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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 19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이 됩니다. '경제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는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경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기업, 부동산, 금융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그동안 이명박 정부가 펴온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완료된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 모인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각 방송국의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가 완료된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 모인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각 방송국의 출구조사 결과를 확인한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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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1년 전 수많은 사람들의 탄성과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탄식이 교차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투표 성향과는 무관하게, 기대보다는 우려가 희망보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지난 1년 동안 한국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5년의 경제위기 악순환... 4년 중임제 하자

경제대통령을 자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1년 평가는 역시 경제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참 공교롭다. 박정희 '종신' 대통령 이후 우리나라의 '단임' 대통령들은 모두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취임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재임기간 중 첫 1~2년은 경기침체 내지 경제위기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전임 대통령들보다 더 운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니….

필자가 정치에는 문외한이나, 한국에서 정치 사이클과 경제 사이클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 단임 대통령은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기회는 한 번뿐이다.

더구나 첫 1~2년을 경제위기 관리하느라 허송세월(?)하고, 마지막 1년은 이른바 레임덕 기간이라고 하면,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적 구조개혁 작업은 서둘러 덮어버리고, 자신의 국정철학 실현을 위한 어젠다에 매달리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 선언과 OECD 가입 추진, 김대중 대통령의 IMF환란 극복 선언과 남북평화체제 구축 추진, 노무현 대통령의 좌파 신자유주의 선언과 한미FTA 추진 등이 모두 그런 단임 대통령들의 심리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존의 구조적 문제는 미봉한 데다 새로운 국정과제 추진에 따른 부작용까지 겹치니 임기 말에 경제는 또다시 어려워지고, 다음 대통령에게 경제위기의 유산을 물려주는 실패한 대통령이 된다.

따라서(이건 정말 아무런 정치적 의도 없이 외눈박이 경제학자가 하는 말인데)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4년 중임제로 대통령제의 구조를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연임이라는 또 한번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첫번째 기회 때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되니까….

나날이 더해가는 MB의 조급증

하여튼, 이명박 대통령도 5년 단임의 제약 하에 그리고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취임 첫해를 보내는, 전임 대통령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이명박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나 분명하게 보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따른 촛불시위 때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저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역대 정권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보다도 자녀의 건강을 더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문 '어떤 정책도 민심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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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입으로는 반성을 했는데, 그 이후로도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1년 내에 뭔가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만다는 조급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니 계속 말이 꼬인다. 어제는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했다가, 오늘은 '3월 위기설'은 괴담이라고 강변한다. G20 회의에서는 국제금융체제의 개혁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더니, 귀국 비행기 안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구조조정은 채권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가, 왜 은행들은 금리를 내리지 않느냐고 성화다. 일자리 창출에 최대 역점을 두겠다고 해놓고, 모든 공기업에 인원 10% 감축 계획안을 연말까지 제출하라고 재촉한다.

한마디로, 경제위기 극복대책과 국정과제 추진계획이 뒤죽박죽 짬뽕이다. 위기관리도 급하지만, 국정과제도 절대 양보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돌파력이다.

전대미문의 위기는 맞지만 3월위기설은 괴담?

그러나 정부정책이 위기관리와 국정과제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하면서 한국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고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적 국정과제 자체가 위기관리와 충돌한다. 법인세와 종부세 인하 등의 감세?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가 얼마나 내수진작으로 이어질지도 의문이지만, 대규모 감세로 재정기반을 허물어버린 다음에 무슨 돈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돌볼 사회안전망을 구축할지 정말 걱정이다.

금산분리 등의 규제완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보았듯이 시장만능의 규제완화 기조는 원래 시장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킬 위험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삼성의 소원수리를 위한 규제완화를 시장 활성화로 착각하는 인식 수준으로는 시장의 붕괴를 자초할 뿐이다.

