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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파트라는 삶터와 책살림

 

 옆지기와 아기와 함께 일산 나들이를 한 다음 인천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멉니다. 우리가 자가용을 몬다면 아주 가까울는지 모르나, 전철로 움직이면 고달프면서 멉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자가용을 장만할 마음이 없습니다. 자가용을 몰아 몸이 조금 홀가분하거나 느긋해진다 할지라도, 엄청난 기름값에다가 지구자원을 줄이는 일에다가 물과 바람을 한결 더럽히는 일에 우리 손길까지 보태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자가용을 몰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책 사는 데에 쓰이는 돈보다 차값에 들어가는 돈이 지나치게 크고, 다달이 기름값과 보험삯을 내자면 또 솔찮이 돈을 들여야 합니다. 이 돈을 자전거 장만하는 데에 한 번 쓴 다음부터는 오로지 책값으로 들일 수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돈 없어서 못 사 읽는 책’이란 하나도 없게 되지 않겠느냐 느낍니다. 어느덧 열여덟 해째 이런 생각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일산과 인천을 바로 잇는 전철이 없으니, 종로3가에서 갈아타야 하므로 서울로 들어섭니다. 인천과 수원을 바로 잇는 전철도 없습니다. 두 곳은 서로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지만, 두 곳 사람이 오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어쩌면, 일산에서 서울 가고, 인천에서 서울 가며, 수원에서 서울 갈 일은 있을지라도, 인천에서 일산 간다든지 수원에서 인천 간달지 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외려 가까운 두 곳을 잇는 길을 마련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나라살림으로 치면야 ‘서울로 가는 길’만 잘 뚫으면 될 텐데, 사람살림이나 마을살림으로 치면, ‘서울이 아닌 이웃마을로 가는 길’도 함께 잘 뚫어야 합니다. 고속도로나 전철로만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느긋하고 아늑한 길로 마련하면서.

 

 한참 3호선을 달려 서울로 들어서니 연신내역입니다. 더 갈까 하다가, 지하철이 지루하고 눈이 아프다고 느끼며 내리기로 합니다. 잠깐 숨을 돌린 뒤 집으로 가 볼까 생각합니다. 연산시장 앞쪽으로 나옵니다. 복닥거리는 저잣거리를 가로질러 불광2동 쪽 언덕길을 걷습니다. 북한산이 올려다보이는 옆으로는 높직한 아파트가 우줄우줄 서 있습니다. 주머니에 두 손을 쿡 찔러넣고 걸으면서, 저기 저곳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웁다고 느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유행도 아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모두들 아파트를 사거나 빌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스무 해쯤 뒤면 허물리고 없어질 저 집을 어떻게 고향으로 삼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면, 자기가 클 때쯤, 그러니까 고등학교 마칠 무렵이면 오래도록 살가이 지내던 자기 보금자리는 사라지게 됩니다. 좋든 싫든. 이리하여 아이들은 뒷날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 때, 아이들 앞에서 ‘얘야, 네 엄마 아빠는 예전에 이곳에서 살았단다’ 하고 들려줄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전에 자기가 살던 아파트만 사라질 뿐 아니라, 둘레 길마저 사라지기 일쑤이고, 아예 길그림책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다닐 길을 넓힌다며 살림집을 손쉽게 허무는 판이니, 오늘날 푸름이와 젊은이도 고향이 없지만, 먼 뒷날 푸름이와 젊은이한테는 더더욱 고향이 없을밖에 없습니다.

 

 고향이 없다고 못 살 사람은 아닐 테지만, 고향이 없다는 소리는 오래오래 머물면서 마음을 추스를 쉼터가 없다는 소리입니다. 오래오래 머물며 마음 추스를 쉼터가 없다면, 한 권 두 권 사랑하는 책을 간수하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아빠 엄마가 읽던 책을 물려주어야지’ 하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책짐을 옮길 만큼 넓은 아파트도 드물지만, 책짐을 쟁여 놓을 만큼 돈벌이를 크게 이으면서 집살림을 돌보기도 만만치 않거든요. 이러는 동안 저절로 우리 삶은 책하고 멀어집니다. 책하고 멀어지는 한편, 책에 담기는 알뜰한 빛줄기를 받아먹으며 마음을 살찌우던 흐름하고도 동떨어집니다.

