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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연구원(http://jokbo.co.kr)의 고객상담실에 "고려 말 사헌부 집단을 지낸 송명의가 처가인 회덕현 황씨 촌에 자리 잡았고, 송명의의 손자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였던 쌍청당(雙淸堂) 송유 때 가문이 번성하게 되면서 은진 송씨가 회덕(懷德) 송씨로 칭해졌다"고 써있다.

그런 연유로 대전시 대덕구의 회덕 주변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송유의 별당 쌍청당,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의 별당 동춘당ㆍ거처하던 동춘 선생 고택ㆍ학문을 연구하던 2층 누각 옥류각, 조선 숙종 때 문신 송규렴(1630∼1709)이 지은 별당 제월당 등 송씨 집안의 유적들이 많다.

우암 송시열, 제월당 송규렴과 함께 회덕삼송(懷德三宋)으로 불리는 분이 동춘당 송준길이다. 송준길과 송시열은 같은 시기에 태어나 공부하고, 같은 생각으로 정치를 했다. 동춘당 송준길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동춘당과 동춘 선생 고택을 1월 2일 다녀왔다.

동춘당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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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종만

동춘당(보물 제209호)에 대해서는 대덕구청 홈페이지(http://www.daedeok.go.kr) 문화예술 관광 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1606∼1672) 선생이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으로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표본으로 들 수 있으나,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과히 크지 않다. 오른쪽 4칸이 대청이고 왼쪽 2칸이 온돌방인데, 전면에는 쪽마루를 깔았으며 온돌방의 벽 아래 부분에는 널빤지의 조각인 머름을 대었다. 주춧돌은 사각형의 귀가 높은 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동춘이 ‘살아 움직이는 봄’을 뜻하듯 선생이 독서와 교육을 하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회덕향약을 만든 곳이 동춘당이다. 작고 간소한 건물의 규모에서 동춘 선생의 삶을 알 수 있다.

ⓒ 변종만

동춘당 뒤편으로 보이는 한옥이 동춘 선생 고택(대전유형문화재 제3호)이다. 동춘당 왼쪽 담장 끝에 대문이 있고 그 앞에 一자 모양의 사랑채와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다. 사당인 가묘와 별묘는 오른쪽에 있다.

문화유산해설사가 근무하지 않는 1월이라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동춘 선생 고택에 관한 내용도 안내판에 간단하게 써있다.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살던 곳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넉넉한 대지 위에 안채와 사랑채, 가묘, 별묘(동춘당 선생 한분만을 모시는 사당) 등이 여유 있는 배치를 하고 있다. 동춘당과 함께 건축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있어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건축양식이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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