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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신앙 양심에 따라 군대 가는 걸 거부했던 여호와의 증인 여러 명이 군대에서 잔인한 폭행과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다는 사실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서 최근 밝혀졌다. 이들의 타살이나 자살은 이미 여러 글들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났지만, 국가 기관에 의해서 처음 공식화한 셈이다.

1월 16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고(故) 김종식씨는 1975년 훈련소에 들어갔으나 집총을 거부했다. 그는 곡괭이 자루로 1시간 반 동안 수십 대 맞았고, 추운 겨울에 팬티 바람으로 연병장 점호대에 수시로 섰다. 결국 훈련소 입소 20일 만에 죽었다.

1981년 숨진 고(故) 김선태씨는 훈련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드럼통 안에 갇힌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구르는 가혹 행위를 몇 시간 동안 당했다. "훈련을 받겠다"고 항복 선언을 하고나서야 가혹 행위는 멈췄다. 종교적 신념을 포기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그는 몇 시간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부대 근방 배밭에 들어가 목을 맸다.

경북대 법학과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에도 병역을 거부했다가 모진 고문과 가혹 행위를 못 견디고 처참하게 죽은 여호와의 증인 얘기가 자세히 나온다.
 김두식 교수가 쓴 <평화의 얼굴>에도 병역을 거부했다가 모진 고문과 가혹 행위를 못 견디고 처참하게 죽은 여호와의 증인 얘기가 자세히 나온다.
ⓒ 도서출판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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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김창식씨는 1974년 병역을 거부한 죄로 8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다. 출소하는 바로 그 길로 육군훈련소에 끌려갔다. 훈련소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무자비한 구타였다. 헌병대에 끌려가서는 석 달 동안 엎드려뻗쳐, 원산폭격 등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 곤봉으로 손바닥과 발바닥, 가슴을 각각 50대씩 총 150대를 맞은 날도 있었다. 네 시간 연속 구타를 당하기도 했고, 멍석말이도 당했다.

헌병대에서 90일을 보낸 다음 끌려간 곳은 악명 높은 남한산성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성경에는 지옥이 끝인데,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지옥 다음 코스가 남아 있었다. 김씨는 일반 교도소로 이감되어 수감 생활을 했다. 다행히 그는 목숨을 잃지 않고 출소했다.

박정희 정부는 '입영률 100퍼센트 달성'이라는 목표 아래 1974년부터 병역 기피자들을 샅샅이 뒤져서 강제로 입대시켰다. 병역 거부율이 가장 높았던 여호와의 증인들은 집중 생포 대상이었다.

군대에 끌려가서 그런 식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은 이번에 밝혀진 것만 5명이다. 지금은 잔혹 행위가 많이 줄었겠지만, 그동안 1만 3000명의 전과자를 배출했고, 해마다 6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지금도 감옥에서 소중한 세월을 낭비하고 있다.

자기 양심의 거울을 들여다보니 남을 죽이는 일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수 없고, 따라서 군대를 가거나 총을 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몸소 실천한 죄의 결과는 이처럼 끔찍하다.

국방부의 대체 복무제 약속 "미안합니다, 뻥이었습니다"

국방부가 올해부터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는 작년 성탄절 전날 돌연 '미안합니다, 지금까지 한 말은 전부 뻥이었습니다'하고 발표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뻥하게' 새해를 맞았다.

2001년 <한겨레21>의 보도와 2002년 김두식 교수가 쓴 책 <칼을 쳐서 보습을>을 통해 발동이 걸린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문제는, 70년이라는 세월 동안 감춰져 있던 비밀들을 하나둘씩 세상에 끄집어내면서 빠르게 사회적 의제가 되었고, 급기야 대체 복무제 도입 일보 직전까지 숨차게 달려왔다. 그렇게 잘 달리던 차에서 갑자기 '뻥'하고 바퀴 터지는 소리가 난 것이다.

온전한 뇌를 가진 사람치고 국방부의 발표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이는 없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에 쓴 글에 의하면, 국방부가 용역해서 얻은 연구 보고서의 전체 결론은 '대체 복무제 도입'이었다. 국방부는 그중에서 여론조사 결과만 골라내서 그것에 근거해 결론을 뒤집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언제부터 국민 여론을 이토록 떠받들었나 싶다.

