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민은행을 위해서 평생 일한 사람인데, 비정규직이라고 이렇게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것에 대해 배신감 느낀다."

오는 31일이면 계약 해지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최영호(가명·56)씨의 한숨은 길었다. 그는 "애들 결혼할 나이인데 실직하게 돼 앞날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해 '내부 통제 점검자'란 이름을 가진 457명 모두 7월 안에 국민은행을 떠난다. 대신 그 자리에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는 55세 이상의 정규직 직원들을 배치하게 된다. 결국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정규직을 위해 비정규직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셈이다.

'내부 통제 점검자'는 각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점검 업무를 맡고 있다. 은행으로선 꼭 필요한 일. 하지만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구조조정 대상 제1순위가 된 셈이다. 현재 은행권에서는 희망퇴직자를 받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유독 국민은행에서만 계약직 노동자 대량 계약 해지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탓에, 내부 통제 점검자들의 상실감은 더욱 크다. 이들은 "우리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신하는 이상한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국민은행은 "구조조정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들을 고용한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국민은행, 시대에 역행하는 구조조정하고 있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 국민은행

관련사진보기

이석현(가명·57)씨는 지금은 그 이름이 사라진 한 은행의 지점장이었던 2000년 9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그는 "대학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실직당해 가정 경제가 파탄 나 너무 어려웠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는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내부 통제 점검자를 뽑는다는 국민은행 공고를 보고 지원, 2005년 12월 입사했다. 당시 연봉은 1800만원에 불과했지만 "정년 때까지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다. 실제  1년마다 재계약했지만,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됐다.

그는 "외국인 주주와 고객에게 투명경영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금융사고가 많이 줄었고, 은행장이 고용창출을 하면서 좋은 제도로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얼마 전 그의 자부심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29일 업무 고시(인사고과 시험)를 하루 앞둔 28일 갑작스럽게 시험이 취소됐다는 통보가 왔다. 다음날 은행에 갔더니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올해 1월 31일자로 계약해지를 한다는 통지서였다.

이씨는 "원자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는 "3년간 저임금 고효율로 일했다"며 "억울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노동위원회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정규직 먼저 자르는 국민은행은 시대에 역행하는 최악의 구조조정을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일이 없어지거나 후배를 위해 용퇴하라면 이해하겠는데..."

국민은행 대구지역 내부 통제 점검자인 김현호(가명·57)씨는 "사회 통념상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조정"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김씨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자리가 몇배의 연봉을 받는 비슷한 나이 대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부 통제 점검자들의 현재 평균연봉은 2400만원. 세금을 제하고 한 달에 160만원을 받는다. 김씨는 "내부 통제 점검자 역할은 저임금을 주고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고임금 직원을 배치하기 위해 저임금인 우리를 해고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비정규직법이 2007년 7월 시행돼, 근무한 지 2년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줘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무기계약직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시 내부 통제 점검자인 오진형(가명·56)씨는 "우리가 하는 일이 필요없다거나 후배를 위해 용퇴하라고 하면 군말 없이 나갈 것"이라며 "이번 계약해지는 너무 억울하다"고 밝혔다. 오씨는 2005년 국민은행에서 명예퇴직 당한 이후 두번째 퇴직이다. 그는 "밤마다 악몽을 꾸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40대인 홍창수(가명)씨는 "은행에선 특별한 상황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껌 씹다가 단물 빠지니 뱉는 것 같아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계약 해지는 은행 발전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이들은 노조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조합(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관계자는 "그 분들의 복귀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묻자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렵다"며 말을 피했다.

국민은행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 구조조정 아니다"

한편, 국민은행은 "내부 통제 점검자에 대한 계약 해지 통보는 구조조정과는 관련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국민은행은 55세 이상인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년을 60세(기존 정년 58세)로 연장하는 대신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연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다.

국민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임금 피크 제도는 노조와 합의돼 2008년부터 시행됐다"며 "우리가 내부 통제 점검자들을 모른 척 하지는 않을 것이다, KB신용정보 등 자회사에 적극적으로 취업을 알선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은 건 아니다. 이 관계자는 "계열사의 일자리를 강제로 만들 수는 없다, 100% 취업해준다는 단언은 못 한다"며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다, 2005년 명예퇴직 당하신 분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줬다는 측면을 봐 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불만을 토로하는) 그 분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들의 일을 후배들이 물려받는 것이니 (계약 해지는) 부득이한 일"이라며 "이번 일은 경기가 어려워서 구조조정하는 것도, 일반적인 비정규직 문제도 아니다"고 전했다.


태그:#구조조정, #내부 통제 점검자, #비정규직, #국민은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