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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찬양·고무)으로 지난 1월29일 구속되었다 6월에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김형근(49세) 전 군산 동고등학교 교사의 제15차 공판이 22일(월) 오후 2시 전주지방법원 3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김제에서 농사를 짓는 김 교사 부모도 참석한 이날은 피고 측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심문이 있었는데, 김 교사가 관촌중학교에 재직할 당시 교감으로 근무했던 문정수 익산 웅포중학교 교장과 김영숙 학부모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 증인1 문정수 웅포중학교 교장

 

관촌중학교 재직시절 교감으로 근무했던 문정수 교장은 가출한 학생이 전주 티켓다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김 교사가 데려다 학교에 다니게 하는 등 비리청소년 지도와 남다르게 열적정인 교육관을 중심으로 증언했습니다. 

 

 

문 교장은 2004년도 담임 배정에서 제외당한 김 교사의 항의를 받아들여 교장을 설득해서 담임을 배정했던 일과 담임을 맡은 후 2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자율학습은 물론 일요일에도 학생들을 등교하게 해서 모자란 과목을 중심으로 지도한 사실도 밝혔습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심지어는 추석 연휴에도 추석 당일만 쉬게 하고 학교에 나오도록 해서 자율학습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학생들이 결석하면 전화로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추밭에서 일하는 부모를 찾아가 상의하고, PC방, 유흥가 등을 배회하는 학생을 데려온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석에 앉아 있던 김 교사가 “만약 제가 무죄로 풀려나면 교사로 받아주시겠느냐?”라고 묻자 “만약에 무죄로 풀려난다면 통일교육은 그만두고 아이들의 진정한 교육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해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문 교장은 김 교사의 전교조 활동에 대해 “재직 당시에는 정확히 몰랐고 나중에 알았다”면서 “0교시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늦게까지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몇 차례 있었던 회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던 김 선생님은 이상보다 현실을 중요시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주위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 학생과 부적응아들을 자기 반으로 데려다 교육을 시켰고, 성적이 향상되니까, 3학년 주임을 맡았던 2005년에는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김 선생님 반으로 배정해달라고 요구를 해왔는데 모두 받아들이지 못해 고민했던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문 교장은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던 2003년에 반전운동이 벌어져서 깜짝 놀라 김 선생님 카페에도 들어가 몇 개의 글을 보고 건의도 하고 상의도 했는데, 교직경력 32년 동안 저렇게 열정을 가진 선생님은 아직 못 봤습니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부모들이 저렇게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못 봤고요. 대한민국 학교에 김 선생님 같은 분이 한두 분씩만 있어도 교육 현실이 좋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증언을 마쳤습니다.

 

반대심문에 나선 검찰은 주체사상 주입 및 친북활동을 거론하며 '북녘 친구들에게 통일편지쓰기'와 '통일산악회' 활동, '통일을 위한 일일이성(一日二省) 운동', '통일화랑대'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변호인 석에 앉아 있던 김 교사는 검찰의 유도성 질문을 지적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가며 열린교육을 했다”며 “6·15정신을 따라 통일교육을 실시한 저를 탄압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 교육자들의 인권과 양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검찰이 문제 삼는 ‘통일편지 쓰기’, '일일이성 운동', ‘8·15대축전 참가’ 등은 학생들의 자율로 이루어졌으며, 이적표현물 소지죄 위반으로 제시한 각종 강의안과 연수 자료는 대부분 공식 문건입니다. 검찰이 나를 죽이려고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라며 분개했습니다.

 

# 증인2 김영숙 학부모

 

