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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등산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보던 운해
▲ 인생은 등산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보던 운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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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해를 갈무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맞이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 두 달, 그리고 한 해가 되었다.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한 해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2008년 한 해는 사회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겠지만 올해는 참으로 번다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광우병 논란과 촛불시위,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사건과 불황 등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등장했고 또 혼란스럽기도 했다.

산에서 인생을 배우다

나는 산으로 자주 간다. 산이 보고 싶어 산에 가고, 산이 거기 있어 산에 가고, 산이 그리워 또 그리워서 산에 간다. 산이 들려주는 침묵의 언어, 조용히 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일 때 건네는 말을 듣기 위해 산으로 간다.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 바다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나는 늘 바다와 가까웠고 바다를 좋아했다.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산에 눈을 떴고 산을 벗하게 되었다. 어릴 때 마을 뒷산 정도야 수도 없이 올랐던 적이 많았지만, 산행다운 산행을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나는 지난 해 여름부터 시작된 남편과 함께 하는 산행은 갈수록 즐거워, 이젠 생활의 한 일부분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어려움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 앞에 어쩔 줄 몰라 주저앉거나 좌절해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더 오래 참는 법, 더 기다리는 법, 더 멀리 바라보고 한 걸음씩 천천히 에둘러 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높은 산을 한 걸음씩 올라가면서 흘리는 땀, 거친 호흡,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하지만 겹겹의 길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산정은 그보다 훨씬 더 멀리 있다는 것을 보며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

내가 초점을 맞추고 가던 길은 분명 이 길이 아닌데 싶을 때, 생각하고 계획하고 분명하다고 믿고 달려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을 상실했을 때, 얼마나 난감한가. 하지만, 내 앞에 가로막고 있는 듯한 높은 벽 앞에서, 힘겨워하며 고민하다가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여기서도 분명 내가 배워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계획하던 것과는 빗나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문제엔 또 분명한 답이 있음을 믿으며 발버둥치지 않고, 조급해 하지 말고, 바로 여기서 내가 경험하고 인내하며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등산을 한다는 것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멀리 바라본다는 것이다. 산에 가면서 어린 시절에 물속에서 오래숨쉬기를 했던 것처럼 깊은 심호흡을 연습한다. 산에 가면 크게 보이던 문제들이 작아 보인다.

힘들게 올라간 산 정상의 탁 트인 조망과 서로 이웃하여 어깨를 두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산 능선, 태고의 숨결 같은 고요함 가운데 위대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늘 새롭게 경험한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 동시에 또한 인간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산은 그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산은 침묵의 언어로 우리에게 작은 선물과 교훈을 주곤 한다. 산을 오르는 길은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

남편을 따라 처음으로 정상까지 올라갔던 산은 삼랑진에 있는 천태산이었다. 등산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힘들게 산을 올랐는데, 산에 올라올 때의 힘듦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산에 올라보아야 그 맛을 안다. 그때 이후로 시작된 본격적인 산행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산에 오르면 번다한 일상을 벗어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고 초연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등산, 그 충만한 경험

인생은 등산 설악산에서
▲ 인생은 등산 설악산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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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만나 호연지기를 배웠다. 작년(2007년) 7월 이후 남편은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던 갈멜 산악회를 둘이서 조직했다. 물론 회원은 현재 우리 부부 두 사람이다. 그동안 열심히도 산을 찾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가 본 것이 64번째니 말이다. 특히 2008년은 더욱 뜻 깊은 한 해가 되었다. 드문드문 등산을 해 왔지만 특히 지난 8월 한 달간의 긴 휴가 때는 한꺼번에 몰아서 많은 곳을 여행했고 내 생애에 있어 아주 뜻 깊은 여행이 되었다.

그것은 아주 유쾌한 경험이었다. 남편이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일하던 중 한 달이라는 긴 여름휴가에 들어간다고 했고, 한 달이라는 휴가를 준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지만 어쨌든 모처럼 얻은 한 달간이라는 휴가 기간 동안 남편과 나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 해보기로 했다. 우린 늘어난 휴가시간을 어떻게 쓸지 머리를 맛 대고 궁리했고, 한 달하고도 며칠이나 더 되는 휴가, 여행 첫 번째로 꼽은 곳은 거제도 소매물도였다.

7월 31일, 폭염 속 한가운데 있는 칠월 말, 그 뜨거운 여름날에 소매물도 섬 여행을 했다. 등산할 땐 언제나 긴 소매 옷을 입었는데 그날따라 반소매 옷을 입고 갔던 나는 불에 덴 듯한 화상을 입었고, 그 휴유증은 한 달도 훨씬 넘게 갔던 기억이 새롭다. 섬 여행을 하고 돌아온 우리는 곧 지리산을 종주, 그 뒷날 바로 덕유산 종주, 그리고 내친김에 설악산을 비롯해 강원도 일대를 돌아보았다. 제주도에서 5박 6일까지 한 달 동안의 뜨거운 여름여행은 참으로 충만한 여행이었다.

