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제
선거 앞둔 가자지구, '피의 폭격' 악순환
[분석] 이스라엘 총선·팔레스타인 대선 임박... 양측 국내 정치가 상황 악화시켜
08.12.29 10:31 ㅣ최종 업데이트 09.01.01 15:18 정욱식 (cnpk)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폭격한 27일(현지 시각),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쓰러진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고 있다.
ⓒ AP 연합뉴스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12월 27·28일에 걸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맹렬히 폭격해 1천명 안팎의 사상자를 냈다. 이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 규모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근에 수천명의 병력을 배치해 지상작전까지 감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맞서 하마스 등 무장세력은 "지옥의 문을 열어 피 한 방울 남을 때까지 보복하겠다"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밝히고 있다. 6개월에 걸친 이스라엘-하마스의 짧은 휴전이 양측의 전면전으로 전환되는 분위기이다.

 

이스라엘 군사작전의 핵심 목표물은 하마스의 군 시설 및 경찰서, 그리고 정부 건물 및 언론사 등으로 하마스의 기반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데 맞춰졌다.

 

27일 공습 직후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 지구 민간인들은 이스라엘의 적이 아니다"며 "민간인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도 하마스와 일반 민간인을 구분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공격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보복이자, 로켓 공격을 중지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어린이와 여성 등 민간인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교전 상식 가운데 하나인 '비례의 원칙'을 이스라엘이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대량살상', '전쟁범죄'로 규정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 온건한 대처는 '정치적 자살'?

 

이처럼 6개월간의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이 전쟁으로 귀결된 데에는 양측의 국내 정치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스라엘의 총선과 팔레스타인의 대선이 임박했기 때문에 양측 강경파가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총선은 2009년 2월 10일 예정돼 있고, 팔레스타인의 현 대통령인 마무드 아바스의 임기는 일단 2009년 1월 9일로 끝난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맹폭 목적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 중단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목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자 지구 공격이 오히려 하마스의 무장투쟁 및 이스라엘 공격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의 의도가 '총선 승리'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자 지구 공격이 있기 전까지 강경 우파이자 야당 지도자인 벤자민 네탄야후는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섰다. 그는 특히 하마스의 로켓 공격 직후 이스라엘 남부 도시를 방문해 하마스에 대한 보복 공격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일부 언론 역시 이스라엘 인구 8분의 1이 하마스의 로켓 공격 사정거리 안에 있다며 강경론을 부추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정부 여당이 하마스에 온건하게 대처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우려한 올메르트 정부가 가자지구에 맹폭을 가했고, 공습 직후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갔다고 영국의 BBC가 28일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파타당의 갈등

 

중동과 서방세계 일부 언론이 이스라엘 공습의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면, 이스라엘 언론과 전문가들은 하마스의 정치적 계산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하마스가 휴전 종료 직후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로켓 공격을 감행한 데에는 팔레스타인 권력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수반인 마무드 아바스의 임기는 2009년 1월 9일로 끝난다. 아바스가 소속된 파타당은 하마스가 새로운 선거에 동의하기 전까지 아바스의 임기를 연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고, 하마스는 1월 9일 이후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이렇듯 하마스-파타당의 견해가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교전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주둔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이에 따라 하마스의 대(對) 이스라엘 강경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또한 양측의 교전은 파타당으로 하여금 하마스가 제시한 대선 조건을 수용하게 만드는 압박 효과도 있다고 중동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맹폭 배경에 팔레스타인의 정치 과정에서 하마스의 위세를 꺾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 이면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켜 파타당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는 하마스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며,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 작전에 나섰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가자지구 봉쇄 해제했더라면...

 

그러나 이스라엘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이번 공습은 하마스가 아닌 아바스와 파타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민간인들이 무참히 살해된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파타당 통제 하에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반(反) 이스라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다른 중동 국가에서 반 이스라엘 감정의 확산은 하마스에게 큰 힘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습의 책임을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돌리고 있다. 미국도 하마스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로 생필품 난을 비롯한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왔다. 이에 따라 하마스는 휴전 연장 조건으로 이스라엘의 봉쇄 해제, 즉 양측의 무역 재개와 인적 왕래를 조건으로 제시했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하마스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하마스의 영향력을 키워준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자 하마스는 로켓 공격으로 응수했고, 이스라엘은 수백톤에 달하는 폭탄과 미사일을 가자지구에 투하했다. '피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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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cnpk)
저는 평화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언론비평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