 

 

 (2) ‘흘러가 버리지’ 않은 이야기

 

 불광동에 자리한 헌책방 〈작은우리〉 앞까지 닿습니다. 한겨울이지만 부지런히 걸으니 등판에 땀이 흐릅니다. 헌책방 〈작은우리〉 앞에는 붕어빵 굽는 틀과 꼬치를 익히는 큰 냄비가 놓여 있습니다. 해마다 날이 쌀쌀해지면, 〈작은우리〉 아주머니는 헌책방 앞에서 붕어빵을 굽고 꼬치를 익힙니다. 올해도 지난해와 똑같이 겨울벌이를 합니다. 불광동 분들은 ‘헌책방에 책 보러 오는 일’은 드물지만, ‘헌책방 앞 붕어빵장사 앞을 지나쳐 가는’ 일 또한 드뭅니다. 어묵 국물과 붕어빵 한두 점, 꼬치 두어 점과 어묵 국물 한 잔을 빠짐없이 즐기며 출출한 배속을 든든히 채우는 가운데, 책 하나 쥐어들면서 가벼워지는 머리속을 알뜰살뜰 가꾸는 발걸음은 꽤 뜸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이 불광동 모습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전국 어느 헌책방을 가더라도 사람들 매무새는 비슷합니다. 전국 어느 새책방을 가 보아도 사람들 매무새는 다를 바 없습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찾는 학생들 발걸음이 훨씬 큽니다. 아이들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다 주려는 학부모 발걸음이 더욱 잦습니다. 베스트셀러와 가벼운 소설과 잡지를 찾는 발걸음이 더욱 크게 울립니다.

 

 이런 흐름을 뻔히 알기에 참고서와 여느 가벼운 소설을 헌책방 한켠에 가득 갖추는 〈작은우리〉 헌책방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책 아닌 책’ 말고 ‘책이라 할 만한 책’ 또한 쏠쏠하게 갖추고 있는 〈작은우리〉입니다.

 

 시린 두 손이 책먼지로 까맣게 되도록 요 책 조 책 뒤적이면서 골마루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여성문학분과위원회 엮음-여성운동과 문학 (1)》(실천문학사,1988)라는 책이 보입니다. 무크로 나온 책인데 몇 호까지 찍었는지 궁금합니다. 책 앞머리에는 ‘여성과 계층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특집좌담이 실립니다. 특집좌담은 이무렵 이화여대 강사였던 한명숙 님(국무총리까지 했습니다)이 맡고, 이영희(현대해상화재보험 직원,25), 김문식(여성 농사군,37), 조문옥(생산직 노동자,21), 정영숙(주부,38), 전재순(광부 아내,55), 윤영자(도시빈민,42), 이렇게 여섯 사람이 번갈아 가며 자기 삶과 생각을 들려줍니다. 이밖에 《여성운동과 문학》에는 소설과 산문과 시와 논문과 노동자료 들이 실리는데, 저한테는 다른 글보다 ‘특집좌담’에 눈길이 한결 쏠립니다. 젊은 아가씨부터 나이든 아주머니까지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고달픔을 이고 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짧은 한두 토막이나마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이영희] 하지만 직장이란 곳이 여섯 시면 닥 퇴근이고 그 이후 시간은 내 것이다, 그럴 수 없잖아요. 갑자기 일 생기면 특근도 해야 되고, 또 기업주 입장에선 회사의 녹을 먹으면 회사를 위해 개인적인 일을 희생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요.

[조문옥] 그냥 그렇죠 뭐. 한손은 세트를 잡고 다른 한손은 나사못을 계속 박아야 하기 때문에 눈돌릴 새도 없고 생각할 겨를도 없어요. 까딱 잘못하면 안전사고도 많이 나거든요. 손가락 잘리는 일이 흔해요.

[전재순] (밤) 12시가 넘어 그 사람(광부)이 집에 도착해야만 ‘아, 살아왔구나’ 안심을 하게 돼요. 그렇게 가족들은 항상 불안에 살고 있지만, 남자들은 남자들 나름대로 그 위험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생각에서 일이 끝나면 대개가 집보다는 술집으로 가죠. 그곳엔 술집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김문식] 테레비 같은 걸 보면 시굴은 평화롭고 배불리 먹고 잘 산다는 식으로 방송하는데, 농사짓는 우리가 볼 때는 저기서 나오는 농촌은 우리 나라가 아닌 외국에 있는 건가 보다 하고 착각을 할 때가 많아요. 솔직히 말해 분노가 일어날 대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뉴스 같은 걸 봐도 지금 농촌에 테레비가 몇 대니, 비디오가 몇 대니 하면서 농촌이 잘살게 됐다구 떠들구 그러는데, 그런 평가 이전에 그런 걸 구입하기 위해 진 빚은 얼만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텐데.