딸 둘이 관촌중학교를 졸업한 김영숙 학부모는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행사이기 때문에 ‘통일편지 쓰기’와 ‘통일산악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며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 참여했지만 아이들 사고방식이 자신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배우는 게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주도한 통일운동은 곳곳에서 표창을 받았고 전북 교육청에서 통일시범학교로 지정할 정도로 모범이 되었으며 학부모들도 자부심을 느끼며 자녀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김형근 선생님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산악회 활동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느냐는 질문에는 중학생 3천원, 고등학생 5천원, 학부형 1만원의 회비를 냈는데, 농사일로 바쁜 학부모들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주어 그 돈으로 행사를 치렀다며, 적극적으로 활동한 학부모가 20여명 되는데 전교생이 200명도 안 되는 농촌인 점을 감안하면 참여율이 높다고 생각되어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숙 학부모는 ‘통일산악회’와 ‘북녘 학생들에게 편지 쓰기 운동’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다 한꺼번에 해버리면 정리하기가 어려우니 다음 질문에 말해달라는 판사의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6·15정신으로 북녘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쓰기 결과는 무엇보다 댓글 한 줄도 어렵게 쓰던 아이들 문장력이 놀랍게 높아진 점이라며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리본을 달고 다닌 것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검찰에서 주장하는 반국가 활동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영숙 학부모는 검사가 ‘우리민족끼리 통일하자’는 말은 남한과 북한에서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다고 하자 황당했는지 “우리 학부형과 학생들은 6·15정신을 따랐고 실천했을 뿐이지 북한의 대남노선이나 사상을 추종하는 체제 전복세력이 아닙니다”라며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검사가 카페에 들어가 보니까 빨간 색이었던 우체통이 어느 날부터 파란색으로 바뀌었던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다그치자 “우체통은 원래 빨간색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어린 학생들이 오죽했으면 우체통 색깔까지 바꿨겠습니까”라고 해서 쓴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증인심문을 마친 김영숙 학부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회문산에서 구호를 외쳤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모두 허위이고 장기수들이 관촌중학교를 방문했을 때 열렬히 환영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며 김 교사의 구속으로 평화롭던 마을에 신뢰가 깨지고 정적이 감돈다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재판이 끝나자 김 교사는 1년 가까이 이어져온 재판 과정에서 느낀 불만과 우려를 판사에게 건의하는 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검찰은 총 13인의 증인(대공분실 6명+국정원 3명+이동호 1명+추가 3명)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피고인 측에서 신청한 증인은 재판장님께서 그 수를 제한하면서 아주 적은 수만으로 끝을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둘째, 검찰 측 증인 중 피고(김형근)의 문건을 이적이라고 감정한 제성호, 유광호는 3차례 넘게 증인신청이 되었으나, 본인들의 불출석으로 증인으로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법부를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는데 재판부는 그냥 넘어가고 있습니다.

 

셋째, 손수레로 가득되는 검찰의 증거목록은 재판부에서 검토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이제 제가 반박 증거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분량이 검찰 못지않습니다. 재판부도 힘들겠지만 저도 힘이 듭니다. 재판장님께서 죄가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면 그 부분은 빼고 죄가 되는 부분만 자료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반박하겠습니다. 

 

넷째 컴퓨터 파일을 검찰 측 의견대로 전부 증거를 채택해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발행 날짜와 작성날짜가 다르고 컴퓨터에 접속할 수 없는 상황이 명백함에도 전부 증거로 채택되고 소명하라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김형근 교사의 항의에 판사는 어려운 법적 용어를 써가며 검찰 측 증인과 피고인 측 증인을 단순한 숫자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 경중도 다르다며 제성호, 유광호 증인 출석 문제는 대답할 가치가 없다며 무시했습니다.

 

검찰 측의 황당한 질문에 방청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리자 한 번만 더 웃으면 비공개로 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방청객들의 입을 다물게 했던 판사는 김 교사의 항의를 무시하면서도 증거 자료를 제출하면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제출할 자료가 있으면 모두 제출하라고 말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만난 문규현 신부

 

재판이 모두 끝나고 만난 문규현 신부는 ‘오체투지’를 하느라 2회만 빠지고 재판을 계속 지켜봤다며 “여럿이 끈기 있게 꾸는 꿈은 현실이고 혼자 꾸는 꿈은 개꿈”이라며 각지에서 찾아온 손님을 보고 감동한 듯 “이렇게 많은 통일꾼들이 살아 숨 쉬고 있으니 통일의 방정식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 신부는 어느 날 갑자기 평양행 티켓을 들고 북녘을 방문하고 돌아와 구속되어 통일의 열기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문익환 목사님은 분단 44년 만에 통일을 본 분이라며 그가 자주 했던 “나는 통일을 봤어, 통일은 다 됐어!”를 되뇌었습니다.

 

문 신부는 이어 수구 반통일 세력이 정권을 잡았으니 더 뒷걸음질 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 통일은 우리가 열어가는 것이고 꿈도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니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면서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자며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16차) 재판은 2009년 2월2일 오후 2시 전주지방법원 제3호 법정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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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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