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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 10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사회적 갈등을 무릅쓰고 한반도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촛불 탄압, 언론장악, 좌파적출, 우파교과서 만들기 등. 이 때문에 과거 독재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오마이뉴스>는 그 전장을 진두지휘한 'MB의 남자들'을 집중 조명해봤다. <편집자말>

지난 11월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 출범 3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화합과 대한민국 선진화 시대를 위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특별 축전을 보냈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에다 정두언, 전여옥, 심재철 등 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를 했다. 이른바 여권 핵심인사들이 대거 모인 것이다.

 

이로부터 20일 후인 11월 27일 연세대에서 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의 보수를 말한다'는 주제로 열린 이 심포지엄에서 성균관대학교의 김일영 교수는 "뉴라이트는 종언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뉴라이트를 한국 보수의 '제3의 길'로 부르기에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면서 "뉴라이트는 죽었다"고 단언했다.

 

뉴라이트 종언 진단을 내린 김일영 교수는 사실은 뉴라이트의 한 축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책위원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뉴라이트가 사라져야 한다고 한 것일까.

 

우리가 뉴라이트 핵심 인사로 알고 있는 자유주의연대 출신의 신지호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뉴라이트의 생명은 지력에서 나오는데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완력을 자랑하고 있다"면서 "스스로 한나라당 밑으로 기어들어갔으니 한나라당 2중대"에 불과하다고 혹평한 적이 있다.

 

이것 역시 뉴라이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린다. 자기가 뉴라이트면서 뉴라이트를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는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하는 뉴라이트의 이면이 있다.

 

뉴라이트의 실체, 그리고 힘의 추

 

뉴라이트는 의외로 그 실체가 복잡하고 불분명하다. 바로 이런 점이 뉴라이트를 방대한 우익 집단으로 만드는 데 효과를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경쟁각을 세우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도 뉴라이트의 집회에 참석하곤 한다. 그는 지난 9월 뉴라이트 시대정신 안병직 이사장이 만나자고 했을 때 바로 응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뉴라이트 중에서 실체가 뚜렷한 3대 축은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시대정신', '한반도선진화재단'이다. 이를 각각 A, B, C라고 할 때 A는 김진홍 목사, B는 안병직 교수, C는 박세일 교수가 대표 인물이다. 신지호 의원의 자유주의연대는 B, 즉 시대정신의 하부조직이고, 앞에서 뉴라이트 종언을 선언한 김일영 교수는 C, 즉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책실장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뉴라이트에 A, B, C 3대 세력이 있는데 그중에서 B(시대정신)와 C(한반도선진화재단)가 A(전국연합)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의 뉴라이트는 지금 분열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전국연합은 우군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셋 중에서 전국연합이 가장 권력에 밀착해 있기 때문이고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시대정신의 안병직 교수만 해도 이 대통령에 대해 더러 비판을 하기도 하고 박근혜 전 대표와 제휴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는데, 전국연합의 김진홍 목사만은 오로지 이 대통령을 편들고 있다. 그는 "뉴라이트는 이명박을 위한 것"이라고 공언한 적도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명(明)라이트? 

 

지난 8월 28일 이명박 대통령은 김진홍 상임의장을 비롯한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 25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비공개 만찬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정부의 종교 차별에 항의하는 범불교대회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년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탄생을 회고하면서 "김진홍 목사가 나서서 만들었고,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치하했다. 앞서 김 목사는 인사말에서 "이렇게 초청해주셔서 좋은 밥 대접해 주시니까 고맙다"고 하면서 "지난 3년간의 묵은 체증이 싹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8월 29일자 "불심 외면한 이 대통령, 김진홍 목사와 만찬")

 

행사가 끝난 후 청와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 번도 뉴라이트 관계자들을 만나지 못해 마련한 자리"라면서 "앞으로도 비슷한 행사가 몇 번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8월 29일자 이대통령, 뉴라이트 청와대로 초청 "도와달라")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에도 뉴라이트전국연합 '송년의 밤'에 당선인 자격으로 참석한 바가 있다. 이보다 앞서 후보 시절인 2007년 8월 11일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산악회 모임에 참석하여 와이셔츠를 입고 전국연합 간부들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는 지난 대선 당시 "기업전선에서 일했던 이명박은 깨끗하다"며 이 후보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들을 감싸기도 했고, 광운대 BBK 발언 동영상이 나와 이 후보가 수세에 몰렸을 때는 "광운대 동영상은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국연합은 BBK 사건을 폭로한 김경준씨를 규탄하는 이색 촛불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통령 만들기'에서 '대통령 지키기'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한 뉴라이트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키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그들은 국회, 청와대, 정부, 공공기관들의 요직 진출 범위를 날로 확대하고 있다. 김진홍 목사는 청와대 주례 예배를 주재한다. 김진홍 상임의장의 보좌역을 지낸 이상목씨는 청와대 민원개선 비서관에 기용되었다.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은 지난 총선에 17명이나 한나라당에 공천 신청을 냈고, 그중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 뉴라이트 정책위원을 지낸 조전혁씨 등이 국회에 입성했다. 지난 7월에는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가 외교통상부 인권대사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차기 인권위원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역시 전국연합 대표인 이석연 변호사는 현재 법제처장으로 있다. 그리고 사공일 뉴라이트 교과서포럼 고문은 인수위 시절부터 국가경쟁력강화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제는 뉴라이트가 이미 명백한 정치 단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회단체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촛불시위에 반대하여 맞불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부시 방한에 반대하는 집회에 반대하여 부시 환영 애국시민연대를 발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KBS 정연주 사장 퇴진운동을 벌이면서 KBS에 대한 국민 감사청구를 내 감사원 감사를 관철시켰다. 또 그들은 국가 기록물 유출과 관련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을 고발, 전 청와대 행정관들이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이렇게 뉴라이트는 이명박 반대 세력 제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뉴라이트에 점령당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전국연합'보다 더 심각한 '시대정신'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이명박식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면 뉴라이트 시대정신은 이명박식 경제· 역사를 뒷받침하고 있다.