[정영숙] 그러니까 집안일이 기계화가 됐다구 해도 일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점점 새로운 가정기구를 만들어 여자들을 더 집안일에 얽어매는 것 같아요. 그리구 남편과의 관계를 보더라도 남편이 밖에서 자기보다 더 젊고 재능있는 여자들을 상대하다가 집에만 있는 자신을 보면 너무 침체되어 있다고 생각지나 않을까 해서, 그런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주부들이 지나치게 몸치장을 한다든지, 아니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을 돌아보는 그런 일보다는 꽃꽂이나 등공예, 그러니까 생산적인 일보다는 집안을 가꾸고 치장하는 소비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윤영자] 시골 같은 데서 누가 파출부를 쓰겠읍니까. 노가다도 그렇죠. 건설붐도 일어나고, 돈도 많고, 집고 고치고 뭐 이런 데서 살아야 일감이라도 생길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리가 살 곳은 산동네일망정 서울일 수밖에 없잖아요.

 

 1988년 이야기이니 스무 해하고 한 해를 더 묵었습니다. 그렇지만 스물한 해가 지나면서 강산이 두 번 바뀐 2009년을 더듬어 볼 때, 상고를 나와 사무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가씨부터 도시빈민으로 공사판을 떠돌며 겨우 밥벌이를 하는 아주머니까지, 어느 한 사람 삶이나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온갖 물질문명이 넘칠 뿐 아니라, 인터넷보급율이 세계에서 첫손을 꼽고 손전화 없는 사람이 없다 할 만한 우리 삶터이지만, 물질문명을 다루는 우리들은, 물질문명을 누려야 한다는 우리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어떤 밥을 먹고 어떤 물과 바람을 마시면서 살고 있을까요.

 

 《스테파니 케이브/차혜경,유정미 옮김-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바람,2005)라는 책이 보입니다. 이 책이 헌책방에 다 들어오네, 하고 깜짝 놀라면서 집어듭니다. 아기를 낳고 나서 아기가 쉰 날 남짓 ‘예방접종 부작용(비형간염 주사) 때문에 황달’을 앓던 무렵, 이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 말고도 이런 책을 사서 읽은 사람이 있구나 싶어 반가운 한편, 이 책을 읽은 분은 왜 이 책을 헌책방에 내놓았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옆지기 어머님한테 선물해 드렸습니다. 한 권 다시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마침 오늘 보여 집어들어 다시 읽는데, 이런, 책 사이에 스무 쪽 남짓 없습니다. 인쇄불량 책이군요. 어쩐지. 그래서 이 책을 내놓았, 아니, 내다 버렸구나. 안 찍혀 없는 곳은 복사해서 붙이기로 하고 사들입니다. 우리가 사들여서 없는 쪽을 붙이지 않고서는 이 책을 사들일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수은, 알루미늄, 페놀, 포르말린 등의 독성 화학물질들이 ‘보기도 아까운’ 아이들에게 투여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동액 원료인 에틸렌글리콜도 들어 있었습니다. 몇몇 현명한 엄마들을 제외하고, 그런 독성 화학물질들이 내 아이가 맞는 예방주사 안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이제 우리가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제약회사가 수은, 포르말린, 페놀을 백신 속에 집어넣게 해서는 안 됩니다. 치메로살(수은)이 아무 문제없다고 외치던 제약회사가 엄마들이 수은 없는 백신을 찾자, 수은 없는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포르말린 없는 백신을 찾으면 그들이 포르말린 없는 백신을 만들 겁니다 ..  (옮긴이 말)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를 우리 말로 옮긴 분은 대학교에서 간호학과를 마친 뒤 대학병원과 보건소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아이가 ‘예방접종 부작용’을 앓아 몹시 애먹었습니다. 당신 스스로 간호사이면서 ‘예방접종에 부작용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간호사가 되기까지 익힌 의학지식뿐 아니라, 당신이 몸담은 병원 의사들 의학지식으로는 도무지 풀 길이 없는 이 알쏭달쏭한 일들, 수수께끼 같은 아픔을 밝혀내고 싶어서 부지런히 애썼고, 이런 애씀은 ‘안예모(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로 발돋움했으며, 또 이와 같은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젠 됐다”고 안심하던 1980년대 초, 의사와 부모들은 예방접종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방접종의 종류와 횟수가 늘어날수록 학습장애, 주의력결핍장애, 소아당뇨, 류머티즘성 관절염, 유아돌연사증후군, 소아천식과 같은 질병이 갑작스럽게 증가한다는 것도 알았다 … 요즘 자폐증은 아이들에게 암보다 더 흔한 질병이다 … 부모들이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예방접종은 꼭 해야 합니다”라는 말뿐이다. 자폐증, 경련, 근육질환, 뇌염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 질문하면 이런 대답을 들어야 한다. “예방접종이 있는 시대에 태어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하세요.” ..  (19∼22쪽)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라는 책을 보면, 추천글을 ‘수수팥떡’ 대표인 최민희 님이 적어 줍니다. 최민희 님은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라는 책을 쓰면서 ‘시민운동가’로보다 훨씬 큰 이름을 얻은 분입니다. 그런데 최민희 님은 이 책 원고를 읽고 추천글까지 쓰면서도 당신 아이한테는 예방접종을 맞힙니다. 당신 아이가 ‘예방접종 부작용’을 앓아 골머리를 썩였음에도 ‘아직 안전하지 못한 예방접종’을 그대로 맞힌다고 밝힙니다.

