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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현지시각)에 있을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을 앞둔 주말,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오바마는 링컨의 취임식 기차 여행을 벤치마킹해 17일 필라델피아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입성한다. 이 이벤트를 통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자신감과 희망을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18일에 공식적인 취임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그 첫 행사는 워싱턴 링컨 메모리얼에서 열린 '우리는 하나' 콘서트다. 비욘세·보노·브루스 스프링스틴·패티 라벨·본 조비·제이미 팍스·덴젤 워싱턴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무료 공연을 펼친다니 대통령 취임식이 전 국민의 흥겨운 축제가 될 것임을 예감하게 했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한동안 잊고 있던 '정치적 해방감'에 대한 욕구가 밀려왔다.

 

워싱턴 근교에 살면서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이 '해방감'을 맛보지 못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으로 – 요즘 한국 상황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 카메라를 챙겨 길을 나섰다. 워싱턴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모두 막혔기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해 콘서트장으로 향했다. 역에서 나와 '내셔널 몰'(링컨 메모리얼에서 국회의사당에 이르는 국립공원)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앞이 꽉 막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는데, 길을 막고 있던 경찰이 차들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어디선가 나더니 경찰의 호위를 받는 차량행렬이 링컨 메모리얼 쪽으로 향한다.

 

똑같이 생긴 까만 리무진들이 몇 대 지나가는데, 순간 이건 오바마가 탄 차가 분명하다는 생각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분명 오바마가 전화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했다고 믿고 싶다.

 

젊은 흑인 민주당 vs. 나이 든 백인 공화당

 

콘서트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코코란 갤러리 벽면에는 오바마의 사진이 레이건의 사진과 나란히 걸려있다. 리처드 어비든이라는 사진작가의 작품이다. 대비되는 두 역사적 인물로, 젊은 흑인 민주당 vs. 나이 든 백인 공화당. 이런 대비를 염두에 두었을지언정, 미국인들에게는 아마 그저 가장 인기 있었던 대통령과 가장 인기 있을 대통령쯤으로 보이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고 있지만, 일부는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또 극소수의 사람들은 일종의 '시클로'를 타고 간다. 춥긴 하지만 뒤에 탄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오르막길에서 기어를 바꾸며 헉헉거리는 기사들을 볼 땐, 좀 밀어주고 싶은 지경이긴 했지만.

 

몰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는 죄악이다", "예수를 믿으라", "당신은 오바마가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변화하길 원한다" 같은 현수막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기독교 근본주의 교회에서 나온 사람들이리라. 물론 그들 옆에는 그들을 구경하면서 놀려먹는 젊은이들이 더 많다.

 

내셔널 몰에 들어서니 벌써 인산인해다.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정신없이 헤매면서, 대관절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가 열리는 링컨 메모리얼에 가지 않고 반대쪽에 있는 워싱턴 모뉴먼트 언덕에 모여 있을까 궁금했다. 링컨 메모리얼 쪽으로 한참 들어간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콘서트장 근처는 이미 출입 통제가 이뤄져 널찍한 광장 쪽으로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그래도 커다란 스크린을 몇 개 설치해 두어서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럴 것이라곤 아주 약간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몇 십만 명이 이렇게 운집해서 콘서트장에 접근도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 틈새에서 보노·패티 라벨·본 조비의 노래를 듣고 제이미 팍스의 오바마 흉내까지 본 후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나무 위에 올라가서라도 멀리 보고 싶은 사람들, 말을 타고 다니는 국립공원 경찰들, 사람들의 카메라를 받아 대신 찍어주고 있는 소방대원들. 다들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 콘서트를 보러 온 건지, 사람들을 보러 온 건지.

 

오바마에 들뜬 미국의 열기

 

앞에서 보았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처럼 취임식 행사 자체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시위가 곳곳에서 있었다. "이라크에서 가자까지 미국의 공포와 고문의 전쟁을 멈추라"는 반전주의자들의 주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그룹은 아예 "부시를 체포하라"고 외쳤다. 자세히 보니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는 구호도 있다. 사진을 찍고 엄지를 치켜올리니 할머니도 따라서 엄지를 들었다. 무언의 연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에서 콘서트장인 링컨 메모리얼 옆 담장에 붙어 어렴풋이 무대를 볼 수는 있었다. 무대 앞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신나게 음악을 들으며 행복에 젖어 있겠지만, 그들은 또한 이 바깥의 – 마치 촛불시위에서 느꼈을 법한 – 열기와 연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삼십년 만의 강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람객들은 무엇을 기대하면서 모여드는 것일까? 왜 그들은 이 젊은 흑인 대통령의 취임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부를까? '우리는 하나'라는 미국인의 희망이 현실에서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까? 아직 짐작조차 하기 힘든 이 자본주의의 위기 한가운데 과연 '희망'이란 있는 것일까?

 

잿빛 겨울 하늘은 온통 들뜬 오바마의 새로운 미국의 열기를 그나마 진정시켜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콘서트의 자세한 내용과 오바마의 연설에 관해서는 http://www.npr.org/templates/story/story.php?storyId=99536959 기사를 참조하십시오.


태그:#오바마, #워싱턴, #취임식, #콘서트, #우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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