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산임수의 전통적인 마을인듯. 한강을 앞에 두고 아늑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편안함을 줄 듯하다. 친구는 아치울 마을에 살고 싶단다.
▲ 용마산에서 내려다 본 구리 아치울 마을 배산임수의 전통적인 마을인듯. 한강을 앞에 두고 아늑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편안함을 줄 듯하다. 친구는 아치울 마을에 살고 싶단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자유란 홀가분한 것

그동안 딱히 누가 찍어누른 건 아니었지만 심적 부담이 컸다. 아들녀석 수험생이라 함부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도 없었다. 퇴근하고 와서는 꼭 무엇을, 구체적 도움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아이 옆에 있으면서 심리적 안정감이라도 주어야 되지 않나 싶어 스스로 활동을 자제하며 먹을 것 챙겨주고, 몸이 뻐근해 운동 좀 하고 싶어도, 화가 목까지 치밀어 올라도 꾹꾹 눌러 참으며 겉으로 온화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2008년 1년을 보냈다.

학교 다니느라 나가 있던 딸아이, 주말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반찬 하나라도 챙겨줘야 할 듯해 반찬 1가지 만들겠다고 장봐다 준비해놓아야 하고 가져온 옷 빨아야지, 게다가 주말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빼놓을 수 없는 1가지, 아이 교복 빠는 것. 크게 힘든 건 아니지만 왜 그리 손이 안 가는지. 흰 와이셔츠 몇 개 빠는데, 다림질 안 하려니 꼭 손빨래 해야 하는데 목깃과 소맷부리 비비는 게 부담 중의 하나였다.

사실 별 게 아닐 수도 있는데. 직장 다니느라 지친 심신에 기타 등등 집안일에, 심적 부담이 크다. 좁은 화장실에서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비벼대는 게 손목도 아프고, 왠지 처량하단 생각에 가슴이 답답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다 이제 아이의 시험 결과에 관계없이 어찌 됐든 교복을 안 입어도 되고 옆에서 지켜가며 시중들어야 하는 생활도 끝이 난 셈이다. 이제는 식구들 각자가 홀로서기를 해도 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일찍 시작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바람대로 되지 않기에, 이제나마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내가 없는 동안은 집안일 나누어서 하고, 밥도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각자 알아서 챙겨먹기.

아들 녀석 이불빨래를 넣어 세탁기 돌려놓고 딸 이불은 기다렸다가 빨라고 했더니, 남편이 세탁조에 넣고 세제를 넣어 거품 부글부글하게 일으켜 열심히 발로 밟고, 아들녀석은 제방에 쌓인 먼지 털어내고 청소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과감하게 집을 나서다

전 같으면 식구들 다 있을 때 나가려면 3식구 아니 아들과 남편 눈치 보느라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나도 이제 내삶을 찾아야겠다. 자유로워지련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배낭 하나 메고 길을 나섰다. 친구랑 산에 오르기로 했다. 망우산을 넘어 용마산 찍고 아차산으로.  어느 카페에서 걷기가 있어 가자고 했더니 사람 많은데 깃발따라 가는 건 싫단다. 할 수 없이 목적지를 바꾸어 둘이서 가기로 한 것이다.

망우산은 산이라 할 것도 없이 산책코스 같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고 돌 하나 없이 흙만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석풀석 일었다. 봄날에 일어나는 황사 같았다. 검은바지단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힘도 들지 않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용마산을 건너 아차산으로 옮겼다. 용마산에서 내려다보는 동북부 서울은 하늘에 스모그가 가득차 전경이 맑지 않았다.

멀리 오른쪽 산 위에 남산 타워가 보인다.
▲ 아차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시가지 멀리 오른쪽 산 위에 남산 타워가 보인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용마산 정상을 오른쪽에 비껴 두고 아차산으로 옮겼다. 고구려 유적 발굴지가 눈에 들어왔고 아차산 보루 복원해 놓은 모습이 곳곳에 있었다. 아차산은 순전히 바위산이었다. 소나무가 많아서 공기도 더 좋았고 먼지가 덜 나서 탁하지 않았다.

아차산 아래 먼지 흡입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 바지와 신발에 노랗게 묻어난 흙먼지를 털려고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아차산 아래 먼지 흡입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 바지와 신발에 노랗게 묻어난 흙먼지를 털려고 사람들이 줄 서 있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다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고 있었다. 뭔가 봤더니 먼지 털라고 먼지 흡입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광진구는 친절하기도 하지! 이 동네는 복받은 동네인가보다. 진입로도 예쁘게 잘 되어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서 있다가 먼지를 털었다. 바지단과 등산화 겉만 털었는데도 목욕한 것마냥 기분이 상쾌했다.