 

 참 대단하구나 싶으면서, 우리 둘레에서 만나는 이웃들 생각하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 이웃들하고 ‘예방접종 부작용과 예방접종 주사에 들어가는 성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먹는 밥과 물 모두에 중금속이 들어가는데 예방주사라 해서 다르겠느냐고 말씀하기 일쑤입니다. 이 땅에 더럽지 않은 삶터가 어디 있느냐면서, 예방접종 주사도 똑같다고 말씀합니다. 어차피 더러운 공기를 마시는데, 주사바늘 꽂아 백신을 몸속에 넣는 일이 무어 큰일이느냐고, 오히려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는 백신 없이 몸이 튼튼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겠지요. 그리하여 독성 화학첨가물이 우리 몸에 나쁘다는 이야기가 수없이 되풀이되어도 식품회사에서는 화학첨가물로 먹을거리를 만들고, 수은을 넣어 깡통을 만들고(통조림에는 모두 수은이 들어갑니다. 참치 통조림이든 꽁치 통조림이든 복숭아 통조림이든. 다만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고 하는 기준치를 넘지 않게 들어간다’고 할 뿐인데, 수은은 몸밖으로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통조림을 먹으면 먹을수록 몸속에는 수은이 쌓이고 쌓여서 나중에 큰병을 불러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런 먹을거리를 거리낌없이 사먹을 테지요. 구태여 유기농 곡식을 찾아 먹을 까닭이 없고, 우리 스스로 농촌살이로 돌아가 제 밥을 제 손으로 일구어서 먹을 마음을 품지 않을 테지요. 농약과 비료 안 쓰고 농사지은 사람들 땀방울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데다가, 도시에서 바지런히 땀흘리는 이웃 노동자 삶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할 테지요.

 

 

 《최일도-이 밥 먹고 밥이 되어》(울림,2000)라는 책이 보입니다. 예전부터 익히 보았지만 따로 꺼내들지 않았는데, 오늘은 구경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살짝 꺼내어 펼칩니다. 아무 데나 쭉 펼쳐서 눈에 뜨이는 대목부터 읽어 보기로 합니다.

 

.. 넥타이로 겉모양의 품위를 유지하기보다, 노동으로 가난한 형제를 섬기는 진정한 품위를 지니고 살고픈 마음입니다 ..  (53쪽)

 

 ‘밥퍼 목사’ 최일도 님은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글로 밝힙니다. 잘한 일도 밝히고 못한 일도 밝힙니다. 잘난 모습과 못난 모습이 고스란히 비추어집니다. 어쩌면, 못난 모습을 꺼리지 않고 아프게 뉘우치는 대목이 곳곳에 드러나기에, 당신 스스로 더욱 꿋꿋하게 한길을 걷고, 당신 뒤에서 새길을 여는 사람들한테 좋은 길잡이가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 사랑의 실천엔 망설임이 없고, 현장엔 항상 빨리 투입되는 사람을 가리켜 급진주의자라면 그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자기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진짜 복음주의는 복음대로 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삶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대로 사는 삶이란 이런 의미에서 급진적이란 말입니다 ..  (60쪽)