국방부든 누구든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정반대로 처신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변신 예비범'은 도처에 널려 있다. 따라서 대체 복무제 도입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 문제는 '종교 확신범'들이다.

"아픈 상처에 소금 뿌리고, 맛있게 지은 밥에 가래침 뱉는" 역할은 보수 기독교를 못 따라간다.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는 "국가 제도를 거부하고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된 교리를 신봉하는 이단 종파의 대체 복무 주장을 합법화할 경우 국민 정신 건강에 심각한 병리 현상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걱정하면서, 국방부의 대체 복무제 유보 선언을 환영했다. '기독교+군대+선교'가 삼위일체를 이루니 오죽할까. 한국기독교군선교연합회와 유유상종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언론회는 오래 전부터 대체 복무제를 반대해왔다.

이에 반해 '기독교사회책임'은 "여호와의 증인이 지난 수십 년간 종교적인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고 그 대가로 수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옳다"면서 국방부의 입장에 반대했다.

이단이 갈 곳은 '군대' '감옥' '지옥'뿐... 군 면제는 '신의 손자' 몫

며칠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소속 목사들이 서울역 지하도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에게 '형제'라고 부르면서 밥을 줬다. 이들에게 노숙자는 필요에 따라 '형제'가 될 수도 있지만 이단은 어림없다.

살아서는 '군대' 아니면 '감옥', 죽어서는 '지옥'에 가야 할 존재들이 이단이다. 누구 좋으라고 군대를 빼준다는 말인가. 군 면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목사의 아들들처럼 '신의 손자'급 아니면 언감생심이다.

이단 중에는 교주가 신도의 재산을 모조리 착취하고,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하고, 종말을 예언하면서 떼로 자살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집단이 있다. 이와 달리 정통 교리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다가 이단이 된 집단도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가. 교리적으로 정통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이단으로 찍힐 만도 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어떤 해악을 끼쳤는가 생각해보면 소위 '정통' 기독교가 큰소리칠 처지가 못 된다.

백번 양보해서 이단에게 군 면제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건 더러운 구더기 때려잡겠다고 자기 어머니가 정성껏 담근 장을 바닥에다 쏟아버리는 발김쟁이나 할 짓이다. 이단의 병역 면제가 싫다고 해서 그 뿌리인 기독교의 소중한 평화주의 역사와 전통을 걸레처럼 내다버릴 수는 없다.

 존 스토트 목사나 대천덕 신부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두 사람의 병역 거부 전력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왼쪽은 대천덕 신부, 오른쪽은 존 스토트 목사.
 존 스토트 목사나 대천덕 신부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두 사람의 병역 거부 전력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왼쪽은 대천덕 신부, 오른쪽은 존 스토트 목사.
ⓒ 예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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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 목사와 대천덕 신부의 병역 거부

<평화의 얼굴>(김두식 지음, 교양인 펴냄)에 소개된 기독교 평화주의의 역사와 전통은 늘 주류에 가려왔지만 아름답고 맑기만 하다. 그걸 부정하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위대한 신앙인'들을 존경하는 건 모순이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려고 자기 목숨을 버린 이들이나, '살인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자기 생명을 던진 이들이나, 둘 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몸부림친 존재들이다.

<평화의 얼굴>은 한국 기독교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대천덕 신부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세계와 국내 복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름 지성과 교양을 갖추고 예수를 믿겠다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책은 몇 권 읽어줘야 한다.

존 스토트 목사는 젊은 시절 병역 거부를 결심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옳다"고 어머니가 편지로 설득하자, "나라가 첫 번째, 예수님이 두 번째가 아니라, 예수님이 첫 번째, 나라가 두 번째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편지지 여백에 적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히틀러의 군대가 유럽 전역을 장악해가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그는 대체복무나 비전투원으로 판정받지 않고 아예 병역이 면제되었다.

대천덕 신부가 강원도 태백에 세운 예수원은 성령 운동과 공동체 운동의 산실이었으며, 지금도 한국 기독교에 영적 감화력을 준다. 한국에서 토지 공개념이 널리 알려지는 데 그의 역할이 컸다. 시청 앞 광장에서 보수 기독교 집회를 이끄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도 대천덕 신부에게 성령론을 배웠다.

젊은 시절 그는 데이비슨대학, 옌징대학, 프린스턴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한동안 선원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했고, 갑판에서 민간 대체 복무를 한 것이다.