살아오면서 많은 신산을 겪었던 우리는 무엇이 소중한 것이고 가치 있는 일인지, 그리고 무엇이 값진 것인지 알아간다. 더 많은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소유의 많음이 행복한 삶과 동의어는 아니다. 동행하는 삶, 그 안에서 작은 것들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살며 배우며 살아간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산행이야 해 왔지만 한 달이 넘도록 무더운 여름을 뜨겁게 여행했던 그 추억은 즐겁고 오래오래 남을 충만한 여행 그 자체가 되었다.

함께 해서 좋은 동행이 있어 좋은 산행과 여행이었고, 함께 추억의 박물관에 차곡차곡 쌓일 추억들이 더 많아졌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마음이 유쾌해지는 값진 추억이다.

전염병처럼 떠도는 자살

다사다난했던 2008년 올 한 해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새로운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 정권이 들어섰고, 촛불 시위, 광우병 논란 등 우리 사회엔 크고 작은 이슈들과 사건과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절망과 자살이라는 단어다.

요즘은 우리나라가 자살 최고 1위의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많고 많은 소중한 목숨들이 이 세상을 저버리는 것을 지면과 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착잡한 심정이 될 때가 참 많았다. 3일이 멀다하고 터지는 사건 사고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회색빛 우리 사회와 경제의 전망 속에서 생계형 자살과 사건들이 늘어 가는가 하면 처지비관 자살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자살을 망연스레 바라만 보아야 해다.

사람들은 이젠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 것 같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전염병 바이러스처럼 스며 있는 것 같다. 어쩌다가 자살 공화국이 되었을까. 가끔 지면을 통해 보도되는 자살사건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쩌다가 한 번밖에 없는 목숨을 그렇게 허무하게 끊기까지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비롯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국민배우 최진실의 죽음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갈현동 영생원에서 탤런트 故최진실의 운구행렬이 영정을 든 동생 최진영을 따라 화장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10월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갈현동 영생원에서 탤런트 故최진실의 운구행렬이 영정을 든 동생 최진영을 따라 화장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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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해는 연예계 유명배우들의 자살과 사고와 돌연사 등으로 비극적인 사망소식이 잇따라 일어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 사건들 중에서도 유례없는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최진실의 사망소식이었다. 20년간 최정상급 배우로 사랑받은 최진실의 죽음은 너무나도 뜻밖의 사건이었고 전 국민들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날도 나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대충 다른 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다. 2008년 1월 2일 새벽, 국민 여배우요 만인들의 연인이었던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그 날 이른 아침 인터넷 신문의 톱 면에 올라있었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최진실'이라는 이름 석 자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진실이라고? 설마 배우 최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넘어갔고, 곧 다른 신문을 검색해보았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사실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내 눈으로 확인하며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도리질 쳤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사람을 다시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서 나는 그동안 한 마디의 말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잘 못 본건가, 다른 사람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다른 신문을 검색했다. 역시 똑 같은 보도가 나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그제야 배우 최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뭐라고 딱히 형용할 길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나는 신문마다 나 있는 톱기사, 이 충격적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를 접한 국민들 모두가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활달하고 악착스러운 연기를 해온 이미지 때문일까. 그렇게 약한 여자가 아닐 텐데, 도대체 하룻밤 상에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나는 충격과 더불어 슬픔에 빠져서 책상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기사를 읽어나갔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계속해서 내 볼을 타고 내렸다. 이혼 후 혼자서 그동안 두 아이를 씩씩하게 잘 키워왔던 최진실은 수많은 싱글 맘에게 적지 않은 용기를 주었을 것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또 많은 이들에게 무력함과 절망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슬픔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재기를 꿈꾸었고, 어렵게 또 그렇게 해 왔던 그녀의 돌연한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또 아직도 우리사회에 여자가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치는 힘들고 어려운 현실인지를 알게 했고, 장난으로 던진 돌이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고,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대배우 최진실의 죽음은 전 국민의 슬픔이었다. 나는 3일 넘게 믿을 수 없는 최진실의 보도를 접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그렇다고 내가 배우 최진실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것이 언제나 가깝게 느껴지는 친숙한 배우였다. 우리는 과거이든 현재든, 그녀의 연기를 보고 웃고 울면서 또 세월을 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눈물, 콧물 흘리다 못해 코를 탱탱 풀어가면서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너무도 가여워서 울었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창창한데 그 한 목숨을 얼마나 괴로웠으면 제 한 목숨을 스스로 버렸을까. 너무도 가여웠다. "누나 누나"하며 누나의 영정을 끌어안고 우는 최진실의 남동생 최진영의 모습은 마치 엄마 잃은 고아처럼 막막하고 슬프고 가여웠다. 여느 자살과 다름없이 최진실의 죽음은 또 다른 모방 자살자들을 낳았다. 최진실의 자살은 대한민국 전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베르테르 효과, 자살 공화국

자살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이슈 중 하나가 된지 꽤 오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한 번 이상은 자살을 생각하지만 예전엔 목숨을 버리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자살 원인은 또 다양하다. 어느 지면에서 보니까 한국 자살예방협회가 지난 2005년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적어도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3명 중 1명꼴인 33.4%였다고 한다.