 

 우리 삶에 무슨 ‘주의’란 없습니다. 제가 우리 말 가다듬는 일을 한다고 ‘언어순결주의’가 될 턱 없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자주 즐긴다고 ‘헌책방주의’가 될 수 없습니다. 민주를 바라니 ‘민주주의’라 이름붙일는지 모릅니다만, 민주를 바라고 평화를 바라고 자연 삶터를 사랑한다고 ‘민주주의자-평화주의자-생태주의자’ 같은 이름을 얻을 수 없고, 또 얻을 일이 없습니다. 민주를 사랑하면 민주만이 아닌 평화도 사랑하게 되고, 평화를 사랑하면 평화를 넘어 생태를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말을 사랑하면 우리 삶터를 사랑하게 되고, 우리 삶터를 사랑하면서 우리 문화를 사랑합니다. 우리 문화를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하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역사)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어지지 않은 갈래란 없고, 엮이지 않는 고리란 없습니다. 한 사람은 ‘무슨 주의자’로 못박을 수 없는 가운데, 누군가 스스로를 ‘무슨 주의자’라고 내세운다고 한다면, 이이는 그 ‘무슨 주의’조차 제대로 모르는 한편, 참다이 펼쳐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3) “배부르면 좋은 글이 안 나와요”

 

 《한국기독교 백주년기념사업회 여성분과위원회 엮음-여성!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노래할지어다 : 한국기독교여성백년사》(대한기독교출판사,1985)라고 하는 6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봅니다. 1985년 책임에도 책값이 8000원입니다. 그때로서 어마어마하게 비싼 책입니다. 1985년에 어른 버스삯이 90원쯤 했다고 떠오르는데, 요즈음 물건값이 그때 뒤로 열 곱이 조금 넘게 올랐으니, 요사이로 치면 자그마치 8만 원이 넘어가는 책값입니다.

 

 한국기독교에서 여성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가를 돌아보도록 하는 소담스러운 책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책을 이렇게 만들어내면 어떤 사람이 얼마나 읽을 수 있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아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무렵 1985년에 ‘이만한 책을 읽을 여성’이 적었으리라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비싸게 값을 붙일밖에 없었는지 모르며, 따로 도움받은 곳이 없어 책값이나마 세게 붙일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앞서 100년 동안 지속된 천주교 박해의 역사적 경험을 살려, 조심스럽게 선교를 시작하였다. 먼저 지배권력과의 접촉에서 호의를 샀다 … 예수의 복음과 함께 서양의 문화를 가지고 온 선교사들은 가난한 한국땅에서 그들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기독교의 물질적 축적을 구체적으로 과시할 수 있었다 … 선교사들은 낡았다는 구실을 붙여 기가 막히게 싼값으로 그 집들을 사들여 거의 돈을 안 들이고 수리를 하고는 내부를 약간 유럽식으로 꾸며 놓았다 … 선교사들은 이조사회에서 부귀를 누린 소수 권문세가의 양반집을 구입해 서구식으로 약간 개조하여 안락한 생활환경을 마련하였다. 순박하고 가난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전하는 기독교가 바로 이러한 물질적 혜택과 개화된 문명을 약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스크랜톤 부인은 여아교육도 어디까지나 복음전도의 목적을 위한 방법인 데서 교회 설립의 기회를 노렸다 … 선교사들은 한국 여성들의 “불쌍하고 가난한 처지”를 유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잡귀와 우상을 섬기며 미신에 얽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의 상태에서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온 가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 국가의 실권을 찾고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독립국이 되기 위하여 여성들은 남성과 같이 교육을 받고 구습을 타파하며 외국문물을 본받아 생활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  (17∼29쪽)

 

