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 건물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 건물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간절한 소망이 꿈을 이루게 한다"는 피그말리온효과 덕분이었을까? 이민역사 40년을 헤아리는 호주 한인동포사회에 마침내 번듯한 한글전용 도서관이 문을 열게 됐다. 한인동포들의 오랜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비록 호주교회의 부속건물을 세로 얻은 공간이지만 머지않아 '한글사랑 도서관(Han Geul Library)'이라는 현판을 내걸 예정이다. 또한 한글을 배우는 한인동포 어린이들은 물론, 한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현지인들에게도 개방된다고 한다.

그런데 시드니에 한글전용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꿈은 한인동포들에게만 무성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4년 전부터 호주와 직접 인연을 맺기 시작한 영화배우 문근영씨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그냥 꿈만 꾼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한 준비도 함께 했다.

너무나 예쁜 문근영 선생님
 너무나 예쁜 문근영 선생님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영화배우 문근영의 '아름다운 꿈'

문근영씨는 도서관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면, 무엇보다 그 안의 책꽂이를 채울 한글 책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4년 동안 신간 우량도서들을 직접 구입해서 우편으로 보내왔다. 책값도 많이 들었지만 우송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책들은 그동안 시드니 전역의 수십 개 한글학교 학생들에게 '이동도서관' 방식으로 대여됐다. 그러나 개인주택 차고를 활용하는 이동도서관 서고(書庫)는 한계가 있었다. 문근영씨가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책들이 넘치는 상황이 된 것.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문근영씨는 시드니에 거주하는 외삼촌 류식씨(45)를 통해서 기부금을 보내왔다. 지난해 11월 5일, 도서관 개설 비용으로 1억 원을 기탁한 것. 그 기부금이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의 종자돈이 됐다.

'아름다운 꿈'은 빠르게 전염되는 것일까? 이번엔 한인동포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도서관을 위한 공간이 확보되자 대학교수와 4살짜리 유치원생이 모여서 청소를 했고, 건축가와 실내장식가 등이 주말을 이용해서 책장을 짜기 시작했다.

이렇듯 '한글사랑 도서관'의 준비 작업은 모두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일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지만 한글사랑의 지극한 마음들이 켜켜이 쌓이는 중이다. 그 현장을 취재하고 몇몇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오늘 청소는 100점"
 "오늘 청소는 100점"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건물 청소부터 깨끗하게 하고

지난 1월 10일 오전, 시드니 북부지역에 소재하는 한 건물에서 10여 명의 한국인들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대학교수도 있고, 어린 학생과 꼬마도 보였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신기현 교수(NSW대학교 교수), 신정희 선생(시드니 이동도서관 관장), 안인승씨(건축가), 심재호씨(인테리어 사업가), 배우 문근영씨의 외삼촌 류식씨 부부와 2녀1남, 문근영씨의 하나뿐인 동생 지영양(유학생).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4살짜리 유치원생 류수민군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어 힘드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주 덥잖아요. 그리고 청소도 너무 힘들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호주는 여름 한복판으로 섭씨 30-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그 옆을 보니 문근영씨의 동생 지영양(16. 10학년)이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두 명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둘과의 일문일답이다.

형이랑 누나는 책만 읽고...
 형이랑 누나는 책만 읽고...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문근영 동생 지영양과 조카 수민군 인터뷰

- 어린 동생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책이 읽히는가?
(지영) "기자님이 늦게 오셔서 그렇지 저도 조금 전까지 마루의 모래를 치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수민이는 바쁘게 왔다갔다만 했지 별로 도움이 안 돼요. 방해만 되고..."(웃음)

(수민) "아녜요. 청소는 내가 다 했는데... "

- 그런데 왜 이렇게 더운 날, 그것도 주말에 청소를 하고 있어요?
(지영) "3월 초에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이 오픈하잖아요. 언니가 오랫동안 소망했던 도서관인데 동생인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와~, 그런데 청소 참 힘드네요."

- 지금 호주 고등학교가 방학인데 왜 한국에 가지 않았나요?
"사실은 근영 언니가 시드니에 오기로 했어요. 그런데 언니가 '2008년 SBS-TV 연기대상'을 받고 하면서 바빠졌는지 펑크를 냈어요. 그래서 지금 엄청 섭섭해요. 만나서 해줄 얘기가 많이 있는데..."

- 수민이는 오늘 왜 힘들게 청소하는지 아나요? 여기에 도서관이 생기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재밌잖아요. 엄마 아빠랑, 그리고 누나들도 하잖아요. 그런데 도서관이 뭐예요?"

시드니에서 '1일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문근영.
 시드니에서 '1일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문근영.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동생 만나러 와서 '한글홍보대사'

문근영씨는 지난 2006년 8월, 호주에 유학하고 있는 하나뿐인 동생 지영을 만나기 위해서 시드니를 방문했다. 그런데 시드니에는 문근영의 동생만 있는 게 아니라 막내 외삼촌 류식씨와 동생들이 살고 있어서 연고가 겹치는 곳이다.

