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체육계의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체육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나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하지만 운동만 하던 관성이 쉽게 바뀌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용한 변화'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3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이번이 그 마지막 회다. [편집자말]
@IMG@

"강호의 고수들이 다 모이셨네요."

안민석 민주당 의원(국회 문화체육관광포럼 대표)의 소개대로 학교 체육 변화의 전선에서 활약하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학생 운동선수들에게 적용할 최저학력제의 내용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다.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학생 선수 최저학력제 언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각자의 경험과 지혜를 풀어놓으며 함께 머리를 맞댔다.

간담회를 개최한 안민석 의원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최저학력제 성적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학생 선수들도 일반 학생들처럼 전과목을 평가 대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별도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평가를 할 것인가 등 다양한 쟁점들이 있다"며 "오늘 간담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이런 자리를 만들어서 아이디어를 모아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체육계와 정치권에서는 최저학력제 도입을 위한 법안 마련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포럼은 내년 2월 국회 차원의 공청회를 열고 최저학력제를 포함한 학교체육법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태룡 체육과학연구원 박사가 주제연구 발표를 맡았고 서병윤 대한검도회 전무이사가 검도연맹의 최저학력제 실시 경험담을, 최철영 대전교육청 장학사가 대전지역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운동선수를 위한 방과후 학교 사례를 발표했다.

이밖에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 임번장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송기룡 대한축구협회 부장, 김성철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 정상익 교육과학기술부 장학사, 정재용 KBS 기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함께 나눈 경험담과 아이디어를 요점별로 정리해 봤다.

국내외 공부하는 운동선수, 어떤 사례가 있나

[한태룡 체육과학연구원 박사] 일본과 미국의 예

"일본은 1989년 이후 문부성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지속적인 조치가 이루어져 왔다. 초등학교의 경우 대외경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중학교는 지역단위의 대회에만 출전하고 전국대회 출전은 1회로 제한했다. 고등학교의 경우만 전국대회 출전을 2회로 허용했다. 지방자치단체 연맹은 단위 학교 운동부의 편법적 운영에 대한 처벌 및 징계권을 부여 받았고 종목별 협회는 일본학생야구헌장과 같은 독자적 헌장 제정 후 강력하게 시행했다. 이바라키현 츠쿠바시 소재 메이케이 고등학교는 11개 운동부에 전교생의 60%가 소속돼 있다. 정규 수업 이후 훈련에 들어가고 연습은 1일 2~3시간, 주 4~5회 실시한다. 방학에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연습한다. 학업 성적이 떨어지면 면담후 보충수업 대상자로 선정돼 대회 및 훈련에 불참하고 있다. 합숙 훈련도 연 3회, 총 10박 정도다.

미국도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학습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전국 고교 스포츠연맹체라고 할 수 있는 NFHS(National Federation of State High School Association)는 학습권 보장을 위해 종목별로 고교생에게 적합한 자체 규정을 만들어 소속 학교에 강제하고 있다. 시즌 개최 전학기를 이수하고 최소 과목평균 2.0 이상 선수만 공식 경기에 참여하고 있으며 시즌 기간도 야구의 경우 70일, 농구와 풋볼의 경우 76일로 정해 비시즌 기간동안 공식 연습을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특히 예외적으로 3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는 주말에 개최하도록 하고 선수들은 최대 25경기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위반시에는 최소 2500달러이상의 벌금과 챔피언십 참가권을 박탈하는 징계를 받는다.

외국은 이처럼 운동부 활동에 대한 교육적 적합성 및 학생 신분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학생 선수에 대한 광범위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고 있다. 운동부 운영원칙 및 철학, 경기 및 연습의 규정, 출전 규정, 위반시 처벌 규정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규정체제다. 최저학력제는 많은 규정중 하나일 뿐이다."

[KBS 시사기획 '쌈' 정재용 기자] 성공적이었던 연세대 농구부의 6개월 실험

"프로그램 준비하면서 농구부 선수들의 최저학력 기준을 정했다. 6개월 이후 평점 4.3만점에 1.75를 받지 못하면 다음 학기 경기 출전하지 못하고 수업 결석일수가 3분의 1 이상이 되면 일반 학생들처럼 F학점을 주도록 했다. 선수들에게는 많이 힘든 과정이었다. 제작진도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선수가 나올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치를 넘었다. 성적도 평균 2.7 이상이 나왔고 3.5 이상 나온 학생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처음엔 공부한다고 운동시간이 줄어서 좋아하다가 나중엔 공부하면서 운동량도 다 채우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처음으로 내가 학생이 됐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학교 차원에서 시행한 것은 간단한 것이었다. 아카데미 어드바이저가 선수들의 수강신청을 받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표를 조정해줬고 이 어드바이저는 코치나 감독에게 지속적으로 선수의 수업참여도, 과제물 제출 여부, 시험 성적 등을 보고했다. 학업에 문제가 있는 선수에 대해서는 특별 관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농부부 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줄 수 있는 튜터 제도를 도입했다.

