 저렇게 땔감을 많이 해주고 갔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쇠고기라는 단어가 우리말에 있는 것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 Ⅱ
쇠고기 이야기를 하니 또 한 장면이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읍내에 그 소가 끄는 우마차를 타고 가셨는데, 사람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집회였다. “미친 소”, “광우병” 등등의 구호가 쏟아지는 현장을 지나던 소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본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카메라 앵글을 조작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소가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관객들이 모두 웃은 장면이지만 가슴이 짠하기도 했다. 소는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비록 남의 나라 소에 관한 이야기지만, 묵묵히 일하는 소에게 미안해지는 장면이었다.
소의 수명이 평균 15년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24개월 미만의 소"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 때는 24를 숫자로만 받아들였고,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24개월은 겨우 2살이다. 일소로 부리면 영화 속 그 소처럼 묵묵히 일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고, 가만히 두면 적어도 10년은 넘게 사는데, 사람들은 소를 채 2년도 살려두지 않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된 후 두 분의 일상이 힘들어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배우로서 연기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을 보여주신 것이니 실제로 뵙고 싶다는 마음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꽃은 꺾어서 곁에 두면 곧 시들고, 멀리서 바라보면 오랜 동안 아름답다.
진정 찾아가고 싶다면 머나먼 훗날,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소를 찾아 떠나시는 날이 오면 (부디 그 날이 아주 먼 훗날이길 바란다. 그리고 내내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그 때 찾아가 절 올리고 아주 많이 감동한 팬이라고 말씀드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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