 

"자꾸 나더러 개발독재라고 하는데 내가 일자리 만들고 살 곳을 만들었을 때 그분들(민주화운동 세력)은 과연 무엇 하던 분들이었나. 나는 동료들이 김영삼, 김대중 씨를 따라갈 때 기업에 들어가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뤘다." (이 대통령, 2005년 6월 <미디어 다음> 인터뷰)

 

이것은 산업화의 가치를 민주화의 가치보다 단연 우위에 두는 말이다. 이것은 뉴라이트의 가치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경제 발전이 민주주의 실현의 기초가 됐다"(안병직), "산업화 덕분에 민주화가 가능했고 이제 민주화도 끝났으니 선진화로 가야 한다"(박세일) 등 뉴라이트 핵심 인사들의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난 8·15를 전후해 있었던 건국절 소동도 뉴라이트 시대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이른바 이승만 국부론, 식민지 근대화론, '위안부' 자발성론, 박정희 예찬론 등을 퍼뜨렸다. 새로 고친 역사 교과서는 뉴라이트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된 것이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고교생 역사 특강도 거의 그들이 주도하고 있다. 제성호 전국연합 전 상임공동대표는 뉴라이트에 '친일세력', '독재미화세력'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시대정신 탓이라고 말한다.(중앙일보 보도 참고) 이런 점에서 뉴라이트 시대정신의 영향력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것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뉴라이트의 제3분파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띠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들이 주로 한나라당 구파와 인연이 있어서 이명박 정부에서 다소 소외되는 면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뉴라이트의 운명, 신간회인가 일진회인가

 

2004년 11월 23일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으로 시작된 뉴라이트 운동은 1년 후인 2005년 11월 우파의 자발적 시민단체를 표방한 뉴라이트전국연합 창립으로 전국화되었다. 이후 2006년 뉴라이트재단이 따로 조직되었는데 맨 처음 자유주의연대와 이 뉴라이트재단이 연합한 것이 '시대정신'이다.

 

지난 10일 보수성향의 단체인 '선진화시민행동'의 서경석 대표는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이명박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노사모'와 같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이 뉴라이트는 이제 보수세력으로부터도 화살을 맞고 있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운 선진화 구호는 최소한 지금 상황에서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역사는 그들에게 선진화의 주체 역을 맡기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은 그다지 유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순수하지도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장 권력에 다다가 있는 전국연합 같은 뉴라이트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를 비호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시대정신이나 한반도선진화재단 같은 뉴라이트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전국연합에 대한 비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되자 전국연합은 전형적인 올드라이트인 국민행동본부(본부장 서정갑)와 연대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이합집산하고 있는 그들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지? 역사적으로 볼 때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대표적인 정치·사회단체를 든다면 1927년의 신간회(新幹會, 1927~1931)가 있다. 신간회는 당시 항일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낸 민족운동단체였다. 그들은 일제의 탄압과 좌우 분열로 4년 만에 해산했지만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일을 하여 민족운동 역량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뉴라이트에서도 바로 이 시대정신을 자주 거론한다. 그런데 뉴라이트와 달리 신간회 회원들은 개인의 영달을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

 

반면 1904년에는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 1904~1910)가 있었다. 그들은 왕실 존중,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시정 개선 등을 내세워 명목적으로는 그럴듯했지만 결국은 나라를 팔아먹은 어용 중의 어용단체로 기록되었다. 그들은 한일합병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일진회 회원들은 대부분 식민지 사회에서 영달했다.

 

뉴라이트가 21세기의 신간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일진회가 될 것인지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신간회가 되기에는 이미 때가 늦지 않았나 싶다. 다만 매국단체 일진회처럼 추악하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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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뉴라이트, #시대정신, #전국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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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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