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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텅 비어 콘크리트로 채웠지만 아직 살아있는 주목이다

뼛속을 저미는 싸늘한 바람 속에

숙명처럼 능선을 지키고 서있는 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흐트러짐 없이 천년을 살았구나. 

화사한 봄꽃도 부질없었네.

여름 태양은 뜨겁기만 했네.

몸에 밴 겸손으로

묵묵히 살아온 세월

나를 접고 가슴을 여니

하늘이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추운 밤 달을 보고

흐르는 별 헤아리며

뒤돌아 본 그 세월에

회한과 눈물이 왜 없겠는가만

가을마다 타올랐던 붉은 단풍이며

말없이 지나간 수많은 인생들

덧없이 스쳐간 바람이었네.

가끔은 흔들렸던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을 다잡으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이제, 다가올 천년은

하늘을 벗 삼아 무심 속에 보내리라.

 

-이승철의 시 <태백산 주목> 모두-

 

 천년을 하루같이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있는 주목

 정말 천년 쯤 되었을 것 같은 모습의 주목

<시작노트> 산은 나무가 있어서 아름답고 풍요롭다. 산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황량하고 삭막한 풍경일까? 연전에 다녀온 아프리카 북단과 중동지방에서 만난 산들이 그랬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들과 모래언덕은 얼마나 쓸쓸하고 메마른 모습이었던가.

 

다행히 우리나라 산들은 나무가 잘 자라 우거진 숲이 언제 보아도 싱그럽고 아름답다. 산에서 자라는 수많은 종류 나무들은 저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산에서 숲을 이룬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특별한 나무 중 한 종류가 바로 주목이다. 주목은 아주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귀한 나무다.

 

 저 주목에 비하면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거목으로 성장한 주목

 저 주목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살았을까?

주목은  어느 산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주목이 자생하는 대표적인 산을 꼽으라면 태백산과 덕유산, 소백산, 그리고 오대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목 자생지로 최고의 산은 아무래도 태백산이다. 엊그제 매서운 칼바람 부는 등산길에서 만난 태백산 주목들은 그 숫자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오래된 고목들이 많았다.

 

주목을 일컬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을 하는데 주목의 오랜 수명과 생명력을 칭송하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태백산에서는 정말 천년이 지났을 것 같은 오래된 고목들과 천년의 수명을 다하고 이미 죽은 고사목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단단한 가지들이 거의 다 죽고 약한 가지 한 쪽 끝에서 잎을 피우는 고목들은 대개 줄기 속이 텅 비어 그 안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채워 넣은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관리하는 사람들이 콘크리트를 채워 넣었겠지만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죽어서 천년은 너무 외로운 세월이다

 세월이 얼마나 더 흘러야 흙으로 돌아갈까

 주목 옆을 스쳐간 인생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리고 이미 수십 년 전에 죽은 고사목들이 아직도 단단한 몸체를 꼿꼿이 세우고 서있는 모습을 대하노라면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의 단단하고 질긴 목질에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해발 1500미터 급의 태백산 능선길 주변 고목들과 고사목에 눈이 내려 눈꽃이 피거나 서리가 엉겨 꽃처럼 피어난 모습은 다른 어느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히 아름다움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얼마나 오랜 세월인가. 주목의 그 질긴 생명력에 비하면 우리 인간들의 수명은 그야말로 스쳐가는 바람이다. 태백산 줄기를 오르며 마주친 주목들을 살펴보면서 자연과 우리 인간들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조금은 겸손해지는 작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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