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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몰아치는 추운 겨울 날씨에도 손에 손을 맞잡고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자랑스러운 고국의 여러분들과 조금이나마 뜻을 같이한다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필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영국 옥스퍼드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 덕에 참으로 오랜만에 당당한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어깨를 펴고 이국의 가로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국의 정치 현실을 접하며 울화통이 터지긴 하지만, 그러나 바로 이 울화통 때문에, 사실은 희망에 부푼 설레는 가슴을 달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장래가 한없이 밝으리라는 자신감 때문이지요.

 

세칭 'MB악법'이란 것을 두고, 심지어 전두환 정권에서조차도 보기 힘들었던 후안무치한 전제적 횡포라는 개탄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하기야 정치·경제·사회·문화·남북관계 등등, 이명박 정부 들어 골절상, 아니 거의 폭행 치사 지경까지 이르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 'MB악법'이 결국 정권퇴진 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말아, 정권 퇴진 구호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2008년 한 해 우리 사회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응답자 대부분이 "나빠졌다"(90.6%)고 답한 반면, "좋아졌다"는 대답은 7.6%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햇빛 비치는 좋은 날씨만 계속되면 모든 게 사막으로 변하고 말지요. 휘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이 있기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모든 부정적인 현상의 배후에는, 항상 그것을 뛰어넘게 만드는 긍정적인 활력소가 살아 꿈틀거리는 법입니다. 우리 민족은 지금껏 온갖 시련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좌절한 적은 없었지요.

 

지금 잠시 제가 몸을 기탁하고 있는 이곳 옥스퍼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들이 대한민국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하며, 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게 아닙니까.

 

"영국은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발달시키고,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뿌리 내리게 했을 뿐 아니라,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을 주도했고, 19세기말에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국을 거느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철도나 지하철 등 세계 최초로 만든 것들이 낡아빠져 세계 최후의 것인 양 되어버린 꼴이다.

 

그래서 영국 사회의 밑바닥에는 퇴역장군의 애수 같은 것이 짙게 감돌고 있다. 마치 노 제국의 일몰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우리 영국인들은 '모두가 모두에게 타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회 내부에 무관심과 무기력이 넘쳐난다. 영국은 미래를 열어나갈 만한 활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 나라 한국은 촛불 축제 등에서도 보듯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아직도 솟구치는 젊은 힘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작년에 미국의 촘스키조차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한 한국인의 투쟁이 세계에 영감을 주었으나, 항상 자유를 두려워하고 생각과 표현을 다시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한국 정부를 에둘러 비판한 적도 있었지요.

 

광장의 민주주의

 

인류의 역사는 시장과 광장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사익을 위해 흥정하는, 이기주의가 활개치는 공간이라 한다면, 광장은 공익을 위해 규탄의 함성을 내지르는 곳이지요.

 

인간이 함께 모이지 않고서는 역사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런데 단합 속에서 불의로운 정치체제와 사회질서에 맞서 집단적으로 항거하며 승리 쟁취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곳이 바로 '광장' 아니겠습니까. 여기서는 시장에서와 달리, 대의를 향한 규탄의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뜨겁게 서로 맞잡는 연대의 손들이 있지요.

 

말하자면 '민심이 천심'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곳이 바로 이 광장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이, 우리 인간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광장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일깨워주는 곳이라 이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랑스럽게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 '광장의 문화'가 태동하였습니다. 월드컵과 더불어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 만발했던 '붉은 악마'의 축제가 촛불로 부활했었지요. 바로 이 광장에서 우리 민중은 미군 장갑차에 의해 세상을 억울하게 떠난 두 여중생의 혼을 달래는 애국시민으로, 그리고 대통령 탄핵소추를 자행한 '의회 쿠데타'에 맞서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장렬한 민주전사로, 나아가서는 병든 소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생명의 전도사로 성장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MB악법'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독재와 전체주의의 망령을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립하기 위해 또다시 손에 손을 맞잡고 함성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촛불의 물결이 어느새 민주의 해일로 돌변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지금껏 국민의 정치참여는 주로 선거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왔습니다. 국민은 오직 선거 기간 동안만 최고 주권자 대접을 받을 뿐, 그 이후는 다시 무기력한 피지배자의 신분으로 전락하기 일쑤지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민은 그의 어휘가 '예' 또는 '아니오', 이 두 마디에 한정되어 있는 주권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가능한 국민의 직접 지배를 사회적으로 확립하거나 확대해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마땅하지요.

 

이제 여러분께서는 바야흐로 빈 껍데기만 남은 주권자의 허울을 집어던지고 진정한 주권자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인류사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고국의 여러분께서는 간접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발전시켜나가는 세계사적 대업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다는 말씀이지요. 현대 민주주의를 생성시킨 영국에서조차도 감히 흉내내기 힘든 위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옥스퍼드 대학교수들까지 부러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께서는 국민이 정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것을, 다시 말해 하인이 아니라 주인임을 입증하기 위한 세계사적인 대행진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은 유럽인 등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불꽃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주화 투쟁의 전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렬한 민족적 연대의식까지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달이 4·19 혁명, 5·16 쿠데타, 6·10 항쟁이 이어졌습니다. 금년에는 8·15 광복 이전, 또다시 전 세계인을 감동의 물결에 휩싸이게 할 7월 대민주항쟁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성취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들께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유럽 국민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함께 전달해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박호성 기자는 옥스퍼드 대학 연구교수이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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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창간될 때부터 신랄한 시대정신과 예리한 작풍에 매료됐습니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와 사회과학대학 학장을 지낸 뒤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어서 강단에 서지는 못하지만, 제게 능력과 기회가 따라준다면 오마이뉴스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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