바지와 신발에 누렇게 쌓인 먼지를 털어냈더니 기분이 상큼했다. 마치 온천에 갔다 온 것처럼.
 바지와 신발에 누렇게 쌓인 먼지를 털어냈더니 기분이 상큼했다. 마치 온천에 갔다 온 것처럼.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내려와서 '두부천국'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허름했다. 탁자 몇 개 안 되는 집이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거기서도 줄을 섰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집은 이 집보다 자리가 넓은데도 두 테이블 정도만 차 있었다. 난 줄서는 거 싫은데.

나오는 아줌마 아저씨들은 얼굴이 불그스레해서 나오거나 몸을 못 가눠 비틀비틀거린다. 술 마시고 떠드는 목소리로 골목이 가득 찼다.

조촐한 신년식 겸 독립기념식 - 두부김치와 막걸리

"딴데 가자."
"어디로?"
"글쎄."
"시끄러워서 두부가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가자."

친구는 좀더 기다리면 시끄러운 사람들 몇 나가고 나면 나을 거란다. 결국 기다려 두부 한 모와 김치 한 접시에 막걸리 1병 시켰다. 그 집에서 그날그날 한 두부라 연하고 부드러웠다. 값도 저렴해 4,000원, 막걸리 1병 2,000원. 사가는 건 두부 1모에 3,000원이란다. 6,000원에 흐뭇하게 신년식겸 저녁겸 뿌듯하게 일과를 마쳤다.

'두부천국'은 그날그날 만든 두부를 파는 곳이다. 부드러운 것이 잘 넘어간다. 막걸리 1병을 곁들여 친구와 둘이서 신년식 겸해 배 부르게 먹었다. 알코올 기운도 살짝 오르는 게 기분도 몸도 천국이었다.
▲ 두부김치 '두부천국'은 그날그날 만든 두부를 파는 곳이다. 부드러운 것이 잘 넘어간다. 막걸리 1병을 곁들여 친구와 둘이서 신년식 겸해 배 부르게 먹었다. 알코올 기운도 살짝 오르는 게 기분도 몸도 천국이었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내려오는 길에 기분은 좋은데 몸은 추웠다. 역시 겨울은 해 떨어지면 장난 아니게 춥구나. 둘이서 너무 추운 나머지 어묵집에 들러 뜨거운 국물 한 컵에 어묵 하나를 먹었더니 몸이 좀 나아졌다. 친구의 손은 얼음장이었다. 체온이 한 2도쯤은 낮은가 보다. 그 친구의 손을 내 겨드랑이에 꼭 끼고 더 걸었다. 열이 나서 몸이 좀더 훈훈해지겠지.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힘들거라는데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요즘같이 힘든 세상에 번듯한 직장 정규직으로 다닐 수 있는 거며, 몸 건강해서 가고 싶은 곳 내 다리로 다닐 수 있는 거며,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알코올 기운도 살짝 오르고, 다리도 멀쩡하고, 좀 더 걸어야겠다 싶어서 아차산역을 지나쳐 중곡역, 용마산역, 사가정역에 와서 전철을 탔다.

'집에 가서 두부 1모 사다가 김장김치 볶아서 두부김치 해줘야지!'

처음 와 본 동네인데 저녁노을이 곱다.
▲ 아차산 아래 골목길 처음 와 본 동네인데 저녁노을이 곱다.
ⓒ 송진숙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치열한 다툼이 있던 장소로서, 아차산성이 있었고, 고려때에는 강호의 이상향으로서 멋진 강변의 풍경을 가져 여기에 쌍수정(雙樹 亭)을 세워 광나루 강촌을 오르내리며 농로.어옹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심(詩心)을 돋울 수 있어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던 곳이다. 또한 불도를 닦기 위한 도량(道場)으로 은석사(銀石寺). 범굴사(梵窟寺) . 영화사(永華寺)가 있었으며 강나루 쪽으로는 백중사(伯仲 寺)가 있기도 하였다. 아차산 자락 인 용당산에는 양진사(楊津祠)가 있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 뱃길과 어촌의 안녕을 빌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 중기까지도 이 일대는 목장으로만 개발되었을 뿐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 하였다. 이 시절에는 아차산, 용마산 일대에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사냥을 할 때 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 아차산 앞쪽으로 자리잡고 있던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 을 건너면서 아차산을 바라보던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아서 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시로 읊기도 하였 다. 1950년대까지도 한강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소로 존재하였던 아차산 자락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있기도 하였다.-광진구 홈피에서 옮김



태그:#망우산, #용마산, #아차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