근영씨는 그 당시, 시드니 방문을 이용해서 '한글홍보대사'와 린필드 한국학교의 1일 교사를 맡았다. 호주 태생의 외사촌 동생들이 그 학교에서 한국말과 한글을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고마워서 보답하고 싶었던 것.

1997년에 호주로 이민 온 류식씨는 호주에서 세 자녀를 낳았다. 바로 그 세 아이들이 2005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외종사촌 언니이자 '유명 짜-' 한 영화배우 문근영과 첫 대면을 한 것. 그런데 막상 놀란 건 문근영이었다.

호주에서 나고 자란 동생들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된 영문이냐?"고 외삼촌에게 물었더니 "얘들이 시드니에 있는 한국학교에 다니면서 한국말과 한글을 배운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근영은 그 말을 듣는 순간, 호주를 방문하면 학교 측에 감사의 뜻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2006년 8월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그 학교부터 찾았다. 그런데 친동생과 외종사촌 동생들이 공부하는 린필드 한국학교의 형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했다.

동생과 함께 지내면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던 문근영씨는 당초의 생각을 바꾸었다. 한국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 '한국학교 돕기 자선모금 사인회'와 1일 교사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 그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문근영 선생님과 함께 춤을...
 문근영 선생님과 함께 춤을...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문근영씨와의 이메일 인터뷰

기자는 오래 전에 한글전용 도서관과 관련하여 문근영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근영씨는 기자가 이메일로 보낸 8개의 질문에 대해 꼼꼼한 답변을 보내왔다. 그중에서 '한글사랑 도서관'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했다.

- 린필드 한국학교 1일 교사로 맺은 인연이 시드니 소재 한글전용 도서관 건립 후원으로 이어졌는데 소감이 어떤지요?
"제가 린필드 한국학교에서 만났던 똘망똘망한 눈빛의 친구들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꼭 도서관이 건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몇 년 동안 꾸준하게 한글 책을 호주로 보내면서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운송비용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항공사나 그 외의 기관들의 도움이 없어서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한 건데... 조금은 섭섭한 생각도 들었지만요. 시작이란 것이 늘 쉽지만은 않잖습니까. 이제 시작 테이프는 끊었으니, 조금은 쉬워지겠죠? 히^^"

(도서 운송 경비가 도서구입비의 20%를 차지하고 있어, 책을 구입해 보내는 입장에서 보면 그 운송비조차도 도서구입비로 할애하고 싶었던 것).

- 해외에서 운영될 도서관 건립을 후원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혹시 이런 일은 국가나 동포사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물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시작이 어려워 모두들 망설였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다 보니 제가 뭐 굉장한 일을 한 것처럼 되어버렸는데요^^;;; 그렇지만, 이제는 시작을 보셨으니! 그동안 망설였던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실 거라고 간절히 믿고요."

- 해외동포 1.5세대와 2세대의 한국어 및 한글 교육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요?
"동생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해외동포들은 두 문화를 배울 수 있고 익숙해질 수 있어서 큰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에만 몰두하다 보면 다른 하나를 지워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결국은 하나의 문화만이 남겠죠? 제 생각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두 문화 모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 기회를 포기하다니요. 조금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문근영씨 외삼촌 가족과 동생 지영도 1일 청소 봉사 활동에 나섰다.
 문근영씨 외삼촌 가족과 동생 지영도 1일 청소 봉사 활동에 나섰다.
ⓒ 윤여문

관련사진보기


도서관 개관을 위해 힘써온 사람들

'한글사랑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NSW대학교 신기현 교수다. 그는 20년 가까이 호주국립대학교와 NSW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린필드 한국학교 교장까지 맡고 있어 동포사회의 신망이 아주 두텁다.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이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장손자이면서, 광복군 사령부 신하균 선생의 장남인 신기현 교수는 1월 10일 청소복 차림으로 나와 솔선수범을 보였다.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의 실질적인 리더다.

아무런 보수도 없이 오랫동안 자신의 가정집 차고를 이용해서 '한글도서 이동도서관'을 운영해온 신정희 선생(전직 교사) 또한 '한글사랑 도서관'을 위해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시드니 '한글사랑 도서관' 관장 내정자.

문근영씨의 막내 외삼촌 류식씨(나무 컨설팅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는 '한글사랑 도서관'과 관련된 일이라면 만사를 접어둘 정도로 뜨거운 열정을 보인다. 1월 10일 도서관 건물 대청소에도 가족 전원을 대동하고 나왔다.

류식씨는 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밤잠을 설칠 정도로 들떠 있지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글사랑 도서관' 개관을 한 달 남짓 앞둔 지금까지 시드니총영사관에서 강 건너 불 보듯 하기 때문이다.

그는 1월 24일 개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총영사배 골프대회 등의 수많은 행사를 개최하고 후원하는 총영사관이 도서관 건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아무리 민간 주도의 도서관이라고 하지만 이럴 수는 없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양주협의회(회장 서유석)에서 최근 '한글사랑 도서관' 후원금으로 3,500 호주달러를 기탁했다. 한인동포사회에서 기탁한 첫번째 기부금이다.


태그:#문근영, #호주, #시드니, #도서관, #한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