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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 관을 얹은 것 같은 모습의 성주암 대웅전
 지붕에 관을 얹은 것 같은 모습의 성주암 대웅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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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한데도 등산객들이 많네”

“그러게 말이야, 요즘 도시인들에게 건강관리와 여가활용의 최고 인기 스포츠가 등산 아닐까? 더구나 오늘은 주말이잖아?”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더구나 요즘처럼 살기 어려운 때는 더욱 그럴 거야. 등산만큼 비용이 적게 드는 것도 없잖아? 답답한 가슴 시원하게 풀어주는데도 등산이 최고지.”

12월 27일 토요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 입구는 등산객들로 붐볐다. 한두 명씩 부부와 가족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친지들끼리 함께한 등산객들이 많았다. 대부분 웃고 떠드는 모습이었지만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너나없이 어려운 살림살이에 우울한 소식들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우리 친구들도 본래 6명이 함께 하기로 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참하여 3명만 함께한 산행이 되고 말았다. 전날부터 몰아친 한파로 기온은 낮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고 햇볕이 좋아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었다.

서울대학교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오르는 등산로 입구 길에는 산을 향한 발걸음이 분주했다. 포근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낮은 기온 때문에 천천히 걸으면 금방 추워졌다. 추운 날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빠르게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원지역을 지나 ‘무너미’ 고개로 오르는 길 3거리에서 우린 오른편 성주암쪽으로 길을 잡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너미 고개 쪽을 향했다. 개울을 건너자 급경사길이다. 추위 때문에 오스스하던 몸에 금방 땀이 배어난다.

새로 지은 성주암 요사채와 까치집
 새로 지은 성주암 요사채와 까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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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에서 만난 바위
 등산길에서 만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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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거리며 잠깐 오르자 저만큼 위에 성주암이 나타났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절집은 말끔한 새집이다. 더구나 단청을 하지 않은 모습이 화장하지 않은 소녀의 얼굴처럼 깨끗하고 상큼하기까지 하다.

성주암이 새집을 지었고 까치도 새집을 짓고 있어요

입구에 올라보니 건물이며 마당과 입구 계단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새로 지은 건물 두 채는 단청을 하지 않아 중앙의 단청한 대웅전과 좌우 대칭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 여기서 바라보니 꼭 대웅전 건물이 관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저 바위들 말이야”
“어, 정말 그러네.”

정말 그랬다. 마당가 대웅전 정면 앞에서 바라본 모습은 정말 대웅전 건물이 멋진 관이라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대웅전 뒤편 낮은 봉우리에 있는 바위모습 때문이었다. 그 바위들이 대웅전 건물 위에 얹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 지은 요사채 건물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나무는 잎을 모두 떨어뜨린 벌거숭이어서 나무 꼭대기에 있는 까치집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런데 때마침 날아온 까치부부가 지난여름에 새끼를 쳤을법한 옛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집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겨울이 너무 따뜻해서 까치들이 벌써 봄이 가까이 다가온 것으로 착각이라도 하고 있나보았다. 그런데 튼튼해 보이는 멀쩡한 옛집을 버리고 새집을 짓다니. 어쩌면 까치들도 새로 지은 말쑥한 새 절집을 보고 셈났는지도 모르겠다.

바위절벽 사이에 낀 바윗돌
 바위절벽 사이에 낀 바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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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 능선길 저 멀리 바라보이는 서울대학교와 시가지풍경
 칼바위 능선길 저 멀리 바라보이는 서울대학교와 시가지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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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암을 둘러보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짝 마른 산길이 보송보송 싱그럽다. 이쪽은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코스가 아니어서 먼지가 풀썩이지 않아 좋았다. 아직은 낮은 지역인데도 곳곳에서 멋진 바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관악산은 바위산이네요. 이런 곳에도 이렇게 멋진 바위들이 많을 걸 보면….”

뒤따라 올라온 50대 등산객이 기묘한 모양의 바위를 보며 감탄을 한다.

“여긴 관악산이 아닌 걸요, 관악산은 저쪽입니다”

일행이 산 이름을 바로잡아 준다.

“아니 이 산 모두 관악산 아닙니까?”

“관악산은 저 서울대입구 골짜기에서 무너미 고개로 넘어가는 길이 경계선이지요. 길 저쪽 연주대가 있는 곳이 관악산이고 이쪽은 삼성산입니다.”

다른 등산객은 그러느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올라간다.

능선길에 올라서자 다른 길을 따라 올라온 많은 등산객들이 합류하여 길이 복잡해진다. 주말을 맞아 산을 찾은 사람들은 산 아래 입구 곳곳을 통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칼바위능선 근처에 이르자 등산객들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다.

밧줄을 붙잡고 바위계곡을 오르는 등산객
 밧줄을 붙잡고 바위계곡을 오르는 등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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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고 버너로 고기요리도 하는 등산객들
 담배 피우고 버너로 고기요리도 하는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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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네요?”