 한 줄 두 줄 한 쪽 두 쪽 읽으면서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렇게 우리 삶터로 스며들었기에 오늘날과 같이 ‘우람하고 어마어마한 새 건물 짓기’로 나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참 믿음이 아닌 제국주의 문물과 식민지 성격으로 들어왔으니, 또한 처음부터 권력과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으니, 또한 ‘없어도 모자람을 안 느끼면서 이웃사랑을 나누던 사람’들한테 ‘기독교를 믿으면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집식구들도 모든 일이 잘 풀리리라’는,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한국땅 토박이를 ‘미신 잡귀에서 떨구어지도’록 한다면서, 스스로 ‘서양 미신 잡귀’에 얽매이도록 해 버렸구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오셨는데 책만 보지 말고 얘기도 좀 해요”하면서, 〈작은우리〉 아저씨가 틈틈이 말문을 엽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어른이 아이들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교육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작은우리〉 아저씨는, “저도 걔(아이) 앞에서만큼은 책을 읽어요. 눈 감고 다리 꼬고 있으면 (아이가 제 하는 모습을) 고대로 따라해요. 턱 받치고 있으면 그대로 따라하고. 그래서 하다못해 (집에서 아이 앞에 있을 때) 신문이라도 읽는데, 내 책이라도 봐야겠지만, 소설책이라도 보면, (아이도 아빠한테 배워서) 학교에 책이 많으니까, 걔도 자기 책을 읽어요”하고 말씀합니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거친 말을 주고받아 버릇하면, 아이 또한 거친 말을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익힙니다. 엄마 아빠가 어떤 밥을 지어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아이 밥버릇이 달라집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둘이서 살림하랴 도서관 꾸리랴 뭐하랴 아기 보랴 힘겨워서 집안을 제대로 못 치우고 어질러 놓고 있는데, 아이한테는 이처럼 어질러진 모습이 익숙하게 되면, 뒷날 이부자리 개기도 제대로 못하게 되지 않을는지 걱정입니다. 몸이 많이 고되어도 저부터 집치우기를 ‘아이가 깨어서 말똥말똥 아빠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해야겠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좋은 게 들어와요.” 헌책방 앞 붕어빵 몇 점을 사들고 안으로 들어와서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책이 좋아 헌책방을 열게 되었고(처음에는 다른 일을 하실 생각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날까지 헌책방 살림을 꾸리고 부지런히 책과 만나고 사귀는 일을 이으면서, 〈작은우리〉 아저씨나 아주머니나 ‘물건으로 책을 다루려는 사람’보다 ‘마음으로 책을 만나려는 사람’을 기다리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배부르면 좋은 글이 안 나와요.” 헌책방 아저씨는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가 아닌, 당신 몸으로 겪은 삶으로 책손한테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렇지요. 저도 겨울이면 글을 쓰면서 손이 얼어붙어 엉덩이 밑에 깔고 녹이면서 눈물 찔끔찔끔 흘리는데, 오히려 이렇게 추위에 떨며 글을 쓰니, 지난날 우리 어머니나 어머니한테 어머니가 되는 분이나 또 그 위 어머니가 되는 분들이 한겨울에 얼음 깨고 이불 빨래 했던 일을 생각하게 되면서, 더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그래도, 나중에 배불리 살게 될 때 이런 마음을 안 잊을 수 있으면 될 텐데, 모르겠어요. 배부르면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헌책방 아저씨 말 한 마디에 맞장구 한 마디를 하고, 책손 맞장구 한 마디에 헌책방 아저씨는 한 마디 덧붙이면서 시간은 흐르고 흐릅니다. 어느덧 해가 기울 무렵입니다. 너무 늑장 부리면 집으로 돌아갈 때 힘들겠다고 생각하면서, 책값을 셈하고 가방에 책을 차곡차곡 쟁여 넣으면서 돌아갈 길을 재촉합니다.

 

 

 책방으로 오던 길을 되짚어 복닥거리는 저잣거리를 겨우 헤쳐나갑니다. 저잣거리 장사꾼들은 장사하는 데에도 힘들어서 책 볼 겨를을 못 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 땀흘려 일하는 삶이 바로 책읽기하고 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로 종이장을 펼쳐야만 책이 아니라 땀흘리는 삶이 바로 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전철간에서 옆사람을 밀치는 사람들도 이 매무새가 그들한테 고스란히 책읽기일까 궁금합니다. 탈 사람이 안 타고 내릴 사람이 안 내렸어도 밀치고 당기면서 먼저 타고내리려는 저 숱한 사람들 매무새 또한 이들한테 그예 책읽기일까 궁금합니다. 문간 귀퉁이에 착 달라붙어, 오늘 고른 책 하나를 꺼내어 고개를 처박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불광동 〈작은우리〉 / 02) 383-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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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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