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점거농성 중인 국회의원들이 음료수 반입도 금지된 본회의장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모자라 원할 때는 자유롭게 외식도 하고 사우나를 다닌다고 하며, 기일 없이 신성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불까지 깔고 자는 웃지 못할 행태도 연출했다."(1월 2일 한나라당 비례대표 22명 성명서)

 

"터럭만큼이라도 국회위상을 걱정한다면 본회의장 폭력점거부터 당장 풀라. 국회위상이 무너진 원인은 민주당의 불법 떼거리 폭력행위 때문이다."(1월 1일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 논평)

 

"폭력과 점거로 점철된 대한민국 국회는 법치와 민주주의로 회복돼야 한다."(12월 31일 이종혁 한나라당 의원)

 

3일 국회가 폭력으로 새해 첫 문을 열게 된 데는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의 압박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 농성을 '떼법'으로 규정한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부터 '법치 회복'을 내세우며 강제해산을 요구해왔다.

 

한나라당은 또 "민주당 의원들이 농성하면서 자유롭게 외식도 하고 사우나를 다닌다",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이불까지 깔고잔다"고 조롱했다. "불법 떼거리 폭력"이라는 비난도 맹렬했다. 

 

 

2004년 법사위 점거 뒤 '철로의 똥' 소리 들은 한나라당

 

하지만 한나라당도 점거 농성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7대 국회 당시 탄핵 역풍으로 과반수를 뺏긴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2004년)나 행정복합도시특별법 상정(2005년)에 저항해 국회 법사위나 본회의장을 점거한 채 '떼법'을 부린 경험이 있다. '헌법 위에 떼법'이라는 손가락질이 민주당에게만 통하지 않는 이유다.

 

17대 국회 출범 직후인 2004년 12월 8일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에 반대하며 국회 본청 145호 법사위 회의실을 기습 점거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법사위 회의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숙식하면서 무려 14일간 '항전'했다. 법사위 회의실에는 "국보법 폐지 즉각 철회하라, 나라 지키기 ○○일째"라는 펼침막도 걸었다.

 

점거 농성 덕분에 한나라당은 여야 합의처리 약속을 받아냈지만, 노회찬(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현 진보신당 대표에게서 '똥'이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노 대표는 법사위를 점거한 한나라당을 향해 "역사의 기관차는 움직여야 한다"면서 "철로에 똥이 있다고 기차가 서는 법은 없다"고 일침을 놨다.

 

같은 달 30일 한나라당은 신문법과 국보법 등 4대 쟁점법안의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막겠다며 국회의장석도 점거했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같이 밤을 새며 서로의 빈 틈을 노리기도 했다.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이불까지 깔고 잔다"고 혀를 차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그 때는 웃통을 벗거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2004년과 2008년 연말 국회 풍경은 여야만 바뀌었을 뿐 변한 게 없었던 셈이다. 

 

마이크선 자르고 CCTV 훼손하던 박계동... 사무총장 되자 '돌변'

 

지난해 12월 18일 한나라당이 국회 외교통상위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근 채 한미 FTA 상정법안을 처리하려하자 야당은 쇠망치와 전기톱까지 동원해 진입을 시도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분말소화기를 뿌리며 방어한 뒤 5분 만에 FTA 상정안을 통과시키고 유유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그 뒤 한나라당은 외교통상위 점거와 단독 상정으로 인한 파행의 책임은 지지 않고 "민주당 때문에 국회가 난장판이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3월 한나라당 소속 의원 단 4명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역사도 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이재오·배일도·김문수·박계동 의원은 '행정복합도시특별법' 상정에 반대해 법사위 회의실을 17시간 동안 기습 점거한 뒤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회의장 앞 뒤에 설치된 CCTV를 청테이프로 꽁꽁 묶어 가리고, 출입문마다 못질을 해 철저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법사위원장이 들어와 회의 진행을 못하도록 의사봉을 멀리 던져 버렸고, 마이크선마저 잘라버렸다.

 

법사위를 점거한 '농성 4인방'이 지루한 17시간 동안 뭘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농성이 끝난 뒤 회의실에서 발견된 바둑판만이 그 때의 상황을 말없이 증언했을 뿐이다.

 

농성 도중 배일도 의원은 농성 중에 보좌진을 시켜 음료수와 옷가지를 반입하려다 국회 방호원에 걸리는 '망신스러운' 일도 당했다. 배 의원은 3층 법사위 회의실에서 긴 줄을 내려 보내 음료수를 공급받으려다 방호원에게 제지당하자 "의원들이 하는 일을 왜 방해하느냐"며 막말 설전을 벌였다.

 

재미있는 점은 2005년 법사위 점거 농성으로 국회를 파행으로 이끈 박계동 전 의원이 현재 국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3년전 '점거 농성'을 벌였던 박 사무총장은 민주당 점거 농성을 '폭력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는 지난 12월 18일 외교통상위에서 벌어진 '쇠망치-소화기' 공방 뒤 한나라당 의원들은 빼고 야당의원들만 '폭력 행위'로 경찰에 고발한 장본인이다.


 

[최근 주요기사]
☞ KBS가 뺀 보신각 영상, <오마이뉴스>가 되살렸습니다
☞ [추적] 학교운영비는 교장들 친목 관광회비?
☞ [야구의 추억] 선동열보다 사랑받았던 단 한사람
☞ [1월 바탕화면] 새해 눈 많이 받으세요
☞ 소띠 해, 공짜로 쇠고기 맛볼까나
☞ 바쁜 워싱턴 지하철, 이렇게 생겼군요


태그:#한나라당, #점거 농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