밧줄을 붙잡고 바윗길을 오르는 곳에서 정체가 되자 사람들이 더욱 많이 불어났다.

“요즘 세상이 너무 답답하잖아요? 경제도 그렇고, 정치도 그렇고, 이렇게 답답할 땐 산이라도 올라야 속이 풀리니까 더 많이 올라오는 것 아니겠어요?”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반문한다. 그는 누구에겐가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세상이 답답하고 마음도 답답해서 산에 오릅니다.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깃대봉에는 몇 사람이 올라 땀을 들이고 있었다. 해가 높아지고 바람이 잔잔하여 힘껏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해서 산을 찾았다는 등산객도 깃대봉에 올라 배낭을 벗어 놓고 앉았다.

날카로운 바위봉우리로 이어진 칼바위능선을 지나자 다시 평평한 길이 나타났다. 등산로 옆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간식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자 곧 뒤따라온 다른 사람들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잠시 후 코를 자극하는 담배냄새에 앞쪽을 바라보니 앉아서 과일을 나눠먹고 귤껍질을 옆에 버린 두 남자 중 한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산에서 담배피우는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저사람 저거 산에서 담배를 피우네. 내가 한마디 해줄까?”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일행 한 사람이 나서려고 한다.

“그냥 내버려 둬, 공연스레 젊은 사람들과 시빗거리 만들지 말고, 우리에게 단속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일행이 말린다. 우리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일어나 등산로로 나서는 것이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의 담배피우는 것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곰바위와 잔설이 남은 바위너덜길
 곰바위와 잔설이 남은 바위너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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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공터에 빙 둘러 앉아 술과 음식을 먹고 있는 남녀 7~8명의 사람들을 보니 그들은 버너에 불을 피우고 고기요리를 끓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자세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망설임이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눈치가 전혀 아니었다.

산에 올라 담배 피우고 음식 조리하는 사람들

“에이! 그만 가자고, 오늘은 못 볼 것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는구먼. 이 산에는 쓰레기도 왜 이렇게 많아?”

이날도 쓰레기를 주우면서 산을 오른 일행이 먼저 일어나자 다른 사람들도 벌떡 일어났다.

“정치를 봐도 그렇고, 경제를 봐도 그렇고, 산에 오르니 꼴불견까지 마음을 상하게 하는구먼.”

훠이훠이 걸어 삼막사로 향했다. 나지막한 산등성이 하나를 넘자 삼막사로 가는 넓은 길이 나타났다. 조금 내려가노라니 활처럼 휘어진 입구 돌계단 길 양쪽에 대리석 기둥마다 사람이름을 새긴 반월암이 나타났다. 작은 암자 앞 길가에 서있는 부도탑과 세 개와 돌무더기들이 이채롭다.

조금 더 내려가자 불경소리가 쩌렁쩌렁 산을 울린다. 삼막사였다. 축대 위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삼막사는 이제 막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마당가 장독대 위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이 하나 둘 그릇을 내려놓고 있었다.

삼막사 천불전과 식래기를 걸어말리는 삼성당
 삼막사 천불전과 식래기를 걸어말리는 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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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보다 조금 앞서 올라간 등산객 한 사람이 배식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오늘은 초하루여서 신도들에게만 점심공양을 한다고 한다. 돌계단을 통해 법당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시래기를 주렁주렁 엮어 문 앞에 걸어 말리는 삼성당이었다.

삼성당 오른편에 있는 건물은 법당 안에 1천개의 불상이 있는 천불전이었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대웅전은 특이하게 육관음전(六觀音殿)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었다. 삼성당 뒤편으로 돌아가자 축대 위에 수많은 작은 불상들이 놓여 있는 아래, 거북 샘은 물이 말라 있고 여래좌상에 던져 붙여 놓은 동전 몇 개가 미소를 짓게 한다.

경내에 있는 남근석과 여근석으로도 유명한 삼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다. 서기 677년(문무왕 67)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그리고 윤필등이 암자를 짓고 수도를 한 것이 이 절의 시작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삼막사라 지었고, 산 이름을 삼성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신라 말기에 도선대사가 중건하고 관음사라고 불렀는데 대웅전을 육관음전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 태조가 낡은 이 절을 중수하고 다시 삼막사로 고쳤다.

신도들이 점심을 먹고 난후 설겆이하는 봉사자들
 신도들이 점심을 먹고 난후 설겆이하는 봉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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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는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한양 천도와 때맞춰 절을 중수하고 국운이 융성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이곳 삼막사는 남왈 삼막(南曰三幕)이라 하여 한양 남쪽지방 최고의 거찰로 통했던 절이다.

삼막사를 둘러보고 경인교육대학 쪽으로 하산했다. 골짜기는 물이 말라 있었고 물이 조금 흐르던 곳은 추운 날씨에 얼음이 꽁꽁 얼어있었다. 성주암에서 시작한 산행은 칼바위 능선과 삼막사를 거쳐 경인교육대학까지 3시간 30분이 걸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주암, #칼바위 능선, #삼막사, #담배,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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