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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시 구룡포읍에서 북쪽 연안을 따라 가면 곳곳에서 이런 과메기 덕장을 볼 수 있다.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서풍과 바닷바람이 만나 과메기를 만들어 낸다. 이 때 꽁치의 배에서 적당히 기름이 빠지면서 꾸덕꾸덕 맛있게 마른다.

옛날 겨울철, 동해안 어느 지방에 살던 한 가난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 길을 나섰다. 어느 날 해안선을 따라 걷고 있던 선비는 배가 고파왔다.

 

그러나 근처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민가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바닷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나뭇가지에 걸려 말라 죽어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너무 배가 고팠던 그 선비, '이거라도 웬 떡이냐' 하는 마음에 얼른 그 꾸덕꾸덕 마른 물고기를 나뭇가지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그 '꾸덕꾸덕' 마른 물고기의 살을 쭉쭉 찢어 입에 넣고 씹었다.

 

아~, 그런데 웬 걸……. 그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던 거였다. 선비는 한양에 가서 과거시험을 보는 중에도 바닷가에서 먹었던 그 생선의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선비, 과거시험을 본 후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날부터 매 겨울마다 청어나 꽁치를 집 처마에 널어 말려 먹곤 했다.

 

한 번 맛 들이면 겨울마다 생각나는 강한 중독성

 

 대형 과메기 덕장에서 아주머니들이 북태평양에서 잡혀 들어온 꽁치의 배를 가르고 있다. 이 과정이 과메기 생산의 첫 단계다.

앞의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과메기 탄생설화'다. 겨울에 생각나는 음식은 참 많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차가운 다락방에 꼭꼭 감춰두었다가 꺼내 주시던 시원하고 달콤한 홍시가 있고, 겨울 밤 담 너머 골목길에서 침샘을 자극하던 '메밀묵 찹쌀떡'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주전부리 말고, 전국의 뭇 주당(酒黨)들을 자극하는 멋진 겨울철 안주가 있으니,  대표적인 게 바로 과메기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소주와 잘 어울리는 겨울 안주 중 나는 과메기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래부터 과메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니, 그 반대로 한때는 과메기에 대한 안 좋은 추억도 있었다. 1990년대 초 대학생 때 겨울 어느 포장마차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고, 그 때 안주가 과메기였다. 그런데 나는 그날 안주 없이 강소주만 거푸 들이켰고, 급기야 마지막에는 뱃속에 든 내용물을 전부 확인하고 말았다. 처음 소주 한 잔을 입에 탁 털어 넣고 초고추장 듬뿍 찍은 과메기 한 점을 씹었는데, 아주 역한 비린내가 확 풍겼던 거다.

 

그 때 이후 나는 과메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10여년이 훌쩍 흐른 어느 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는 한 술집에 갔는데, 그 식당이 바로 과메기 전문점이었다. 이 때 먹은 과메기는 대학생 때 그 포장마차 과메기와는 달랐다. 나는 이 때 제대로 과메기에 꽂혔(?)고, 이후에는 일부러 그 과메기 전문점을 찾은 적도 있었다.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매년 1월 1일이면 일출을 보려는 전국 나들이 객들이 몰린다.

 호미곶 바다 속에 있는 손은 왼손, 그 맞은 편 광장에 오른손이 있어 이 두 손을 ‘상생의 손’이라 부른다.

그러다가 나는 지난해 우연히 구룡포 삼정리에 있는 작은 과메기 덕장을 알게 되었다. 작년 겨우내 나는 수시로 그 집 과메기를 택배로 주문해서 먹었다.

 

서쪽 구릉 타고 넘어온 북서풍이 과메기 맛의 비결

 

지난 12월 4일 나는 울진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포항 구룡포에 들렀다. 작년에 수시로 택배 시켜 먹었던 삼정리의 그 과메기 덕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과메기 만드는 과정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과메기 건조과정을 알기 위해 일부러 어느 특정 덕장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나는 구룡포 앞 바닷가에 가서야 깨달았다. 구룡포읍에서 북쪽 대보면까지 해안선을 따라 널린 게 과메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많은 과메기 덕장 중 가장 눈에 띄는 '진강과메기수산'에 들어갔다.

 

 한 아주머니가 배를 갈라 잘 씻은 꽁치를 건조대에 널고 있다. 이렇게 건조대에 얹힌 꽁치는 마당이나 건조장에서 2~3일 동안 마른다.

지금이 대목이라 그런지 과메기 덕장 안은 활기가 넘쳐났다. 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덕장 마당 건조대에는 배를 갈라 말리는 '배대기 과메기'가 수백, 아니 수천 마리는 족히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덕장 안 가건물에는 일꾼들이 공치의 배를 가르거나, 씻거나, 건조대에 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은 러시아 인근, 즉 북태평양에서 잡히는 꽁치로 작업을 합니다. 그렇게 들어온 꽁치를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 그늘에 말리면 '과메기'가 됩니다."

 

최정만 진강과메기수산 대표는 꽁치를 말릴 때 햇볕이 너무 강하면 기름기가 너무 많이 빠지고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한다. 최 대표는 내가 대학생 때 먹어보고 식겁했던 그 과메기는 아마도 강제로 급하게 말려 출하된 것일 거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동해안 그 긴긴 해안선의 다른 지역은 다 놔두고 왜 유독 포항의 구룡포 일대 과메기만 유명할까.