1987년 8106명 선이던 자살자는 외환위기 때인, 1988년 1만2458명으로 급증했고, 그 이후로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는 24.7명(2005년)으로 최고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이 지난 10년간 1,282건의 자살 원인을 조사한 결과, 우울증(20.8%), 심리불안(20.6%) 등 정신과 및 정신과 관련 질환으로 인한 자살이 41.4%였다고 한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자살자들까지 감안한다면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자신을)와 cædo(죽이다)는 두 낱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이다. 정치계, 경제계 등의 사망소식과 연예인들의 잇단 사망소식은 우리 사회에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유명인의 자살을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가 전염되는가하면, 국민들에게 정신적 우울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최진실의 죽음은 또 사이버모욕죄인 최진실법 도입을 놓고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의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최진실의 죽음은 이혼 후에 얻은 우울증 등 많은 이유가 있다. 그 중에 악플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요즘 우리사회를 보면서 무책임한 악성루머와 악플이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를 휘젓고 있음을 보며 통탄스러울 때가 많다. 무책임한 말을 아주 쉽게 쏟아내는 것을 볼 때, 섬뜩할 정도다. 인격적인 존재로서 다른 인격체를 가차 없이 심판의 잣대위에 올려놓고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난으로 던진 돌이 한 인격체를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까닭이다. 최진실의 죽음이 이혼 후, 우울증을 앓아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대한민국 남편들은 혹시 자신의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게 되는 계기를 주었고, 대책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내던 악플(악의적 댓글)문화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악플이 줄어들고 '찌라시'도 줄었다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사망소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자살소식은 국민들에게 상실감과 함께 우울한 정서를 많이 안겨주었던 것 같다. 일명 모방자살인 베르테르 효과가 잇따랐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며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일깨우는 글이다.

'한 강사가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20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물었다.

“이 20달러짜리 지폐를 갖고 싶은 분 있습니까?"

여러 명의 손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강사가 말했다.

"드리기 전에 할 일이 좀 있습니다."

그는 지폐를 구겨 뭉치고는 말했다.

"아직도 이 돈을 가지실 분?"

사람들이 다시 손을 들었다.

"이렇게 해도요?"

그는 구겨진 돈을 벽에 던지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욕하고, 발로 짓밟았다. 이제 지폐도 더럽고 너덜너덜했다. 그는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사람들은 다시 손을 들었다.

"이 장면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말했다.

"내가 이 돈에 무슨 짓을 했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20달러짜리 지폐니까요. 우리도 살면서 이처럼 자주 구겨지고, 짓밟히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모욕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등산이다

인생은 등산 경주에서
▲ 인생은 등산 경주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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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기를. 우리 한 사람 한사람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세상은 지금 온통 불황이라는 단어로 회색빛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있고, 직장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만성적인 실업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불황의 두꺼운 먹구름이 제 아무리 두텁다 해도 그 위엔 밝은 태양이 있다. 단지, 지금은 조금 가려져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사회에, 경제에, 개인적으로 비관하고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밤이 깊으면 아침이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더 낮추고, 인내하고 진득하게 기다림의 내공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마가렛 미첼 여사가 쓴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일이면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고. 살맛나는 세상, 자살이 없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인생은 등산과도 같다. 똑 같은 산에 오르면서도 모두들 생각은 제각각이다. 힘든 등산로를 오르며 어떤 이는 힘들다고 불평하고 어떤 이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앞을 내다본다. 내 앞에 놓인 문제 앞에 어떤 이는 자살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해결책과 돌파구를 찾는다. 높은 산정에 올라 어떤 이는 추락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앞을 내다보며 삶을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여행, 혹은 등산과 같다.

살다보면 내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게 주신 삶의 선물, 시간을 잘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겨울 산에 가보라. 그토록 무성하던 나뭇잎들을 다 버리고 앙상한 나목으로 서서 겨울을 나는 그것들은 마치 죽은 듯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해빙의 계절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서 생명의 움트는 소리,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다.

다시 생명의 소리들로 가득한 숲이 된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가 제아무리 힘들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기엔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먹구름 뒤에 찬란한 태양이 있듯이, 겨울 속에 봄을 품고 있듯이 길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 어려운 시절을 잘 견디어 내는 지혜를 터득하는 시간들로 삼아, 그래도 희망하며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은 모두 고귀한 존재들이다.

자신의 존재를 그 누군가가 위의 이야기처럼 짓밟고, 모욕하고 던지고 구기고, 부당한 대우를 한다고 해도 그 가치는 전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 한 달, 한 해, 그리고 일생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숨 쉬는 이 공기는 어제 못 다 쉬고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호흡하고 싶어 했던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2008년 한해가 저문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주어질 시간들을 겸허하게,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우리 인생이 보다 충만한 삶이되기를.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 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올해의 단어'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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