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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가 벌어진 서울 한강로 2가 용산 4구역 재개발 지구. 이곳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먹자골목'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금 용산 4구역 내 골목의 상가들 대다수가 폐허로 변해버렸다. 빈 상가의 창가에는 유리창이 어김없이 깨져 있고, 한때 손님들이 가득 찼었을 공간엔 쓰레기와 인테리어 잔해들만 남아 있다.

 

몇몇 상가는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하지만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저희 가게는 정상영업 중입니다"라고 적힌 상가 주변의 현수막이 그들의 악전고투를 짐작케 했다.

 

골목의 옛 모습을 기억하던 이들에게 이러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23일 오전 넝마더미로 변한 시장골목에서 만난 김평후(70)씨는 "14살 때 처음 서울 올라와 용산역에서 아이스께끼 장사하며 국수를 먹었던 곳인데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며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30년 전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한 김씨는 "제2의 고향이랄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해서 왔는데 이렇게 누더기가 됐을 줄 몰랐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신용산역 근처에서 만난 직장인 하연수(36)씨는 "사고가 난 뒤에 회식 때 자주 갔던 고깃집이 어떻게 됐는지 보고 싶기도 해서 점심 시간에 동료랑 같이 골목 안에 들어가봤는데 완전히 엉망이 됐더라"며 "아직 몇몇 가게는 하는 것 같던데 손님도 없고 상인들만 불쌍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에 회식하러 가본 적은 없냐고 묻자, 하씨는 "재개발 시작하고 자꾸 비어가는 주변 식당도 눈에 띄고 이상한 냄새도 나서 자주 가기 힘들었다"며 "동료 직원 중 일부는 음식점 주인과 건달로 보이는 이들이 말싸움을 하는 것도 봤다고 했다"고 답했다.

 

재개발 사업 지역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철거용역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재 용산4구역 철거작업은 현안건설산업과 호람건설 2곳이 시행 중이다.

 

"지역건달과 철거용역, 세입자 조직하면 한 푼도 안 주고 작살낸다고 협박했다"

 

지금도 이 골목에서 힘겹게 생업을 잇고 있는 이들은 철거용역들의 행패에 치를 떨었다. 모두 건물주에게 월세를 내가며 가게를 하고 있던 세입자들이었다.

 

'50대 자영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철거민들은 지역건달들과 철거용역들의 행패에 날마다 시달리면서 점차 극렬하게 투쟁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리처분인가'가 나기 전에는 지역건달들이 와서 행패를 부리고, '관리처분인가'가 난 후에는 철거용역들이 와서 행패를 부린다. 우리 같은 경우엔 지역건달들이 먼저 와서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값을) 쳐줄 것이고, 세입자 조직하면 한 푼도 안 주고 아주 작살을 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는 또 "보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쫓겨날 처지에 몰린 상인들이 구청 앞에서 항의 집회라도 하려 하면 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세입자로 위장해 미리 집회를 신고한다"고 했다. 1인 시위를 하는 장소에 미리 와 있고, 집회를 할 때는 일부러 시비를 걸어 폭행을 한다고 했다.

 

"폭행을 할 땐 꼭 한 사람만 때린다. 세입자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주로 이들의 타깃이 된다. 맞기만 했더라도 경찰서에 가면 '쌍방 폭행'이 된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제거해나간다."

 

고깃집을 하고 있는 B씨는 "철거용역들이 식사하는 손님한테 일부러 시비를 걸고 말리면 상을 뒤집어 버리는 등 노골적인 영업방해를 했다"고 말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B씨의 말에 따르면 철거용역은 상권이 죽도록 계획적인 행동을 진행했다.

 

"합의하고 나간 상점이 있는 경우에 그곳을 다 깨부셔서 폐허로 만들고 쓰레기를 투기한다. 붉은 스프레이로 칼, 해골, 목 매단 사람 등을 그려넣고, 악취가 풍기도록 썩은 생선을 쓰레기더미에 넣는다든가 밤새 가게 앞 골목에 은행알을 깔아놓기도 했다. 어떤 때는 불법적으로 펜스를 만들어서 차가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왜 깡패들을 감싸냐?"... "철거용역도 시민이라 개입 못한다"

 

"경찰이나 구청에 신고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들은 "안 해봤을리 있겠냐"며 발끈했다.

 

B씨는 "신고해도 천천히 오거나, 와도 무관심하다"고 한탄했다. B씨는 자신의 가게 옆 빈 건물에 용역들이 쌓아놓는 쓰레기에 대해 구청 청소과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청은 "건물 안이 개인사유재산이라 직접 치울 수는 없고 치우라고 통보한 뒤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답답한 일이었지만 직접 치울 수도 없었다고 했다. B씨가 쓰레기를 치우려 빈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철거용역회사 측에서 주거침입으로 걸기 때문이라고 했다.

 

B씨의 옆에 앉아 있던 C씨는 "경찰이 오히려 용역 편을 든다"고 주장했다.

 

"폭행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한 번은 경찰한테 '왜 깡패들을 감싸느냐'고 항의했다. 그때 경찰은 '용역도 시민'이라며 감쌌다. 폭행 사건 중 '쌍방 폭행'으로 걸린 사건 때문에 철거용역과 함께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간 적도 있었는데 같은 사건으로 나는 몇 시간씩 기다리며 조사 받은 반면, 그는 경찰관에게 친절하게 조사 시간까지 안내받았다."

 

한편, 상가 세입자들이 지목했던 철거용역들은 시장 골목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참사 현장 앞 분향소에서 농성 중이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지난 20일 참사 이후 철거용역들이 이 근처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거용역들의 지역 사무실로 알려진 컨테이너가 있는 주차장으로도 찾아갔지만 경찰의 통제제한 구역 내였다. 경찰은 "최근 이틀 사이 컨테이너를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태그:#용산 참사, #철거 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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