 

 구룡포 앞 바다의 과메기덕장.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과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만나 맛있는 과메기를 만들어낸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의 과메기 편을 보면 포항지사로 발령받아 내려간 신문기자(한 기자)가 과메기 맛에 푹 빠져서 급기야 직접 과메기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한다. 이 대목에서 유독 구룡포의 과메기가 유명한 이유가 짧게 언급돼 있다. <식객> 과메기 편의 주인공 신문기자는 본사 부장과의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자신이 직접 과메기를 만들어 먹을 거라며 이렇게 말한다.

 

과메기는 서민적인, 지극히 서민적인 안주

 

"한겨울에 잡힌 꽁치의 눈을 꿰어 처마에 걸어놓으면 부엌 아궁이에서 올라오는 연기에 훈제됩니다. 그러다가 밤이면 봉창으로 불어오는 영하의 바람에 꽁치가 얼었다가 날이 새어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면 다시 녹으면서 차갑고 건조한 북서풍을 맞아 꼬들꼬들하게 마릅니다. 이 때 꽁치 뱃살의 기름이 몸 전체에 퍼지면서 발효가 되면 감칠맛 나는 과메기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유독 왜 구룡포 과메기일까'에 하는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구룡포에서도 과메기의 본고장이라는 삼정리의 '한방 과메기' 덕장에 가봤다.

 

 포항 호미곶 광장에 있는 과메기 조형물. 포항시는 올해 이 과메기만으로 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의 줄기이지만 포항 동쪽에는 높은 산이 없어요. 나지막한 구릉산들이죠. 겨울에 북서쪽에서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이 낮은 산을 넘어옵니다. 그 겨울바람이 여기 삼정리 바닷가에서 해풍과 만나 절묘한 습도를 만들어내면서 꽁치를 꾸덕꾸덕 말려주지요."

 

삼정리 '한방과메기' 덕장 집 며느리 김선미씨(32)가 신세대 아낙답게 제법 논리적인 설명을 곁들인다. 서쪽 산세가 험한 영덕이나 강구의 겨울바람은 동해안 동네 집 앞 마당을 스치지 않고 곧장 바다 쪽으로 빠져나가 버리므로 구룡포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거다.

 

출장에서 돌아온 이틀째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택배 하나가 내 앞으로 배달돼 왔다. 뜯어보니 삼정리 '한방과메기' 집 며느리 김선미씨가 잘 손질한 배지기 과메기 한 두릅(20마리 40쪽)을 부친 거다. 실파에, 마늘, 생김, 배추 속까지 깨끗하게 다듬어 먹기 좋게 포장 돼 있었다.

 

이날 나는 사무실 식구들과 소주잔을 나누며 조촐한 과메기 파티를 열었다. 나는 먼저 초고추장 살짝 찍은 과메기를 실파와 마늘 등이 얹힌 김에 보쌈했다. 그런 다음 소주잔을 입에 탁 털어 넣고는 보쌈 된 과메기를 한입 가득 물었다. 그 때 구룡포 삼정리 앞 바다에서 내 입 안 가득 향긋하고 고소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과메기 건조과정

꽁치 배가른 '배지기'가 대세, 2~3일 해풍에 건조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 같은 관목어(貫目魚=두 눈이 마주 뚫려 있는 물고기)를 말린 걸 말한다. 꽁치보다 기름이 10배나 많은 청어는 말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 지금 구룡포 과메기 덕장들은 대부분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청어의 어획량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메기가 만들어져 우리 술상에 오르는 과정은 크게 서너 단계를 거친다.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제거한 꽁치를 바닷물에 씻고 있다. 이 과정은 건조 직전 단계에 해당한다.

 

1) 배 가르기-최근에는 통마리 과메기보다 꽁치의 배를 갈라 뼈를 제거한 후 말리는 '배지기' 과메기가 많다.

 

2) 세척-퍼 올린 바닷물로 배를 가른 꽁치를 씻는다. 최근에는 비린내 등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한약재를 달인 물로 세척하는 덕장도 있다.

 

3) 건조-잘 세척한 배지기 꽁치를 건조대에 걸어 자연 건조시키거나 건조실에서 인공건조한다. 최근에는 건조장 건조와 자연건조를 병행하는 대형 덕장이 늘고 있다. 건조기간은 2~3일.

 

4) 손질 및 포장-잘 마른 과메기를 종이상자 등에 깨끗하게 포장한다. 이 때 과메기의 껍질을 벗겨내는 부가작업이 추가되기도 한다.  

 

과메기 맛있게 먹는 법

배추 속잎에 싸 먹으면 더 고소한 맛

적당하게 기름기를 머금은 과메기는 초고추장에 찍어서 그냥 먹어도 그 맛이 고소하다. 그러나 배추속이나 생미역(생다시마도 좋다), 생김 등에 싸먹으면 더 맛있다. 초고추장과 쌈장은 필수. 마늘, 풋고추는 선택사항이다. 만일 껍질을 벗기지 않은 과메기라면 반드시 껍질을 벗긴 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먹는다.

 

과메기는 대형 할인마트나 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구룡포 덕장에서 직접 택배로 주문해 보는 것도 좋다. 가격은 택배비 포함 1만 5000원에서 1만 7000원 선.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과메기를 배추속이나 생김 등에 싸서 먹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낚시21> 2009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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