이런 것들은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별다른 비용없이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6개월간의 실험을 마치고 연세대 5개부 감독들이 모두 모여서 다른 운동부들도 농구부처럼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전임 총장이 물러나면서 이것을 제도화하지 못했고 관심이 사라지니까 과거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코치나 감독의 의지만 가지고는 할 수 없고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병윤 대한검도회 전무이사] 이미 2003년부터 시작한 최저학력제

"우리나라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의 상당수는 자기 이력서나 공항의 출입국 카드도 혼자서 못쓰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검도회에서는 '공부하는 검도선수 만들기'를 캐치프레이즈로 2003년부터 최저학력제를 시행했다. 당시 대의원 대회에서 석차기준으로 전체 학생중 70% 안에 들지 못하면 경기출전을 금지하려고 했는데 반발이 거셌다. 그래서 90% 수준으로 완화했고 중학교에서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착되는 데 5년이 걸렸다.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은 따로 시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고등학교는 입시문제가 걸려 있어 최저학력제를 시행하기가 어려웠다. 학부모들의 반대가 굉장했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못해서 검도라도 해서 대학가려고 하는데 왜 검도까지 못하게 하느냐는 항의가 많았다. 학교 선생들도 운동부가 수업에 들어오면 방해된다고 수업에 들어간 아이들도 내쫓았다. 하지만 제도가 완전히 정착된 중학교에서는 선수들의 학습태도가 좋아 교사들과 일반 학생들의 반응이 아주 호의적이다. 선수들이 공부에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도록 코치나 감독들이 동기부여를 잘하고 학부모들을 잘 설득하는 게 성공에 필수 조건이다."

[최철영 대전교육청 장학사] 운동선수 맞춤형 방과후 학교 "반응 좋아요"

"2007년 6월 초등학생 78명을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운동선수들을 위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초등학교 8개 지구와 중학교 4개 지구에 총 320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주 4일간(월화목금)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씩, 국어 수학 영어 논술 4과목을 담당 강사가 가르치고 있다. 운동 선수라도 학생들의 학업 수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수준별 교재(난이도 상중하)도 따로 제작했다.

2007년 운영 성과를 평가해보니 아이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의 경우 국어 평균이 71.2점에서 85.1점으로 오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공부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공부하려는 자세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는 평가다. 학부모들도 만족도가 높았다. 방과후 학교에 또 보내고 싶다는 학부모가 95%에 달했다. 방과후 학교를 확대하자는 요구가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

@IMG@

한국형 최저학력제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한태룡 연구원] 최저학력제 지지 여론이 대세

"학생선수 4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저학력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4.7%로 불필요하다는 응답 17.5%보다 월등했다. 적극적인 반대가 상당히 적고 소극적 찬성이 대세였다. 제도 도입에 대한 호의적인 현장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우선 합리적인 기준 성적이 설정되어야 한다. 현장지원 체계도 필요하다. 야간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조명 시설을 설치하고 우수 사례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해야한다. 특히 미국의 종목별 시즌관리 규정과 선수의 출전 규정 및 공식 연습 규정 등과 같은 한국적 상황에 맞는 가이드 라인의 제정도 필요하다. 특히 현재 학부모들이 최저학력제에 대한 인지도와 인식이 낮은데 홍보 체계 구축도 필수다."

[임번장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수업권 보장이 선행되어야

"시도교육청은 학생선수가 원칙적으로 모든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또 상시적인 합숙도 금지해야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원칙적으로 합숙을 금지하고 중고등학교는 대회 참가 전 2주 이상 합숙을 금지해야 한다. 또한 최저학력제를 도입하는 데 있어 첫 해는 석차기준으로 96% 안에 들지 못하면 경기 출전을 금지하고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성적 기준을 강화해 최종적으로는 상위 83%내에 들지 못하면 경기 출전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 특기자 선발 시 학업 성적 반영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정상익 교육과학기술부 장학사] 학력기준 강화는 점진적으로

"최저학력제 기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2009년도에는 시범 운영으로 희망하는 학교와 종목에 한해서만 시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2010년부터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상위 95%, 2011년에는 중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상위 90%, 2012년에는 중학교 1~3학년까지 상위 85% 안에 들어야 경기 출전을 허용한다. 고등학교는 2011년부터 1학년을 대상으로 상위 95%, 2012년부터 1~2학년을 대상으로 상위 90%, 2013년 1~3학년을 대상으로 상위 85%안에 들어야 경기 출전을 허용하는 등 단계적으로 기준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실시한다고 해도 상위 70% 기준을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김성철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장] 최저학력제 하나만으로는 안돼

"지난 12월 3일 당정 협의 때 학교체육정상화를 위해 최저학력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됐다. 하지만 최저학력제 하나만으로는 학교 체육의 변화가 성공할 수 없다. 당정 협의 때 지방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밤에 운동할 수 있도록 조명시설 설치, 일선 지도자 처우 개선 등이 논의됐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모두 예산이 필요한 것들이라 최종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최저학력제는 예산이 필요없는 제도라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 초기에 최저학력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들도 모두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송기룡 축구협회 부장] 선수들에게 맞는 교과과정 만들어야

"고등학교 선수들이 가장 문제다. 고등학교에서도 운동을 한다는 의미는 프로 입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선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학생과 똑같은 과목의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의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 학생들도 사회 나와서 활용할 수 있는 과목이 많지 않은데 운동 선수에게 전 과목에 대해 공부를 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선수들에 맞는 별도의 교과 과정과 수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교재를 만들고 교사도 채용해야 하는데 과연 이것을 개별 학교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

[최근 주요기사]
☞ '오가니제이션 요리', 불황에도 대박난 그들의 요리비결
☞ "'순수한' 학부모 없다... 외부세력이 '아스팔트 수업' 조종"
☞ "또 애 맡기려고? 동생이 아니라 웬수군"
☞ "나라 말아먹지 마!" 한나라당사에 '김밥 투척'
☞ [블로그] "대통령님, 아드님부터 중소기업 보내시죠"
☞ [엄지뉴스] 비싼 승용차는 이렇게 대도 됩니까?
☞ [E노트]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 '뉴라이트' 편

최저학력제 운동선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