대운하 건설 등의 건설경기 부양? OECD 30개 회원국 중 한국이 건설업의 부가가치 비중이 가장 높은 토건국가라는 사실은 차지하더라도,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의 전후방 연관효과와 고용유발계수가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어 경기부양 효과도 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가 '대기업의 투자 확대에 따른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서민으로까지 확산된다'는 이른바 적수효과(trickle-down effect)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발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이 케케묵은 논리가 21세기 한국경제에도 통용될 리가 없다. 산업간 그리고 대-중소기업간 연관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적수효과에 근거한 경제정책 기조는 양극화 심화를 낳고 결국 성장잠재력 자체를 잠식할 뿐이다.

둘째,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상실한 정부정책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킨다. 정부정책이 불신과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한 마당에 정부가 뭘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약이 무효다.

우선, 관료들이 복지부동한다. 내가 접해본 실무자급 정책관료들은 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년 전에 외환위기를 당했으니, 위기관리 측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 관료들보다도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면 뭐하나? 대통령과 장관이 위기관리와 동떨어진 정책목표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이들 정책결정자의 말 한마디에 위기관리 프로그램은 그냥 뒤집어진다.

이런 경험이 한두번 반복되면, 관료들은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가, 지시대로만 행동한다. 감사원이 '적극행정 면책제도'를 도입한다고 관료들의 복지부동 문제가 해소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장의 경제주체들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정부의 진정한 정책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또 장차 어떻게 움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정부의 패가 뻔히 드러난 포커 판에서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난무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요즘 정부가 입버릇처럼 옥석 가리기를 강조하고 있으나, 일단은 부실기업도 모두 끌고 간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사실상 이미 죽은 기업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다니는 강시(彊屍)경제에서는 건전한 기업도 사경을 헤매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과 장관의 오랄 리스크(oral risk)가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농담'이 회자되는 것이다.

외람되지만, '충고' 한 말씀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했다.
ⓒ 한나라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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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진심어린 제언을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이 바뀔 확률은 0%라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글이니 결론을 아니 쓸 수 없다.

현 경제위기는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문제다. 국민이 살고 죽는 문제다. 1년 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4800만 전체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이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언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바라건대,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적 국정과제들을 포기했으면 한다. 감세, 규제완화,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비준, 대운하 건설 등은 지금 당장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선진각국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국정과제들은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이었으나, 지금은 그 때와는 너무나 상황이 달라졌으니 다시 한 번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정치적 절차를 거친 이후 추진 여부를 결정하시라.

신념이든 자존심이든, 국정과제를 포기하지는 못하겠다면, 그 다음 대안은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지금은 위기관리와 국정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의 모든 정책역량을 위기극복에 집중한다는 신호를 확실하게 시장에 보냄으로써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회복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 하시고 싶은 일 하시라. 되도록이면 천천히….

포기도 못하겠고 우선순위 조정도 못하겠다면, 최소한 법대로는 해야 한다. 제발 관치는 하지 마시라. 말로는 민간자율에 맡긴다면서 뒤에서 은행의 팔을 비트는 관치금융 방식으로는 구조조정의 기간과 비용을 더 늘릴 뿐이라는 것을 10년 전에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금 미국이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투입이나 자동차 빅3에 대한 구제금융이나 모두 의회의 법률 제정 절차를 거쳐 진행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법대로'가 처음에는 답답해 보여도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법대로'는 지난 정권 인사들의 비리, 촛불시위나 사이버 악성댓글, 노사관계 등의 사안에서뿐만 아니라, 위기관리와 국정과제 수행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원칙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게 진짜 법치주의다.

마지막으로, 진짜 외람된 말씀 한 마디.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CEO 출신의 경제대통령일지는 모르겠으나, 위기시 금융정책에 대해서는 전문적 식견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이건 결코 험담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시 금융정책은 정말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걸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성공한 경제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만, 현 상황에서는 차라리 전두환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듯 하다. 전두환 대통령이 고 김재익 경제수석을 불러 "임자가 경제 대통령이야"라며 경제정책의 전권을 부여한 것이 어찌되었든 물가안정을 통해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들었듯이….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경제팀 수장으로 선임하여 위기극복을 위한 경제정책의 전권을 부여하시라. 이게 지난 1년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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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상조 기자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이며 한성대 교수입니다.



태그:#이명박, #경제위기, #금융위기, #김상조,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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