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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이 신년사를 보내와 싣는다.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된다. <편집자말>
 오체투지 순례길에 오른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순례단과 함께 17일  충남 논산을  지나고 있다.

새해 아침입니다. 오늘만큼은 덕담을 나누고 싶어서 궁리를 좀 했습니다. 하나, 옛 어른의 말씀을 새겨보는 것만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닿는 데는 잠깐이었습니다. 옮겨 보겠습니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로 여긴다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지니/ 꾸물거리는 온갖 생명들/ 이들을 먹여 다스리면/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할 것이니/ 비로소 나라가 유지될진저/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면/ 나라 태평하리"(문외한으로서 약간의 의역을 가했습니다만 대의를 그르치지는 않았으리라 여깁니다.)

 

신라 경덕왕 24년(765)에 충담 스님이 '백성을 편안히 할 노래를 지어 달라'는 임금의 청을 받고 들려 준 '안민가'라는 노래입니다.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 들어도 사무치는 구절,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라는 대목에서 왜 이리 가슴이 저리는지요. 이 노래를 낳은 신라 경덕왕 때는 천재지변이 잦은 데다 외척 중심의 국정으로 도무지 '안민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온갖 위기가 난무하는 현 시국과 참 많이도 닮았습니다. 새해를 맞는 이 아침에도 따듯한 밥상을 마주하지 못했을 이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 '백성'도 오늘의 '국민'도, 어느 하루 '답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백성은 온갖 공물과 노역을 바쳤고, 대부분의 국민은 다들 제 자리에서 땀 흘려 일하고 세금 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관료, 국회의원, 종교인, 언론인, 지식인…, 소위 기득권층이라 할 이들은 과연 '답게' 살고 있는지요? 이런 물음 앞에서 우리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여당 대표가 '전쟁터'라고 일컬은, 언필칭 'MB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국회의 모습만으로도 현실은 충분히 서글픕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궁핍이라고 말할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오늘 우리 사회의 우환이 오직 '돈 타령'으로 일관하다 비롯됐다는 점에 대한 근원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성찰을 하는 데는 게으릅니다. 얼마를 더 벌고 써야 만족할 수 있을는지요. 그리되면 진정 행복하겠는지요. 결코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은 온 나라를 공사판으로 만들어 돈만 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사 그렇게 해서 경기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그 혜택은 일부에 국한될 것이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아니라는 점은 세계 최강국 미국의 현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옹색하기 짝이 없는 '절차적 민주주의'마저도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수적 우위와 물리력으로 방망이 세 번 두드리면 법을 세우는 것으로 오해하는 정부와 여당, 아이들 병정놀이도 이런 식은 아닙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이 과연 '민의'를 대변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묻기조차도 부끄럽습니다.

 

삼권분립이라는 나라살림살이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구 탓을 할 일이 아니라 먼저 국가 권력이나 정치, 경제 영역의 부당성과 비합리성을 주권자 스스로 고쳐 나가는 데 존재 의의를 두는 '시민단체'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십시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폭력적 정부, 무능한 국회의 허물을 따져 묻는 일도 '남 탓' 노릇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시민단체는 자신의 자리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요. 최근 '환경운동연합'의 과오가 그 답이라면 너무 냉정한 평가일까요. 떳떳하게 일부 탐욕스런 '보수'를 비판하기에는 모자랍니다. 마찬가지로 '보수' 집단은 정녕 지켜나가야 할 보수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지요. '강부자'로 상징되는 보수층의 모습이 역시 답이 될 것입니다. 설마 이런 얘기가 양비론으로 들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제 자리에서 '답게' 살고 있는가를 성찰하자는 것입니다.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차마 오늘만큼은 대통령을 거론하고 싶지 않았습니만, 제왕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 '답게' 국론분열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논객들이 국론분열의 근원을 대통령으로 지목합니다. 틀린 지적이라고 보진 않습니다만 조금 관점을 달리하자면, 대통령 혼자 국론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0퍼센트에 못 미치는 지지율만을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강조했던 '법치'는 순종과 맹종의 강요임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로 포장하여 '대운하'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정녕 국민의 뜻은 안중에 없는 듯한 행동입니다. 국론 이탈입니다.

 

당면한 경제 살리기도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혼자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리시기를 간곡히 권합니다. 우리는 선지자 같은 대통령, 신에 가까운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현명하게 나라를 이끌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수경 스님.

지난 여름의 '촛불' 국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역동적이고도 주인의식이 강한 한국인의 모습을 봤을 겁니다. 똑똑한 국민을 통치의 기반으로 삼으십시오. 부디 열린 마음으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민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은 그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내할 것임은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반대라면 파국적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역시 역사가 가르쳐주는 바입니다.

 

불교에서는 번뇌조차도 깨달음의 씨앗으로 여깁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한 해 동안 국정 운영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위악적 몸짓, 뒤집힌 꿈으로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려는 한바탕 연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꿈꾸다가 모두가 고통 받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해는 소욕지족의 삶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꿈꾸어 봅니다. 소처럼 순한 눈망울로 서로를 응시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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