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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하남의 화장대이자 텔레비전 선반. 아기자기한 분홍색, 파란색 키티인형이 상큼함(?)을 더해준다.
 반지하남의 화장대이자 텔레비전 선반. 아기자기한 분홍색, 파란색 키티인형이 상큼함(?)을 더해준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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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방을 안 치웠는데, 괜찮죠? 반지하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야죠!"

지난 1일, 거대한 몸짓의 반지하남이 하얀 '쓰레빠'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쫄래쫄래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 함께 <오마이뉴스>에 자취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반지하남과 나는 급기야 "서로의 집을 방문해야만 한다"고 의기투합하였기 때문에 난생 처음 그가 사는 성신여대 앞까지 오고야 말았다.

처음 그의 반지하에 가기로 했을 때, 걱정이 '텍사스 소떼'처럼 밀려왔다. 우리들은 단지 '글'을 읽으면서 서로의 집에 대한 상상을 펼쳤을 뿐 방문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지하남이 사는 성신여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꽃미녀'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상큼한' 분위기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아기자기한 먹을거리들이 내가 사는 노량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 반지하남이 여대 근처에 사는 '산적'으로 오해받으면서도 여기에 사는 이유가 있었구나! 회사랑 그렇게 멀면서도 아직도 이사 가지 않고 살아가는 그의 속내가 단박에 이해되었다. 기대치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기대는 0.5초 만에 조금씩 사그라졌다.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걸어가니 주위의 사물들은 화려한 '다운타운'에서 '회색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골목을 꺾자마자 마음의 준비 없이 덜컥 찾아온 문! '꿀꺽', 굽이굽이 내려가는 계단을 들어서 방문을 열자, 그 실체가 드러났다.

[장면 1. 혼연일체] 방이 좁다고? 그럼 나처럼 해봐!

 일명 '바지 커튼' 공간도 줄이고, 커튼(?) 역할도 한다지만, 글...쎄?
 일명 '바지 커튼' 공간도 줄이고, 커튼(?) 역할도 한다지만, 글...쎄?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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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대 겸 세면대. 놀라울 따름.
 싱크대 겸 세면대. 놀라울 따름.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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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반지하의 첫 번째 특징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집안의 모든 사물은 실용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텔레비전이 놓여있는 선반에는 화장품, 술 등이 진열되어 있어서 화장대는 곧 텔레비전 선반이요, 술을 마시는 바를 겸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밥솥까지 놓여 있었으니, 그 기능은 '무한 확장'됐다.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햇볕이 들어와야 할 창문에 느닷없이 걸려 있는 바지들이 커튼을 대신하고 있었다. 반지하남은 나의 놀란 마음을 눈치 챘는지, 넌지시 자신의 방 인테리어 중 야심작이라며 호탕하게 털어놨다.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귀엽고 나름 합리적이다'는 생각까지 드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싱크대! 언제였던가, 기사에서 읽었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조금 충격적이었다.

싱크대는 그릇을 씻는 본연의 임무를 초월해서 '다각화'를 꿈꾸고 있었다. 가지런히 놓인 샴푸와 칫솔들을 통해 그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근데 싱크대에 머리를 밀어 넣기 힘들지 않을까?

[장면 2. 솜씨 뽐내기] 손님이 몰려온다고? 그럼 카레가 '짱'이야

 맛있는 밥상. 카레와 다시마, 스팸이 보인다. 사실, 카레를 담은 그릇이 탐났다. 실용도 짱!
 맛있는 밥상. 카레와 다시마, 스팸이 보인다. 사실, 카레를 담은 그릇이 탐났다. 실용도 짱!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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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을 때, 부엌에서는 '나름' 또각또각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았지만, 피차 서로 요리를 못하는 판에, 가만히 있는데 도와주는 거다 싶어서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조금 있자 반지하남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노오랗고' 걸쭉한 카레! 라면 다음으로 자취생들이 즐겨하는 바로 그 음식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3분 카레가 아닌, 손으로 만든 카레라 깊은 맛이 있었고, 나는 자취를 시작한 이래 카레를 단 한 번도 만들어먹지 않은 탓에 요리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에 반지하남의 어머니께서 보내주셨다는 다시마쌈을 곁들이니 밥 한 공기가 뚝딱이었다. 반지하남도 자신의 요리가 나름 흐뭇했던지, 두어 번이나 카레를 더 떠서 먹는 '왕성한 식욕'을 선보였다. 밥을 다 먹고 반지하남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원하고 그릇을 씻었다. 어리바리한 나는 역시나 설거지가 끝나자 티셔츠 아래가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장면3. 환상의 구도] 반쯤 누워 컴퓨터 하면서, 동시에 TV를 본다?

 이렇게 편안한 작업실(?) 봤나? 컴퓨터를 보면서 동시에 텔레비전도 볼 수 있는 시스템.
 이렇게 편안한 작업실(?) 봤나? 컴퓨터를 보면서 동시에 텔레비전도 볼 수 있는 시스템.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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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밝혀낸 반지하의 비밀은 구도에 있었다.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직선 구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부러움을 일으켰다.

TV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 그 뒤에 바짝 자리 경쟁을 하고 있는 침대를 놓음으로써, 등을 침대 가장자리에 기대고 TV 시청과 컴퓨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한 번 실험삼아 그 자리에 앉아보았더니, 이건 뭐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다만, 의지가 아주 굳건해야만, 잠-컴퓨터-텔레비전의 '마의 삼각지'을 벗어날 수 있을 듯 했다.

[장면 4. 깍두기] 두 가지 덧붙이는 이야기

 책 제목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독서 취향이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연애와 펀드!
 책 제목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점이 발견된다. 독서 취향이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연애와 펀드!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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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커피 이야기다. 취재를 끝내고, 그냥 나가기도 뭐하고 해서 커피나 한 잔 달라고 했더니 이상하게도 물 끓이는 소리 대신에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그의 기발한 커피 메이커는 바로 전자레인지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물 끓일 필요도 없이 1분이면 해결되는 아이디어 상품이라 좀 부럽기까지 했다(나는 전자레인지가 없다).

두 번째 이야기는 텔레비전 옆에 쌓여있는 책이다. 나는 우연히 책 제목들을 보곤 폭소를 터트렸다. 맛보기로 맨 위에 쌓여있는 책 제목은 <시작되는 연인을 위한 키스를 부르는 여행지>! 뭔가 슬프지 않나.

반지하의 모든 비밀을 캐내기 위해서 잠입한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각자 생긴 모습이 다른 만큼, 사는 모습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하늘과 가까운 옥탑에 살고 있고, 그는 땅에 가까운 반지하에 살고 있지만, 제3자가 보기엔 비슷한 느낌의 '제3의 주거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 열심히' 아옹다옹 대며 개성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반지하면 어떻고 옥탑방이면 어때? 재미있게 살면 그만이지! 그날 밤에 쓴 일기에는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글자 뒤에 느낌표가 두 개나 붙었다.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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