존 스토트 목사나 대천덕 신부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그들의 병역 거부 전력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다.

기독교 평화주의의 가늘고 긴 역사

저자가 대중성을 띠고 있는 두 사람의 병역 거부 이야기로 기독교 평화주의의 역사를 소개했지만, 기독교의 병역 거부 역사는 로마 제국 때로 거슬러간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에서 병역을 거부한 이유는 '우상을 숭배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예수님의 산상수훈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평화주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중세까지 마찬가지였다. 종교와 정치는 야합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성전'(聖戰, 거룩한 전쟁) 개념을 받아들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십자군전쟁은 최소한 1만 명 이상의 이교도들을 불에 태웠고 목을 잘랐다. '하나님의 적'을 죽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복되게 한다고 믿었다. 기독교는 그렇게 남의 피로 자기 역사를 그려나갔다.

그러나 평화주의의 숨결은 비록 가늘지만 끈질기게 이어졌다. 대표적인 교파가 재세례파다. 재세례파는 아미시, 메노나이트, 후터라이트 등으로 나눠져 있다. 퀘이커도 평화주의 정신을 가진 교파다.

재세례파와 관련해 이 책에도 나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569년 추운 겨울, 네덜란드의 재세례파 소속 젊은 교인인 더크 월렘스가 관리에게 쫓기고 있었다. 잡힐 경우 화형 아니면 수장이 예고되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데, 얇게 언 빙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피할 길이 없어 빙판 위를 그대로 달렸는데, 다행히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쫓던 관리가 빙판을 건너는 순간 '우지끈' 하고 얼음이 깨졌고, 추격자는 물에 빠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 물이 갈라지고, 애굽 군사들이 건널 때 물이 다시 합쳐져서 몰살됐잖아. 이번에도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신 거야. 할렐루야!"할 것이다. 하지만 도망자는 순식간에 발걸음을 180도 돌려서 관리를 물에서 끄집어 올렸다. 관리는 회개하고 재세례파를 믿었을까. 그럼 결론이 너무 시시해진다. 관리는 도망자를 체포해서 불에 태워 죽였다.

이 사건은 1569년에 일어났다. 그로부터 약 440년 뒤인 2006년에 일어난 사건과 비교해보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아미시 공동체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으로 6명의 소녀들이 죽었다. 인질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13살짜리 소녀는 범인에게 자기를 먼저 죽이고 대신 나이가 어린 애들을 내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애원은 거부된 채 소녀는 죽었다. 아미시 사람들은 자살한 범인을 용서하고 그의 장례식에 가서 애도해 주었다. 장례식 참석자의 절반이 아미시 사람들이었다.

인류를 감동시키고도 남을 만한 기독교 평화주의의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기독교인들은 잘 모른다. 왜 모를까? 목사들이 설교할 때 이런 건 얘기를 안 하니까. 왜 안 할까? 이단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단 사촌 정도 되는 곳이니까. 아무리 감동적인 얘기라도 이단들이 하는 건 아무 값어치가 없다.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다. 보수적이면서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젊은 여성이 인간 방패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라크로 가려는데, 한국 교회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재세례파 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포연에 휩싸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외부인으로는 가장 오랫동안 인간 방패로 활동했다.

순수한 신앙의 젊은이가 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어느 목사가 그를 돕고 싶어 했다. 그 목사와 만나서 그녀를 도울 방법을 의논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근데 왜 하필이면 그런 데를 통해서 갔을꼬?" 아니, 그럼 어쩌라고?

한국 기독교에서 평화주의의 역사는 짧고 경험이 일천하다. 그나마 김교신, 함석헌 등이 평화주의를 얘기했다. 신앙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는 여호와의 증인들뿐이었다. 2005년이 되어야 기독교의 이름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례가 등장했다.

민족 지도자들은 친일파로 변신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일제 강점기에, 이단들은 병역을 거부하다가 일본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다. 또 다른 이단 안식교도 집총 거부를 했으나, 1975년에 박정희를 못 견디고 포기했다. 평화주의의 경험도 없지, 이단들만 군대를 안 가려 하지. 이런 마당에 교회가 병역 거부를 곱게 볼 리가 없다.

정복주의냐 평화주의냐

하지만 남한테 눈 흘기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내 코가 석 자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종교 통계도 증명하듯이, 밑바닥이 도대체 어디쯤에나 있는지 확인해보려는양 기독교는 하염없이 내리달리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 숫자가 늘고 있다. 다른 종교인 숫자는 느는데 기독교 숫자가 줄어드는 데는 젊은이들의 이탈 현상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는 희망이 없다. 특히 병역 거부 문제와 관련해서 사고의 전면적인 전환이 긴급하다.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 특히 산상수훈을 더 이상 입으로만 놀리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해답을 얻었다는 것이다. 병역 거부를 가로막는 근거를 성경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궁금하다.

둘째, 대세에 편승해 세속적 승리를 쟁취하는 데 익숙하다 보니 간과하고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기독교 평화주의의 전통에 마음과 눈을 열어야 한다. 비록 가늘고 조용하지만 평화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걸음걸이가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이다.

셋째, 승리주의, 정복주의, 패권주의, 물질주의, 제국주의, 배타주의 등등 한국 기독교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이 모든 더러운 가면을 벗어버리고 화해의 도구, 평화의 사도로 거듭나야 한다.

넷째, 선교 전략적으로도 손해 볼 거 없다. 대체 복무제를 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이단에 몰릴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 좋은 비법을 왜 우리는 안 써먹나. 교회로부터 등을 돌리는 젊은이들을 다시 꾈 수 있는 비법으로 대체 복무제를 기독교가 적극 수용하면 된다. 기독교 신자로 개종하면 대체 복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예수 믿겠다고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교회마다 인산인해가 될 것이다. 젊어 군대 안 가, 늙어 부자 돼, 죽어 천당 가. 하나님도 감히 만들 수 없는 환상적인 종교 아닌가.

덤도 있다. 자기 아들 군대 안 보내기 위해 남의 나라 시민권 따주려고 교회 돈 빼돌리느라 애쓰는 일부 목사들은 더 이상 잔머리 안 굴려도 된다.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부터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생기고 있다. 왼쪽은 권순욱 씨, 오른쪽은 경수 씨.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2005년부터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생기고 있다. 왼쪽은 권순욱 씨, 오른쪽은 경수 씨.
ⓒ 사회당/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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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동 걸린 기독교인의 병역 거부

글은 장난처럼 읽히겠지만, 현실마저 장난처럼 보면 곤란하다. 지금까지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병역 거부에 앞장섰다. 하지만 앞으로 보수적인 교회에서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생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2005년 김대산씨(개신교)와 고동주씨(가톨릭)가 각각 기독교 신앙 양심에 근거해 병역 거부를 선언하고 옥살이를 하면서, 한국 기독교 최초의 병역 거부자가 되었다. 개신교인 경수씨는 2006년 병역을 거부했고, 감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장애인 야학 간사를 하고 있는 권순욱씨가 가장 최근인 2008년 11월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조짐은 전부터 있었다. 김두식 교수가 쓴 <칼을 쳐서 보습을>을 읽은 청년 몇 명이 심각하게 병역 거부 내지 복귀 거부를 고민하는 글을 저자에게 보내왔단다. 이단들이 아니라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었다. 저자가 잘 설득해서 사고는 막았다는데, 병 주고 약 준 셈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한다면 한다" 정신은 말리기 쉽지 않다. "때려잡자, 이단"의 정반대 길을 걸어갈 예비 확신범들이 적지 않다. 저자가 쓴 <칼을 쳐서 보습을>, <평화의 얼굴> 같은 책들이 그들의 눈을 떠주고 길을 터준 셈이다. 분서갱유가 재현되지 않는 한 이 책들을 읽고 침 꿀꺽 삼킬 젊은 예수쟁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몇 해 전 강원도 춘천에 메노나이트 교회가 세워졌다. 오래 전 미국 선교사가 와서 사역하다가 실패하고 철수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인들 스스로 메노나이트 교회를 세운 것이다. 미국 LA와 캐나다 온타리오에도 메노나이트 소속 한인 교회가 있다.

아주 최근에는 평화 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모여서 '기독교 평화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함께 공부하면서, 사역자들을 양성하고, 평화 운동의 대중적 확산에 기여하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책 나왔지, 교회 들어섰지, 공부 모임 생겼지, 병역 거부 시작됐지. 철옹성 같기만 하던 둑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민 정신 건강에 심각한 병리 현상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이런 분들의 '정신 건강'과 '병리 현상'과 '위험한 결과'가 오히려 걱정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www.newsnjoy.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교양인(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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